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쉬는 시간을 누리는 데 어느 정도 숙련된 우리에게, 멀리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된 우리에게, 또다시 여름휴가가 다가왔다. 바다 가까이에 자리한 전국의 작은 책방으로 떠나보거나, 휴양지 기분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빠르게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 미뤄두었던 두꺼운 책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밤공기가 선선해진 어느 날, 여름의 시간을 웃으며 돌아볼 수 있도록. |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 함께 떠난 여행 기록을 담은 『지루한 여행을 떠났으면 해』 이후 5년 만에 『어린이의 여행법』으로 돌아온 이지나 작가는 말한다. 아이가 어디서든 혼자 서는 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이를 위해 필요한 건 모두의 환대다.
『어린이의 여행법』을 통해 '작은 여행자'인 아이와 세상에서 만난 것을 나누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작은 여행자'가 가진 역량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절대로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가진 여행자라는 점이죠. 그리고 동행인에게 새로운 자극을 전해 주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20대 때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요. 홀로 머무르는 동안 크게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던 나라를 아이와 다시 찾아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이전과 달리 훨씬 더 많은 걸 보게 됩니다.
왜 아이와 함께 떠날 때 더 많은 걸 보게 되는 걸까요?
일을 하다 보면 시야를 환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잖아요. 멀리 떠나서 받아들인 새로운 세상이 실제로 저의 일에 도움이 되어주기도 하죠. 그런데 아이와 함께라면 새롭고 낯선 명소나 자연 공간을 보러 가는 게 여행의 목표가 되지 않아요. 이미 아이는 뭘 보든 놀라워할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게 얼마나 신기한지 바로 자기만의 언어로 들려줘요. 그 덕분에 저도 늘 감각이 깨어 있게 되는 듯해요.
부모에게 의존하던 아이가 한 사람의 여행자로 나아간 순간은 언제였나요?
"가족 여행에서 가장 큰 짐은 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이를 독립적인 여행자로 세우면 부모가 훨씬 덜 힘들어요. 아이가 여섯 살 즈음 되었을 때, 메고 다닐 작은 배낭을 직접 챙겨보라고 했어요. 이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큰 장난감을 가방에 넣던데, 전 모른 체 그냥 두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부피가 크고 활용도가 적은 것일수록 집에 두고 가야 한다는 걸 스스로 깨닫더라고요.
아이에게 카메라 사용법도 알려주셨죠. 스마트폰이 아닌 '야시카'라는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건네주신 게 인상적입니다.
요즘 게임 중독인 아이 또래 친구들이 많은데요. 게임을 하면 즉각적으로 이기거나 지는 결과를 마주하게 되잖아요. 필름 카메라는 그것과는 정반대에 있는 도구예요. 찍을 대상을 찾을 때든, 셔터를 누른 후 결과물을 보기 위해서든 기다림이 필요하니까요. 흔들리지 않는 멋진 사진을 찍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이가 찍어놓은 사진들을 인화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의 즐거움도 크고요.
유아차로 이동하기 좋은 장소로 '모든 나라의 공항'을 꼽으셨는데요.
유아차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 늘 긴장하게 되는데요. 최근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를 쓴 유튜버 굴러라 구르 님의 '휠체어로 하는 대만 여행' 영상을 공감하면서 보았어요. 저도 대만에 갔을 때 비슷한 기분을 느꼈거든요. 지하철역마다 반드시 경사로가 있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으니까요. 사회 제반 시스템이 약자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으면 약자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가 생각나요. 그런 곳에서는 긴장하지 않아도 어른과 아이가 함께 여행할 수 있고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는 여기 없다. 노 키즈 존은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다."라고 쓰셨죠. 어떤 고민을 나누고 싶으셨나요?
최근 어느 가게가 ‘노 시니어 존’을 선언하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잖아요. '60세 이상 어르신 출입 금지'라는 문구를 문 앞에 붙여놓았죠. 노 키즈 존이 존재하는 한 누군가를 배제하는 '노 OO 존'은 자연스럽게 이후에도 계속 따라올 거라고 봐요. 열한 살인 제 아이는 성장하면서 곧 노 키즈 존의 제약에서 벗어날 테지만 그다음에는 곧 제 차례가 되겠죠. 노 키즈 존을 찬반 투표에 부치기보다는 노 키즈 존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의식이 더 많이 공유되었으면 합니다.
공공장소에서 부모가 역할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노 키즈 존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어요.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훈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여행 중일 때나 공적인 공간에서 저는 단호하게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해요. 아이의 잘못이 다른 사람들의 안전과 직결될 수 있으니까요. 되도록이면 무섭고 짧게 혼내는 편이고요. 하지만 아이는 실수하면서 배워요. 아이의 실수가 노 키즈 존의 당위성이 될 수는 없지요. 여행은 아이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다양하고 안전하게 연습해 볼 수 있는 장이에요.
여행하면서 이곳에서만큼은 아이가 환대받고 있다고 느꼈던 적이 있나요?
핀란드의 어느 카페에 갔을 때 다양한 디자인의 아이용 의자가 한쪽에 놓여 있는 걸 봤어요. 보통 아이용 의자는 작은 사이즈라는 기능에만 충실하잖아요. 그곳의 아이용 의자는 재질, 모양, 색깔이 모두 달랐어요.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의자를 골라서 앉을 수 있도록 선택지를 주었던 게 특히 기억에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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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인(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