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 3일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퇴근한다. 회사가 있는 국회의사당역에서 25분간 지하철을 탄 후 15분 걸으면 도착하는 곳. 바로 일본어 학원이다.
일본어 학원은 올해 3월부터 다니고 있다. 사실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 건 그보다 1년 전인 취준생 시절. 취업이라는 긴 터널 속 매일 자기 전 30분간 풀었던 일본어 학습지는 당시 불안하고 허한 내 마음을 달래주는 친구였다. 하지만 목적 없는 공부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일까? 4개월 뒤 나는 지금 회사에 취업했고 바빠졌다는 핑계로 학습지를 그만뒀다.
6개월간의 떨리는 인턴 생활을 마치고 정직원이 된 후 마음이 조금 편해지자 일본어 생각이 다시 났다. 학습지의 여파로 일본 드라마와 영화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됐지만 쉬운 단어도 까먹은 지 오래. 언젠가 일본 여행을 떠나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2월 말, 새 학기를 맞이하는 심정으로 학원을 등록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등원 첫날, 나는 코로나에 걸려 첫 수업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일본어 도전기는 시작됐고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사교육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원의 장점을 한창 공부할 때인 중고등학생 때보다 체감하고 있다. 규칙적인 일상과 늘어가는 실력은 비용을 지불한 만큼 따라와야 하는 보상이므로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만 직장인이 된 후 다니는 학원은 반복적인 나의 일상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줬다는 것이다.
첫째, 또 다른 내가 될 수 있다. 5시까지 회사원이었던 나는 6시 반에는 학생이 될 수 있다. 깔아준 판에서 마음껏 배우고 질문할 수 있다는 것. 학교를 떠나서야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참된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학생인 만큼 시험도 있다. 매월 말 레벨 테스트가 다가올 때마다 스트레스도 함께 찾아오지만 그때만큼 실력이 느는 시기도 없다. 왜 시험이라는 것을 보는지 이제서야 이해하게 됐다.
둘째, 언어라는 공통점 아래 다양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일본 지사 발령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일본 거래처와 보다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해, 일본 유학 혹은 대학 진학 목적 등 일본어를 배우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6명 정도로 이루어진 우리 반을 둘러보면 나이도 하는 일도 다양하다. 일본어라는 하나의 접점만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돕는다. 몇 달을 봐도 수줍은 모습으로 인사하지만, 회화 연습을 할 때는 서로 더 묻고 대답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바쁜 일상 속 짬을 내 작성해 왔을 작문 숙제를 읽을 때는 혹시라도 내용을 놓칠까 숨을 죽이며 듣는다.
어느새 나는 일본 대학에 가고 싶다며 빛나는 눈으로 말하는 옆자리 고등학생이 꿈을 꼭 이루길 바라게 되었다. 물론 나 역시도 떨리는 꿈 하나를 갖게 되었다.
나의 일본어 도전은 이와 같이 아직까지는 순항 중이다. 이 끝이 무엇이 될지는 조금 더 해봐야 알 것 같다. 중요한 건 일본어는 나에게 아직도 새로운 세계이고 계속 함께 하고 싶은 존재라는 것 아닐까?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민희(BX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