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 특집] 이두온 “자발적 오염을 위하여”
상상의 우주를 열어준 작가의 책 :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문학은 근본적으로 오염을 꿈꾼다. 오염되기를 또 오염시키기를 염원하며 예측할 수 없게 기묘한 방식으로 천천히 증식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 앞에 그것이 도달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채널예스 100호를 맞이해, 커버를 장식했던 17인의 작가에게 상상의 우주를 열어준 책을 물었습니다. |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은 1951년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한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의 이야기를 다룬 논픽션이다. 헨리에타가 살아 있을 당시 그녀의 자궁 경부에서 추출한 암세포, 즉 헬라 세포는 역사상 최초로 배양에 성공한 불멸의 세포다. 2010년 출판된 책에 의하면 당시까지 배양된 헬라 세포의 양을 무게로 따지면 5천만 톤 이상, 한 줄로 세우면 10만 7000키로미터, 그러니까 지구 세 바퀴 이상의 길이에 달했다고 한다. 무한 증식을 자랑하는 이 세포는 배양에 성공한 이래 소아마비 백신, 항암 화학 치료, 세포 복제, 유전자 지도, 체외 수정 등 획기적 의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최초 우주여행에 동반한 세포이자, 핵폭탄 시험에도 참여한 거물로 실험실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문제는 헬라 세포의 이 모든 업적이 헨리에타와 그녀의 가족이 배제된 채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헨리에타의 자궁 경부에서 세포를 추출하거나, 그녀의 시신을 부검할 때, 헬라 세포 배양에 성공했을 때도, 세포를 상업화하기 위해 공장을 개설하고, 그녀의 세포를 통해 무수한 과학적 업적을 이루었을 때조차, 이 사실은 헨리에타와 그녀의 가족에게 고지되지 않았다. 가족들이 헬라 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헨리에타가 사망하고 이십 년이 지난 후다. 그것도 헬라 세포가 다른 세포를 오염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오염 상황을 개선해야 하는 현실에 당면해 헨리에타 가족의 고유한 유전자 표지가 필요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일이 이루어졌다. 가족들은 유전자 표지를 위한 혈액 채취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헨리에타가 걸렸다던 암에 자신들도 걸렸는지 보려고 의사들이 피검사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헨리에타의 딸은 자신도 어머니와 같은 병으로 죽게 될까 봐 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수년 동안 기다린다.
이 작품은 초반 헨리에타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풍경과, 배양에 성공한 헬라 세포가 엄청난 찬탄 속에서 과학계를 종횡무진하는 과정을 교차해 보여준다. 그것은 헨리에타와 가족들에게는 최악의 시절이고 과학의 진보에 있어서는 최고의 시절이었다고 말한다.
최고 시절에 대한 언어적 기록은 차고 넘치지만 최악의 시절에 대한 기록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 때문에 암 진단을 받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헨리에타 랙스의 내면은 추측하기 힘들다. 힘겹게 재구성한 내용에 의하면 그녀는 대체로 ‘아무 일 없다는 듯 할 일을 계속’하고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침묵한다. 그것은 우직한 성품에서 비롯된 일인 듯 보이지만, 자신이 겪는 병에 대한 무지와 정보 부족, 당시 흑인은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을 수 없던 인종차별의 역사에서 기인한 반응이기도 하다.
헬라 세포의 존재를 알게 된 가족과 친인척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세포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 영적 차원으로 받아들인다. 헨리에타의 장례식 날 불가해한 큰 돌풍이 불었다거나, 헨리에타의 영혼이 세포 안에 살아있기 때문에 세포가 그렇듯 왕성하게 자라고 세포에 얽힌 사람들의 인생을 조종한다는 식이다.
헬라 세포를 받아들이는 가족들의 방식 때문에 나는 이것이 어떤 공백의 문제로 읽히기도 했다. 응당 들어와야 할 정보가 들어오지 않을 때, 아니 우리가 삶에서 어떤 빈틈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떤 분투를 벌이는가. 누군가는 정보를 수집하고, 누군가는 초현실적인 부분에 의지하며, 누군가는 침묵하고 견딘다. 그럼에도 어떤 공백은 너무 크고 깊어서 이런 노력을 무산시키기 일쑤다. 그럴 때 누군가는 그 빈틈으로 인해 병에 걸리고, 살인을 하며, 누군가는 삶의 행로를 잃기도 한다. 그런 종류의 일들은 시작되면 좀처럼 돌이킬 수가 없다.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나 같은 경우는 공백을 메우기 위해 쓴다. 내 힘과 사고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이야기를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쓴다는 것은 무력감과 열패감을 시작점으로 할 때가 많다. 쓰고 난 다음에도 그 감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소설을 쓴다고 해서 빈틈이 메워지는지 의문이고, 결과물을 내놓는다고 해서 대단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주로 무엇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감정들 속에서 싹트고, 참을 수 없어 치는 몸부림을 먹고 자생한다. 그 때문에 소설을 쓴다는 것은 삶에서 마주하는 어떤 공백을 메우려다 그 안에서 돌아버리는 일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본 헬라 세포의 여정은, 이 세포가 자신이 가진 태생적 비밀을 폭로하고 공백을 메우며 우리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경이롭고 전복적이기까지 했다. 헬라 세포는 다른 세포들을 모두 오염시킴으로써 세포 주인인 헨리에타 랙스를 세상에 드러낸다. 헨리에타의 이름이 세상에 나오며 밝혀지는 사실은 그녀와 그녀 가족의 삶뿐만이 아니다. 지독한 인종차별의 역사와, 사회적 취약 계층이 과학 실험에 착취되어 온 궤적들, 그것을 다루는 과학계의 모순이 함께 폭로된다. 결국 여기에서 오염이라는 것은 더럽게 물들인다거나 다른 세포 간의 유입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며, 다른 고통의 언어들에 몸을 열어주는 일이고, 그래서 하나였던 목소리가 여럿이 되고 떼창이 되어 뒤섞이는 일이다. 공백은 실재하던 크기보다 더 풍성하게 채워지고 그럼으로써 수많은 의미를 띤 이야기를 생성해 낸다.
이 작품에 감동 받았던 이유는, 이야기 자체가 주는 강렬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헬라 세포가 존재하는 방식이 어쩌면 문학이 자신을 드러내고 살아남는 방식과 흡사하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문학은 근본적으로 오염을 꿈꾼다. 오염되기를 또 오염시키기를 염원하며 예측할 수 없게 기묘한 방식으로 천천히 증식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 앞에 그것이 도달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부르고 싶다.
PS. 2023년 8월 2일 자 신문에는, 헨리에타의 유가족이 영리 목적으로 헬라 세포를 판매한 써모 피셔 사이언티픽(Thermo Fisher Scientific)사로부터 보상을 약속받았다는 기사가 실렸다. 헨리에타 랙스가 사망하고 72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책에서는 공소시효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소송과 보상이 쉽지 않을 거라고 진단했지만, 그 일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는 정보 부재 상태가 아님에도 자발적으로, 헬라 세포 안에 헨리에타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소설가. 한국 하드보일드 스릴러 장르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은 『시스터』가 데뷔작이다. 장면마다 떠오르는 강렬한 이미지들은 자연스럽게 영상화로 구현된 실사를 보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전작으로는 『러브 몬스터』 『타오르는 마음』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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