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예스 100호를 맞이해, 커버를 장식했던 17인의 작가에게 상상의 우주를 열어준 책을 물었습니다. |
흙이 퍼석하고 잎이 축 처진 화분에 물뿌리개로 물을 주고 나면 어느새 식물이 생기를 되찾는다.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경의 『황금가지』를 읽는 동안, 나는 이 방대한 저작이 거대한 물뿌리개가 되어 푸석하던 세상 곳곳에 물을 뿌려주는 것만 같았다. 매일 보는 풍광과 사물들이 신비로운 오라를 입었고 평범한 관습의 베일 아래로 숨었던 의미들이 비로소 소근소근 말을 걸어왔다. 그동안 읽었던 그 어떤 책도 내게 이토록 강력한 효과를 가져다준 적은 없었다.
『황금가지』는 어떤 장르의 글이라고 말해야 할까. 우선 이 책은 북이탈리아 네미라는 지역의 어느 숲에 있는 특정한 나무 근처에서 누군가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이기에 칼을 들고 서성이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사람은 디아나 여신을 모시는 사제이자 살인자인데, 대체 무슨 이유로 그가 불안에 떨며 밤낮으로 사방을 경계하게 되었을까? 『황금가지』는 이 기묘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 내용을 풀어가는 일종의 추리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에 세계 곳곳의 관습이나 신화, 의례를 수집하고 분류한 사례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이는 인류학 · 민속학 · 종교학 · 사회학적 보고서에 가깝다. 그런데 건조한 보고서라기에는 여기 실린 이야기들이나 프레이저의 문체가 매우 문학적이어서 문학의 기원을 다루는 인문서 같기도 하다. 다시 말해 『황금가지』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독창적이고 방대한 저작이다. 『황금가지』를 어떤 장르로 귀속시키기보다는 이 저작이 얼마나 많은 장르에 씨앗을 뿌렸을지 가늠해 보는 편이 더 흥미로울 것 같다. 나를 매혹시키는 것은 『황금가지』에 나열된 사례들의 정확성이나 논리의 정밀성이 아니라 이 두꺼운 책의 전반에 휘감긴 기묘한 분위기다. 그것은 과학의 빛으로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세상 아래로 드리운 그림자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비밀과도 같다. 콘크리트 사막 위로 펼쳐진 밤하늘이 있기에 세상에는 아직 이야기가 숨을 쉰다. 『황금가지』는 내게 이런 밤하늘의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매일 떠오른 태양을 본다. 매일 일어나는 현상이고 그 천체 운행의 원리가 밝혀져 있으므로 우리는 그에 별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황금가지』에 따르면 북미의 원주민인 오지브와족은 일식이 일어나면 태양 불이 꺼진 것이라고 생각해서 태양에 다시 불을 붙이고자 하늘을 향해 불화살을 쏘았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은 태양이 전차를 타고 천공을 가로질러 달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양을 주신으로 숭배한 그리스 로도스섬 주민들은 매년 태양에게 바치는 제물로 전차 한 대와 네 필의 말을 바다에 던졌다. 1년 동안 태양이 그 전차와 말을 타고 힘차게 떠오르기를 바란 것이다. 페루 안데스산의 어떤 길에는 두 개의 탑 사이로 그물을 치기 위한 못이 박혀 있는데, 그 그물은 태양을 포획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지방에는 덫을 놓아 태양을 잡은 사람의 이야기가 널리 전해진다. 『황금가지』에 가득한 이런 이야기들은 나의 머릿속을 뒤흔든다. 태양은 이제 천체의 현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꺼지면 불화살로 다시 지필 수 있는 어떤 것, 전차와 말을 타고 천공을 달리는 것, 그물이나 덫으로 포획할 수 있는 것으로 변모한다.
또 이런 이야기는 어떤가? 핀란드의 마법사는 바람이 불지 않아 곤란을 겪는 뱃사공들에게 바람을 팔았다고 한다. 이때 바람은 세 개의 자루에 봉해져 있었는데 첫 번째 자루를 열면 적당한 바람이, 두 번째를 열면 강한 바람이, 세 번째를 열면 폭풍이 불어닥쳤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러윅이라는 곳에는 바람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노파들이 있다고 한다. 서아프리카 토고의 아구산 꼭대기에는 바그바라는 신이 살고 있는데, 이 신의 사제는 몇 개의 커다란 항아리에 갖가지 바람을 저장해 둔다고 한다. 남아메리카 파야과족은 쓰고 있던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면 폭풍을 윽박지르기 위해 불붙은 막대기를 들고 바람을 향해 돌격하며, 허공에다 주먹을 휘둘러 댔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게는 회오리바람의 기둥을 쓰러뜨리기 위해 부메랑을 들고 추격한 한 젊은이의 이야기가 전해 온다. 내가 『황금가지』에서 특히 좋아하는 구절은 헤로도토스가 이야기한 바람과의 전쟁에 나선 사람들에 대해 프레이저가 덧붙인 부분이다. “이들이 사막에 이르자마자 불어닥친 열풍으로 인해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모래에 묻혀 죽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북과 심벌즈를 두드리면서 전투 대형을 유지한 채 회오리치는 붉은 모래구름 속으로 사라져 간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던 어떤 목격자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내게 바람은 공기의 이동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자루나 항아리에 가두었다 팔 수도 있는 것이고, 불붙은 막대기나 부메랑을 들고 맞서 싸울 수도 있는 무언가다. 바람과의 전쟁에 참전했다가 붉은 모래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오래도록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어떤 에스키모족은 나이가 들면 생명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고 싶은 마음에 이름을 새로 짓는다고 한다. 칠레의 칠로에섬 원주민들은 자신의 이름을 비밀로 하며, 누가 자기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고 한다. 사악한 정령들이 사람의 이름을 알면 해코지를 할 수 있지만 이름을 모르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콩고강 상류에 사는 방갈라족은 누군가가 고기 잡으러 나가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강이나 바다의 정령들이 어부의 이름을 알면 그에게 심통을 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프레족 사람들은 도벽을 고치기 위해 펄펄 끓는 약탕 단지 앞에서 도둑의 이름을 외친 다음 얼른 단지 뚜껑을 덮는다. 이렇게 며칠 동안 그의 이름을 가두어 놓으면 도벽이 고쳐진다는 것이다. 죽은 자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관습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이름을 부르면 망령이 돌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라는 김소월의 시 『초혼』의 구절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이름을 불러 혼을 되돌리고 싶은 소망이 거기 있다. 이제 내게 이름은 사람이나 사물이나 개념을 분류하기 위한 방편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이름을 아는 일, 이름을 부르는 일이 가진 힘을 인식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왜 빈 종이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보곤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황금가지』에는 이런 이야기가 가득하다.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이렇게 말했다. “사는 곳을 성화(聖化)시키는 것. 이것은 신화의 기본적인 기능입니다.” 나는 내 서가에 꽂힌 『황금가지』의 두툼한 책등을 볼 때면 이 말을 떠올린다. 이 푸석해 보이는 세상이 여전히 품고 있는 신비한 물기를 떠올리게 하고, 그래서 상상력의 힘으로 세상을 성화시키는 『황금가지』는 내게 너무도 소중한 물뿌리개가 되어준다. 오늘도 지는 태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서쪽으로 떨어진 태양의 불길이 저 너머의 한 대륙을 이글이글 불태우는 것처럼 보인다. 그곳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세상은 여전히 신비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김하나 오랫동안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말하기를 말하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공저), 『힘 빼기의 기술』 등을 썼다.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오래 진행했고 지금은 동거인 황선우와 함께 팟캐스트 <여둘톡: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를 만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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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작가)
브랜딩, 카피라이팅, 네이밍, 브랜드 스토리, 광고, 퍼블리싱까지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힘 빼기의 기술』,『15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을 썼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