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예스 100호를 맞이해, 커버를 장식했던 17인의 작가에게 상상의 우주를 열어준 책을 물었습니다. |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이미 초여름이었다. 입시가 끝나고 친구들 다수는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나처럼 재수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상경하고 없었다. 대학가에 가서 무턱대고 대학생이 된 친구를 불러내는 일을 막 그만둔 참이었다. (대학생이 그렇게 바쁜 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서점과 독서실을 오갔지만, 어디에 있어도 속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았다는 게 좀 더 정확하겠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고 자주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수능이 넉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무엇을? 내가 해야 할 일을. 그사이, 상상하는 법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싶었다. ‘지금’과 ‘당장’ 이외의 시공간은 감히 떠올릴 수도 없었다.
상상하기 위해서, 다른 시공간을 그려보기 위해서 나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갈급한 나머지, 손에 잡히는 대로 소설을 읽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읽는 동안만큼은 나의 처지를 잊을 수 있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으나 쳇바퀴를 돌리는 일은 갑갑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변화가 요원하니 별수 없이 책 속으로 파고들었던 셈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찾아오는 것은 여운이 아니라 초조함이었다. 이야기의 다음을 상상하며 상념에 젖는 일은 매혹적이었지만, 그것은 번번이 나의 처지를 쓸쓸히 되새기는 시간으로 막을 내렸다. 초조함의 민낯은 초라함이었다.
이야기를 좇는 일을 끊을 수는 없었다. 그저 다른 이야기가 절실했다. 여기를 벗어나게 해주는 이야기가 아닌, 내가 적극적으로 채울 수 있는 이야기가. 그때 발견한 것이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이었다. 신간 매대에 놓인 책을 보자마자 손이 절로 움직였다. 책을 집어 드는 데까지의 과정은 일사천리였으나 구매를 앞두고 나는 망설였다. 내가 지금 소설을 읽을 때인가, 이는 재수생에게 도의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것인가, 작가의 이름도 낯선데 무리수가 아닌가, 수능 날짜나 성적은 노골적인데 하필 지금 은밀한 생을 찾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책을 사지 말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으나 정확히 그 이유로 나는 책값을 치르고 도망치듯 나왔다. 겉으로 드러난 삶 쪽으로.
『은밀한 생』은 이렇게 시작된다. “모든 강물은 끊임없이 바다로 휩쓸려 들어간다. 나의 삶은 침묵으로 흘러든다. 연기가 하늘로 빨려들 듯 모든 나이는 과거로 흡수된다.” 버스 좌석에 앉아 첫 장을 읽는데 숨이 턱 막혔다. 이 책을 읽을 때 과몰입하게 될 것 같아 적잖이 흥분되었다. (물론 이 예감은 들어맞지 않았다. 오히려 책 속 내용이 예상대로 전개되지 않을 때, 내 삶의 양상도 조금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휩쓸리고 흘러들고 빨려드는 것들이 눈앞에 선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집으로? 미래로? 그 시공간은 나를 환대해 줄까? 상념이 빚어낸 질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책 읽는 속도는 더뎠다.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는 일이 잦았다. 차마 말할 수 없어서 목구멍 뒤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침묵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말을 삼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삶은 그 자체로 ‘은밀한 생’일 텐데, 그 사랑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루어질 수 없을 때 은밀함은 농밀함이 된다. 더군다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돌변한다는 점에서, 모든 사랑은 어느 정도 반사회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랑은 군중 속에서 과시되지 않는다. 어둡고 구석진 곳에서 겨우 빛을 발한다.
독서의 진척을 가로막는 것은 ‘사랑’이라는 소재가 아니었다. 그것을 기술하는 낯선 방식이 딴생각으로 나를 이끌었다. 배경이 흐릿한 것은 물론, 정황을 파악하려고 할 때마다 손에 움킨 모래알처럼 이야기는 문장 단위로 바닥에 흩뿌려졌다. 기억은 불완전하지만, 개중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생생해짐을 역설하듯이. 그 틈새를 내 상상으로 메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문장에 끌려가는 독서를 하면 이 책을 완독할 수 없을 게 빤했다. 행간을 채우는 독서법이 요구되는 책이었다. 『은밀한 생』은 소설이면서 시 같고, 연대기 형태를 띠며 전개되다가 사유가 담긴 아포리즘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당시에 썼던 노트를 들추어 보니 이 책을 가리켜 ‘과거를 애타게 기다리는 후일담’이라고 쓰여 있다.
어떤 문장은 여러 번 읽어야만 했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내 입을 다물어야 하듯, 묵묵하게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침묵만이 유일하게 타인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입을 다문다고 해서 둘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생각 뒤로 몸을 감출 수도, 상대방의 고향에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다. 침묵 속에서 낯선 사람 앞의 낯선 사람이 됨으로써 그들은 친밀해진다.” 사랑에 빠지는 일은 숨기고자 하는 의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것을 목격하는 자는 낯선 사람과 “낯선 사람 앞의 낯선 사람” 뒤에 멀찌감치 서서 ‘신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일이 아닌데도 마음이 동하고 몸이 반응하는 것을 어쩌겠는가. 책을 덮어버려도 흥분은 가시지 않는다. 머릿속은 부단히 어떤 장면을 펼쳐내고 있다. 책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책이라는 우주에 발 들인 순간, 우리가 들이는 것은 발뿐만이 아니다. 온몸에 온 마음을 짊어지고 우주를 유영해야 한다. 돌아올 때까지 방황하기를 그치면 안 된다. “사랑은 과거에 대한 열병과도 같은 것이다. 이번 매혹은 이전의 매혹에서 유래한다. 사랑 안에서, 매복하고 있는 것은 과거 전체다. 자발적으로 이 열병에 걸릴 수는 없다.” 자신의 (괜찮은) 일부만 드러내려고 제아무리 애써도 (괜찮지 않은) 삶을 통째로 내바치게 되는 게 사랑이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선택하는 것은 나이지만, 독서 후에 일어나는 변화는 내 소관에서 벗어나 있다.
『은밀한 생』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해소되지 않았다. 무엇이? 완결되었다는 느낌이, 내가 이 책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확신이. 불가능할 것을 알면서도 ‘은밀한 생’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앞으로도 여러 번 이 책을 읽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실제로 지금껏 이 책을 오독(五讀)했으나 그때마다 나는 오독(誤讀)을 피하지 못했다. 이 책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면 황급히 도리질을 치곤 한다. 사람과 사랑과 삶은 줄거리로 요약될 수 없다.
사랑에 빠졌다가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왔을 때, 나는 다음의 문장을 떠올렸다. 그럴 때마다 ‘실연(失戀)하다’보다 ‘실연당하다’가 훨씬 많이 쓰이는 이유를 절감했다. “아무것도 사랑의 상실을 위로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은 무자비한 증여품이다. 사랑은 잃어버린 것과 연관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상실이 사랑을 입증한다.” 잃었음의 자리는 결코 편평할 수 없다. 울퉁불퉁한 땅 위를 비틀비틀 걷지 않으면 안 된다. 무자비한 상황을 꾹꾹 누르며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한다. 키냐르의 말마따나 “사랑이란 이미 피할 수 없는 뻔뻔스러움이다.” 이 뻔뻔함을 직시하기에 인간은 너무 유약하다.
실연 후 한동안은 사랑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어리석은 인간은 또다시 사랑을 찾아 나선다. 그때 찾아 읽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런데 사랑이란 정확히 이런 것이다: 은밀한 생, 분리된 성스러운 삶,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 그것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인 이유는, 그러한 삶이 가족보다 먼저, 사회보다 먼저, 빛보다 먼저, 언어보다 먼저, 삶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은밀한 생』 속에 깃든 빛, 부려진 언어, 펼쳐진 삶으로부터 나는 상상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사랑으로 은밀해진 사람을, 삶을, 세상을. 이것이 어쩌면 책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오은 엉겁결에 등단했고 무심결에 시인이 되었다. 팟캐스트 <책읽아웃> 진행자. 2002년 봄 『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왼손은 마음이 아파』, 『나는 이름이 있었다』, 『없음의 대명사』와 산문집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너랑 나랑 노랑』, 『다독임』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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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시인)
2002년 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너랑 나랑 노랑』 『유에서 유』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등을 썼으며,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