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
"블랙핑크가 블랙핑크 했다."
팬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용구다. 예를 들어 '미묘가 미묘했다'와 같이 쓰면 '제깟 게 하는 일이 그렇지'하는 빈정거림을 담을 수도 있지만, '원래 잘하는 것, 남들은 못하는 것을 했다'라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많은 경우 블랙핑크의 행보를 정리할 법한 표현이기도 하다. YG엔터테인먼트의 기수이자 케이팝의 명실상부 플래그십인 이 4인조는 데뷔 초, 혹은 늦게 보아도 2018년 '뚜두뚜두 (DDU-DU DDU-DU)'에서 모든 것을 확립했다. 우렁찬 표독을 쏟아내는 멤버 구성은 이미 철통 같아서, 더하거나 뺄 것도, 변주하거나 새롭게 할 것도 보이지 않는다. '증명할 것이 없는 자'를 정체성으로 삼는대도 이상할 게 없다.
이들의 많은 것이 그렇다. 2020년 전작
타이틀곡 'Shut Down'은 이와 궤를 같이한다. 파가니니의 'La Campanella' 샘플을 곡 전체에 깔고 원곡의 리듬과 조성을 그대로 반주하듯이 비트를 싣고 멜로디와 랩을 얹었다. 곡을 끌고 가는 것은 사실상 이 샘플이다. 어떤 요소도 샘플에 저항하거나 역행하거나 마찰을 빚지 않는다. 샘플을 택해 루프 돌린 순간 다 만들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닐 법하다. 그마저도 블랙핑크의 '증명할 것 없음'이란 태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곡이 주는 위압감과 긴박감에는 손색이 없고 이는 '블랙핑크가 블랙핑크 했기 때문'이므로.
트랙 구성이 이 대조를 충실히 따르지는 않는다. 어둡고 매서운 첫 세 곡을 지나면 디스코 기조의 두 곡이 등장하고, 감상적인 테마를 몇 가지 무드로 표현하는 곡들이 이어진다. 모두 매력적인 곡들이며, 각기 가사의 선명한 주제와 팝송의 미덕을 매우 잘 결합하고 있다. 그러나 테마를 완성하는 단위로서 앨범을 조망한다면 중반부터는 사뭇 다른 작품이라 할 만하다. 가사의 태도도 그렇다. 상대가 좋아한다고 말해줘야 하거나('Yeah Yeah Yeah'), 상대에게 거절 당하거나('The Happiest Girl'), '아쉬울 때만' 다가오는 상대를 간절히 원하거나('Ready For Love') 한다. 적어도 독니를 꽂아 넣거나 구역을 봉쇄해버리는 사람들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쉬움이기도 하지만 가능성이기도 하다. '과격한 얼굴에 그렇지 않은 태도'는 YG가 정립한 케이팝 히트 공식이기도 하고, 특히 해외 팬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카디 비가 너무 센 가사를 써와서 몇 번이고 반려해야 했다는 후문의 아티스트가 성인 인증이 필요한 'Explicit' 등급의 곡을 발표하고, 영어 가사나 리사의 랩 비중이 두드러지는 등, 세계 시장을 노린 조율도 제법 눈에 띄는 앨범이다. 중반 이후 앨범의 무드와 테마도 틴팝 스탠더드를 향해 조금 더 나아갔다고 생각하면 만족스럽게 즐길 만한 웰메이드 팝송들이다.
특히, 블랙핑크처럼 강력하지 않은 평범한 청자에게 공감대를 일으키기 좋은 태도를, 매우 구체적인 드라마로 담아낸다. 타이틀-패키징과 타이틀-수록곡이 서로 다른 각도의 대조들을 보이고 있음을 꼭 아쉬워할 것은 없을지 모른다. 매우 치밀한 콘셉트적 정합성을 요구한다면 블랙핑크는 "나에게는 그런 식의 증명이 필요 없다"고 대답해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백조는 수면 위에서도 애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당신의 구역을 접수해버리고 만다. "블랙핑크가 블랙핑크 했다"는 말을 여기에 쓰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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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대중음악평론가)
밍
2022.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