일주일 전 회식 자리 말미, 사장이 호기롭게 뿌린 여덟 장의 로또 복권, 그중에 1등이 있었다! 당첨된 로또 복권을 가지고 잠적한 문 과장을 찾아오라는 사장의 지령이 떨어지고, 그를 데려오는 직원에게 연봉 1천만 원을 인상해주겠다는 공약이 내걸린다. 문 과장의 행방을 추적할 단서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자전거길국토종주시작’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사진 한 장이 전부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추격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반전의 인생 드라마로 바뀐다.
“꿈을 향해 달리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멋있었다. 나는 그렇게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며 앞으로 달려간 적이 있었던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과연 무엇일까.” 시작은 그저 심드렁한 추격 작전일 뿐이었다. 그러나 자전거길 여정이 거듭되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의 목표 의식이 생겼다. 육체의 피로가 더해갈수록 가슴속 시야는 넓어지고 일상에 묻혔던 지난날의 꿈이 보이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들어선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달리며 네 명의 인물은 우여곡절을 거듭하는 가운데 저마다의 사연을 고백하고 마침내 스스로 일정 거리를 둔 진실을 맞닥뜨린다. 그렇게 5박 6일 동안 삶의 경로를 이탈하는 모습이 마치 꿈을 찾아, 각자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닮았다.
『왓 어 원더풀 월드』 소설 속에 전국의 자전거길이 리얼하게 묘사되고 있는데 실제 저자의 경험담이 녹아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경험자로서 초보자도 편하게 달려 볼 수 있는 자전거길 추천 부탁드려요. 그리고 제목을 ‘왓 어 원더풀 월드’로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2016년 가을에 자전거로 첫 국토종주를 했습니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 인사 문제로 사표를 냈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니 지겹더군요. 그러다가 자전거로 전국 곳곳을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조성돼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떠올라, 무작정 근처 대형마트에서 자전거를 사서 국토종주에 나섰습니다. 십수 년 만에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로 자전거를 탔더니 그야말로 개고생을 했습니다. 인천 정서진에서 출발해 부산 낙동강하굿둑까지 도착하는 데 일주일 걸렸습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요.
그땐 힘들었다는 기분 외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돌아오니 이상하게 자전거길이 계속 생각나더군요. 그때부터 몇 년 동안 휴가 때마다 전국에 있는 모든 자전거길을 달렸습니다. 그 사이에 제 목에는 자전거 국토종주 인증 메달, 4대강 종주 인증 메달, 자전거길 그랜드 슬램 인증 메달이 차례로 걸렸습니다.
저는 이른바 사회파 소설을 주로 써왔고, 소설을 쓸 때 치밀한 취재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앉아서 머리로만 쓰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번 소설은 사회파 소설은 아니지만, 제가 몇 년 동안 몸으로 직접 경험한 자전거길에 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전작보다 훨씬 많은 취재를 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보자가 무턱대고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하긴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고 페달을 밟기 편한 길을 달리는 게 좋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강자전거길 양평 구간을 추천합니다. 대중교통으로 자전거길까지 접근하기가 좋고, 풍경이 수려해 달릴 맛이 나는 구간입니다. 또한 자전거길과 가까운 곳에 맛집도 많아서 식도락을 즐기기에도 좋습니다. 가장 아름다웠던 길은 섬진강자전거길인데, 접근성이 쉽지 않다는 게 아쉽습니다. 제대로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제주환상자전거길을 추천합니다. 섬이라는 점에서 접근성이 쉽진 않지만, 일단 길에 들어서면 달리는 내내 바다를 옆에 끼고 달릴 수 있고 숙소를 잡고 보급을 하기에도 편합니다. 특히 김녕해변 구간은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자전거길 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기도 합니다.
자전거길을 달리는 동안 살아있다는 게 참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전거가 닿는 곳마다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워 놀랐습니다. 심지어 길을 잘못 들었는데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뭐 하느라 이 좋은 걸 보지 못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감정을 그대로 담은 게 이번 소설의 제목입니다. ‘작가의 말’에도 썼는데, 이 감정을 저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소설을 읽으신다면 제가 느낀 기분을 함께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읽고 나면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겁니다.
소설 속 자전거 추격전이라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계기는 로또 당첨이었다. 일련으로 연속되는 6개 번호가 당첨 번호가 되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웃기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얼마 전 12번 만 있으면 6개 번호(11부터 16번 까지)가 연속되는 조합이 당첨될 수 있었던 사례가 실제 있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현실이 되거나 현실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다시 말해 소설의 힘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말씀 부탁드려요.
저는 소설이 현실을 못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전업 작가로 살기 전에 기자로 오래 일했는데,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아 보이는 현실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소설은 방대해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현실을 작가 나름의 시각과 이야기로 정리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편집 작업 같기도 합니다. 똑같은 사진이어도 어떤 부분을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거든요. 저는 소설이 현실을 정리해 보여주며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걸 환기해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가장 값싸게 다른 인생을 간접경험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누군가를, 혹은 어떤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면 그에 관해 쓴 소설을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독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일 텐데, 이번 작품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인지, 그 이야기에 선한 영향력이 있다고 믿는지요.
대한민국 사회가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다는 기분을 느낍니다. 특히 기운이 가장 넘쳐야 할 청년세대가 가장 무기력해 보입니다. 그 이유를 모두 잘 압니다. 학창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을 치르며 숱하게 좌절하고 멸시를 느끼며 자존감을 잃은 채 사회로 내몰리는 청년이 많기 때문이죠. 사실 이건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점은 청년세대가 정보기술의 발달로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가 서로 얼마나 다른 삶을 사는지 스마트폰만으로도 자세히 알 수 있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경쟁에 참여해도 숟가락 색깔이 다르면 어떤 결과가 펼쳐지는지도 잘 압니다. 결과를 아는 게임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자기방어 전략이자 생존 전략의 결과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실패를 회피하려는 태도가 훌륭한 전략인지는 의문입니다. 실패를 회피하기만 하면 위기 대처 능력이 약해질 텐데, 살면서 전혀 실패하지 않을 가능성은 드무니까요. 실전에 필요한 건 실패를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단 한 번이라도 성공한 경험입니다. 이르든 늦든 성공을 해봤다면 위기의 순간에 뭐라도 해볼 텐데, 실패를 회피만 해왔다면 위기 앞에서 속수무책일 테니 말입니다. 실패를 피하는 방법의 결과물은 아무리 잘 쳐줘 봐야 현상 유지이고, 그조차도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분야든 원하는 성공에 가까워지려면 작지만 확실한 성공을 쌓아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실패에서 배우는 경험도 필요하지만, 이유를 모르는 실패는 그저 좌절만 안겨줄 뿐인 나쁜 실패입니다. 저는 성공이 성공의 어머니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로 밥벌이를 오래 해온 터라 책을 쓰는 법에 관해 질문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단행본으로 묶을 수 있는 최소한의 원고량인 원고지 300매 이상 분량의 원고를 완성해보라고 권합니다. 그만큼의 원고량을 채워 본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그 이상의 원고량을 채울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실제로 한 번이라도 책을 쓴 경험이 있는 작가는 이후에도 계속 책을 씁니다. 성공하든 말든. 그러다가 문득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영광을 맞죠. 저도 그런 날을 맞이하려고 부지런히 씁니다. 이번 소설이 그런 작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소설을 통해 작은 성공이 쌓이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저부터도 그랬습니다. 자전거로 국토종주에 성공하니까 다른 일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덕분에 퇴사하고 전업작가로 살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부자로 살진 못해도 굶어 죽진 않겠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일상은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했다고 해서 극적으로 달라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국토종주 전과 후의 주인공은 겉보기엔 같아도 속은 다른 사람입니다. 전에는 그저 남이 시키는 대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듯한 삶을 살아왔다면, 후에는 자기 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 능동적으로 일합니다. 그런 변화는 작은 성취에서 온다는 걸 소설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선한 영향력이라면 영향력이겠죠.
이전 발표하신 작품들이 드라마화 되었거나 드라마 제작 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 작품 역시 읽는 순간 바로 스팩타클한 영상이 떠오르는데 드라마나 영화 등 영상화 제안은 없었는지요?
소설을 읽은 분들 모두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면 정말 재미있겠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제 여러 장편소설이 드라마로 제작됐거나 제작될 예정이어서 더 그런 기대를 하시는 것 같고요. 그런 제안이 오면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갈 길이 멉니다. 제안은 제안일 뿐 계약서를 써야 시작이고, 입금돼야 일이 진행되니 말입니다. 일이 진행되다가 엎어지는 경우도 수두룩하고요. 그보다는 소설이 더 많은 독자에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이 소설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이 작품을 읽어야하는 이유 세 가지를 말한다면 무엇일까요?
우선 일상이 무기력하게 느껴진다는 기분이 드는 분께 이 소설을 권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일상에 변화를 줘도 무기력한 기분이 줄어듭니다. 만날 다니던 길이어도 평소에 다니지 않던 골목을 통해 지나가면 새롭듯이 말입니다. 자전거 타기는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며, 이미 전국 곳곳에 훌륭하게 자전거길이 조성돼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전국 곳곳을 자전거만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느리지만 밀도 있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자전거 여행을 추천하고, 이 소설이 훌륭한 가이드북이 돼 줄겁니다.
독서에 집중하기 어려운 분께도 이 소설을 권하고 싶습니다. 제 동료 작가 중에 최근에 독서에 집중하기 어려워 고생하셨다는 분이 있는데, 정말 오랜만에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은 책이 이 소설이었다더군요. 작가가 힘들게 쓸수록 독자는 읽기가 쉽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쓴 소설 중 가장 힘들게 쓴 작품인데, 공감하긴 가장 쉬운 작품일 거라고 자부합니다.
힘들 때 위로를 받고 싶은 분께도 이 소설을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어떤 독자가 읽어도 무해한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써온 소설의 결이 무겁고 날카로운 편인데, 그런 소설은 쓰는 제게도 많은 상처를 남기더군요. 이번 소설은 힘들게 쓰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습니다. 저는 제 소설이 책으로 나오면 질려서 다시 펼치지 않는데, 이번 소설은 몇 차례나 완독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생각하며 읽으니 즐거워서요. 이 소설을 읽는 데 들이는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겁니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따라 펼쳐지는 소설 전개 중에 침샘을 자극하는 음식집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실제 있는 집들인가요? 또한 음식(점)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바랍니다.
제가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면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부산 다대포항에서 먹었던 물회입니다. 저는 회를 정말 좋아하지만, 초장에 회를 찍어 먹는 건 싫어하는 편이었습니다. 초장이 회의 맛을 몽땅 덮어버린다는 기분이 들어서요. 회가 아니더라도 맛이 강한 양념장에 무언가를 비벼 먹는 걸 피해왔습니다. 물냉면은 맛있게 먹어도 비빔냉면은 절대 안 먹었거든요. 그렇게 양념장으로 재료 본연의 맛을 가리고 자극적인 맛으로 먹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어서요.
그런데 다대포항에서 먹었던 물회는 달랐습니다. 국토종주를 마친 후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소주 한 잔을 들이켠 뒤 우적우적 퍼먹는 물회의 맛이 그렇게 꿀맛일 줄 몰랐습니다. 세상에 이런 진미가 없더군요. 아마도 제 몸이 물회를 받아들이기에 최적의 상태였기 때문일 겁니다. 그때 물회를 맛있게 먹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그동안 양념장에 지나친 편견을 가져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죠.
지금도 초장 같은 양념장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맛을 폄훼하는 꼰대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것 나름의 맛이 있다는 걸 다대포에서 물회를 통해 몸으로 배웠으니까요. 경험을 많이 할수록 편견이 줄어듭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정진영'이란 소설가는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무슨 위대한 작가로 남고 싶다는 욕망은 없습니다. 그런 소설을 쓰고 싶지도 않고요. 그저 지금 이 순간 제가 사는 이 세상과 발이 닿은 이야기를 제 시각으로 쓰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렇지 않은 이야기는 읽을 때 잠시 즐거움을 줄 순 있어도 뒷맛은 씁니다. 현실은 그런 이야기로 절대 바뀌지 않으니까요. 그건 현실도피에 불과합니다. 우린 지금의 삶에서 최선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그 최선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는 어떤 소설을 읽어도 재미있게 잘 읽히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정진영 1981년 대전에서 태어나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음악을 만들고 소설을 쓰다가 얼떨결에 언론계로 발을 들였다.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산업부 등 여러 부서를 거쳤지만, 음악 기자 시절이 제일 즐거웠다. 2008년 장편소설 『발렌타인데이』로 한양대 학보 문예상 대상, 2011년 장편소설 『도화촌 기행』으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침묵주의보』, 『젠가』, 『다시, 밸런타인데이』 등이 있으며, 백호임제문학상을 받았다. 『침묵주의보』는 JTBC 드라마 [허쉬]의 원작이며, 『젠가』도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다.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