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처럼 쉬운 직업이 어디 있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아니, 꽤 자주 듣는다. 남이 만들어준 옷과 메이크업으로, 남이 만들어주는 노래와 춤을 웃으면서 보여주면, 불특정 다수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일부는 맞을지도 모른다. 세상일이 모두 그렇듯, 표면으로만 보자면 말이다. 다만 빛 아래의, 당신도 넘치게 잘 알고 있을 어둠을 잊지 말라는 당부 하나만은 남기고 싶다. 쉽게 쉬운 일로 치부 받는 나의 인생을 건 일, 빛나는 지금을 위해 노력해준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 어떤 순간에도 웃어야만 하는 진짜 나와의 괴리감. 물론 이조차 전부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직군 가운데에서도 아이돌은, 그런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걸 유독 금기시 당한다. 꿈과 환상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사람들. 그것이 누구를 위해 조직된 꿈과 환상인지는 아직도 알려진 바 없다.
'The World Is My Oyster'는 르세라핌이라는 이름으로 데뷔 조가 만들어진 뒤 데뷔 쇼케이스가 열리기까지의 시간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총 4화로 이루어진 영상을 다 보고 나면 왜 이 콘텐츠에 비하인드가 아닌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절로 알게 된다. 일반적으로 해당 그룹의 무대 뒤의 모습을 적절히 노출하며 기본적인 궁금증 해소와 팬과 가수 사이의 유대감을 구축하는 것이 비하인드 영상의 목적이라면, 'The World Is My Oyster'는 그렇게 말랑하게 접근하기엔 꽤 하드코어한 콘텐츠다. 차 안에서 데뷔 쇼케이스 현수막을 본 르세라핌 멤버들이 비명을 지르는 모습으로 시작하는 다큐멘터리는, 현재 소속 레이블인 하이브와의 계약이 알려지며 큰 화제를 모았던 멤버 사쿠라와 김채원의 모습을 붙인다. 곧바로 이어지는 건 함께 데뷔를 준비하던 연습생 루카가 탈락을 통보 받는 장면이다. 담당자들은 건조한 표정으로 탈락 이유를 특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무엇 하나 보장되어 있지 않고, 천국이었던 오늘이 내일의 지옥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냉혹한 사선(死線) 그 자체다.
이들에게는 데뷔 전의 모든 것이 도전이고 모든 순간이 당락의 갈림길이다. 트레이닝 선생님의 '무슨 생각 하면서 (퍼포먼스) 하냐'는 불같은 지적 정도는 스쳐 가는 산들바람이다. 그룹 아이즈원의 멤버로 한국에 입국하고 특정 기획사를 방문하는 것만으로 온종일 포털 사이트 연예면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쿠라와 채원은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그때와 지금의 내가 달라야만 한다는 보이지 않는 의무감에 시달린다. 여러 차례의 좌절 후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 평범한 학생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허윤진은 기적처럼 다시 주어진 기회 앞에 이게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꽁꽁 묶어 두었던 꿈의 끈을 다시 푼다. 15년 동안 신었던 토슈즈를 벗고 말도 문화도 낯선 한국으로 떠나며 "나는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고 웃으며 말하는 카즈하나 나이는 어리지만 실력으로 이 그룹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겠다는 당찬 막내 홍은채를 보고 있으면 이들이 가진 가장 큰 재능이 '용기'라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향해 전속력으로 생을 던지는 사람들, 아이돌이라는 이름 전에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르세라핌의 두 번째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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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