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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호 특집] 백온유 "윤이형 작가님께"

상상의 우주를 열어준 작가의 책 : 『붕대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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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미숙한 저에게 이 ‘너그러움’은 길게 유지되지 않는 마음이라, 『붕대 감기』를 반복해 읽을 수밖에요.


채널예스 100호를 맞이해, 커버를 장식했던 17인의 작가에게 
상상의 우주를 열어준 책을 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무탈하신가요? 그리움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작가님께 부담이 되지는 않을지, 고통이 되지는 않을지 걱정되어 망설이다가 그럼에도 열혈 독자로서, 한 번쯤은 마음을 전하고 싶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없이 방치된 집에서는 기다림이 오래되다 못해 가벼운 원한 비슷한 것으로 변해버린 듯한 냄새가 났다. (윤이형, 『붕대 감기』, 15쪽)

『붕대 감기』에서 제가 밑줄 친 문장입니다. 타인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어떤 식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 너무나 잘 표현한 문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님과, 작가님의 세계를 향한 저의 그리움이 억울함이나 분통 같은 감정으로 변해 버리기 전에 다정한 마음으로, 그저 안부를 여쭙고 싶었습니다.

『붕대 감기』를 단숨에 읽어 내린 밤을 떠올립니다. 저는 책을 만난 날짜를 첫 장에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 확인해 보니 2020년 5월 19일이네요. 작가님이 글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하신 이후에 저는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이 아쉽고, 가슴이 아프고, 때로는 화가 났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붕대 감기』를 읽은 후 얻은 평안을 작가님께 나눠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쭙잖게도 그런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 후 꽤 긴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작가님의 그 결정을 이해한다고, 혹은 존중한다고, 그것도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받아들였다고 말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은데 여전히 저는 이해와 존중 사이, 그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새로운 글을 기대할 수 없는 이 세계에서 황망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붕대 감기』에서 느낀 감동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 한 명, 한 명 어떻게 이렇게 소중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인물들의 현재와 미래를 응원하게 되었고 그들 모두가 언젠가 저와 마음을 나눈 사람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들이 제각각 품은 죄책감, 부채감, 부담감, 책임감… 무겁고 아픈 감정들을 기꺼이 나눠 지고 싶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진경과 세연의 이야기는 저에게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소설의 역할이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이런저런 면들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배웠고, 저 또한 소설을 쓸 때 되도록 거창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더 거대한 의미를 담고 싶은 마음이 들고, 이 세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심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떤 강렬하고 특출한 인물이 나타나 이야기를 이끌어 가기를 바라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담백함과 진실함에 경이를 느끼게 되고, ‘그래,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런 의미를 만들 수 있는 거였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돼요. ‘삼키는 말들’이 주는 여운과 울림을 느끼게 됩니다. 선명하고 명쾌한 인물보다 할 말을 차마 못 하고 머뭇거리는 인물들, 상상으로만 겨우 할 말을 내뱉곤 하는 연약한 인물들에게 마음과 시선을 둔 작가님이 그립습니다.

이해하고 싶었어. 너의 그 단호함을. 너의 편협함까지도. ( 『붕대 감기』, 155쪽)

『붕대 감기』를 읽은 후, 저는 저의 편협함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주저 않고 냉철하게 판단하는 일’이 선(善)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인정에 흔들리지 않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제가 그런 눈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자주 좌절했고, 더 냉정하고 엄격한 태도로 나 자신과 타인을 검열하려 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조금 나은 방향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나의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는 시선을 거두게 되었으니까요.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싶어질 때, 인간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싶어질 때, 저는 다시 『붕대 감기』를 꺼내 듭니다. 저는 종종 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행과 과격함조차 수용하기 어려워하는데요. 작가님의 글은 제 마음을 너그럽고 유연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내가 아주 융통성 없는 사람처럼, 단지 수천 수만 개의 비뚤어진 잣대들을 뭉쳐놓은 덩어리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져. 그래서 말을 잘 못하겠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삶을 사는 방법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겁이 나서.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면서 그립고, 기분이 좋으면서 두려워. 내가 너한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말이었는데. ( 『붕대 감기』, 164쪽)

붕대로 상처를 감싼 후 그 붕대를 콱 잡아당겨 지혈을 하는 것처럼, 제 마음속에서 새어 나오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분노를 멈춰 세우는 문장입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어집니다. 그들의 서투름과 저의 어설픔을 가볍게 웃어 넘겨주고 싶습니다. 또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습니다(누구에게든지요.)

3년 전에 제가 『붕대 감기』를 추천하며, “어떤 사람이 하는 일이 도무지 못미덥고 실망스러워서, 어떤 사람 때문에 내가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어떤 사람을 공격하고 싶어서, 사람에 대한 기억 때문에 힘들어서, 그래서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싶어질 때 읽으면 다시금 마음을 추스를 수 있게 되는 소설”이라고 얘기했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모로 미숙한 저에게 이 ‘너그러움’은 길게 유지되지 않는 마음이라, 『붕대 감기』를 반복해 읽을 수밖에요.

저는 이렇게 견디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부디 평안하시기를, 행복하시기를 바라요.

정말 감사합니다.

(작은 마음 동호회 회원) 백온유 드림.




*백온유

1993년 경북 영덕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장편동화 『정교』로 2017년 제24회 MBC 창작동화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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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붕대 감기
윤이형 저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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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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