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감독 이병헌 "<드림>, 홈리스들이 주인공인 이야기"
각본집 『드림』
결과가 정해져 있는 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에서의 장면은 스포츠영화 특유의 박진감이 아닌 인물의 감정이었습니다. 어떻게 저 좁은 경기장 안에서 죽어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잡아낼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2023.06.29)
"<드림>은 보통을 향한 꿈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이병헌 감독의 4년 만의 신작 <드림>은 무수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2010년 브라질 홈리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대한민국 홈리스 대표팀. 승패와 상관없이, 누구도 낙오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회. '사회의 축소판' 같은 그 이야기를 영화화하기 위해, 감독은 영등포 <빅이슈> 사무국을 찾아가 취재를 하고, 홈리스의 사연을 접하면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12년의 기다림 끝에 관객을 만난 <드림>은 무엇보다 '홈리스'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노련한 배우 박서준과 아이유의 티키타카에 웃다 보면,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홈리스 캐릭터들이 다가온다. 무엇보다 '경기장 위를 달리는 사람들의 감정'을 전하고 싶었다는 감독에게, <드림>을 만든 선택의 과정에 대해 물었다.
<드림>은 감독님의 영화 중 가장 많이 거절당한 영화라고요.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드림>은 단순히 스포츠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회라는 울타리 밖으로 잠시 낙오된 사람들, 소외된 채로 방치된 사람들의 사연을 다룬 휴먼 드라마로 접근했는데, 아무래도 경기 장면이 없을 수는 없기 때문에 대본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핸디캡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분명히 재미도 의미도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고, 포기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12년 전에 쓰인 시나리오가 영화화되었습니다. 시나리오가 실제 집필되었을 때에 비하면 꽤 긴 시간인데, 현실은 변함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감독님의 체감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여전히 대중에게 관심 없는 내용이었고,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변한 게 없었다는 거고, 그럴수록 이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단단해졌습니다. 시간이 지난 만큼 조금 진부한 구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유니크한 무엇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고, 처음 구조를 고수하는 대신 캐릭터와 대사를 수정하며 다듬어갔습니다.
<극한직업>은 '호기롭게 마음대로 웃겨보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면, <드림>은 '그러면 안 되는 이야기'의 마음가짐으로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간 만드셨던 영화와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코미디라는 형식이 공통적으로 삽입되었다고는 하나 저는 모든 작품이 뚜렷하게 달랐습니다. 정통 코미디는 <극한직업>이 유일했던 것 같고 <드림> 같은 경우는 유머가 실린 휴먼 드라마로 생각했습니다. 인물을 희화화 시키면 안 된다는 부담감도 있었기 때문에, 우선 코미디와 대사를 가득 채워 놓고 스텝들과 회의를 거쳐 불필요하거나 불편한 것들을 삭제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온 영화입니다. <빅이슈> 사무 국장님이 직접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셨는데, 영화가 개봉되고 특별히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었나요?
2015년 네덜란드 대회에 동행했습니다. 그때 함께했던 한국팀 선수와 크루들이 생각났습니다.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들과 코치님의 인터뷰도 봤습니다. 신파다 국뽕이다 하는 평가도 많았는데 실화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고 영화를 관람해야 할 의무는 관객에게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쉽긴 하지만 실제 참여했던 분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우린 그 대회의 고증에 있어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이 영화의 초점이 홍대의 성장서사일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주연이 나서기보다 각각의 홈리스 캐릭터를 살리는 이야기 구조를 택하셨는데요. 이런 선택을 내린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처음부터 홈리스들의 이야기였습니다. 홈리스가 축구를 한다. 이 한 줄 만으로도 투자사는 거부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홍대와 소민이라는 캐릭터는 제가 이 이야기를 재밌게 끌어갈 수 있는 절대적 캐릭터였습니다. 하지만 그쪽으로 이야기가 기울면 처음 의도한 것이 무너지게 됩니다. 홍대의 성장을 위해 존재하는 홈리스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 저는 그 이야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결국 멀티 캐릭터의 이야기였고, 그래서 캐스팅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서준 씨와 지은 씨가 이 이야기가 가진 의미에 동의해 주셨고 운 좋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건 일하는 사람들로서의 홈리스 캐릭터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홈리스'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직접 <빅이슈> 사무국을 취재한 후, 표현하고 싶었던 모습들이 있었나요?
홈리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과 자활 의지를 돕는 것이 홈리스월드컵 대회의 취지입니다. 드림이라는 영화는 그 대회의 취지와 같습니다. 영화에서 소개된 대로 일반적으로 '홈리스'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이미지의 홈리스는 5%도 되지 않습니다. 사실 홈리스라 규정하는 바가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빅이슈>나 홈리스를 지원하는 단체에서 규정하는 바는 굉장히 포괄적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영화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집이 없어서 고시원 생활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저도 그때 홈리스였던 겁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영화적으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고 영화에서 대부분 표현됐다고 생각합니다.
소민의 경우, 유독 빠르고, 티키타카가 잘 살아야 하는 대사가 많은데요. 현장에서 리듬감이 빠른 소민의 대사를 어떻게 디렉팅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전형적인 구조를 사용하고 싶은데 그때 느껴지는 지루함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고 전체적인 리듬감을 고려했을 때 초반부는 속도감이 더 느껴지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디렉팅은 단순했습니다. 조금만 빠르게. 배우가 당황하고 나는 슬쩍 모른척하고 이런 미안함만 극복하면 배우는 너무나 완벽하게 완성해냅니다. 아이유에게 감사할 뿐.
영화 곳곳에 진지함과 웃음이 섞여 있습니다. 특히 '거지'라는 말 다음에 함께 웃어버리거나, "근데 내 문제가 아니잖아. 그걸 문제 삼는 세상이 문젠 거 아니야!"라는 영진의 말 다음에, 팀원들이 다 웃어버리는 장면이 좋았습니다. 진지함과 재미 사이 감독님의 고민이 궁금하고, 이 장면들을 어떤 태도로 쓰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희비극의 공존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봤던 홈리스분들은 마음의 상처 탓인지 어떤 미안함 때문인지 상대와 눈을 잘 마주치지 않으시고 잘 웃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들이 당당하게 상대와 눈을 마주하고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에는 고시원과 쪽방 등이 등장합니다. 경기장에서의 홈리스뿐만 아니라, 경기장 바깥의 삶도 고루 다루고자 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간을 택할 때, 신경 쓰신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스포츠 영화라기 보다 홈리스들의 사연을 다룬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자연스레 소개된 것이고, 실제에 가깝게 그리고자 했습니다. 꾸밀 것도 덜어낼 것도 없이 제가 본 것을 그것에 가깝게. 그렇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홈리스 월드컵에 진출했던 감독과 트레이너가 배우들과 함께 2개월간 훈련을 했다고요. 실제 경기 장면을 구현해야 하는 영화의 특성상 즐거움과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과정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훈련까지 같이 한 건 아니라서 민망한데. 배우들과 트레이너 분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액션보다 맞출 합이 더 많았고 공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제 불가의 영역이기 때문에 만발의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풋살 경기장은 공간도 좁아서 카메라 워크의 제한도 많았고, 부상의 위험도 컸습니다. 하루하루 마음 졸이고 버티는 게 고단할 지경이었습니다. 모두가 준비를 잘해준 덕분에 큰 부상 없이 마칠 수 있었고 즐거움이라면 일을 마치고 마시는 소주 한 잔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 후반의 경기 장면은 부다페스트 로케이션으로 촬영했다고 들었습니다. 보통의 '스포츠 영화'는 경기 자체의 클라이맥스 장면을 극적으로 연출하는데, '홈리스 월드컵'을 연출할 때는 어떤 점에 중점을 두셨나요?
이미 정해진 길로만 가야 하는 영화였습니다. 영화에 담긴 후반부 경기 내용은 실제 브라질 월드컵의 내용과 거의 같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스포츠 영화라면 어떤 팀이 이길까 혹은 질까? 긴박하고 짜릿한 승부를 그려야겠지만, 홈리스 월드컵은 승패와 결과보단 참여와 과정, 그 안에서 자활의 의지와 동기를 얻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더군다나 한국 팀이 진다는 것은 실제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너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결과가 정해져 있는 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에서의 장면은 스포츠영화 특유의 박진감이 아닌 인물의 감정이었습니다. 어떻게 저 좁은 경기장 안에서 죽어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잡아낼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드림>이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재미있고 편한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코미디 장르에 대한 감독님의 현재 생각이 궁금합니다.
코미디 장르는 대분류고 저는 그 안에서 소분류 하여 각각 다른 작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편한 소재의 블랙 코미디도 있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코미디도 있습니다. 장르를 떠나 필요한 이야기인가 생각하고 판단하려 합니다. 현재 저의 생각은 '아무래도 코미디 작업을 하는 게 좀 더 행복하다'입니다.
*이병헌 영화 감독. <써니>(2011), <스물>(2015), <극한직업>(2019), <멜로가 체질>(2019) 등의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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