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불가해성은 삶의 필연적인 조건 같아요
불가해성은 어쩔 수가 없는 삶의 조건인 것 같아요. '삶'이라는 것은 사람의 '앎'을 항상 초과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항상 불가해한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되게 필수적인, 필연적인 삶의 조건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굳이 나의 이해가 필요하지 않아도 삶은 굴러가잖아요.
글ㆍ사진 임나리
202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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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박의 선택

『우리는 투기의 민족입니다』

이한 저 | 위즈덤하우스



모두가 '서울 부동산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서울 부동산 절대 안망론'이 있지 않습니까.(웃음) 그런 서울 선망 사상이 다 있는데, 이 책의 처음을 보면 한국에서는 조선 시대부터 서울이 선망의 땅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서울을 이야기할 때 인용하는 속담이 있죠.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라는 속담인데 『성호사설』'이항복이 이런 말을 했다더라'라고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말과 소의 새끼는 시골로 내려가야 하고 사람의 자식은 한양으로 올라가야 한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한양은 예의범절이 곧게 서 있기 때문에 (사람은) 거기에서 배워야 된다는 게 이항복의 주장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선비들이 이 말을 되게 못마땅하게 여겨서 반론을 펼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비들이 뭐라고 하든 사람들은 계속 한양으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심지어 정약용도 아들들한테 한양으로 가라고 했어요. 정약용이 생각하기에는 한양이 외국에서 사람도 들어오는 유일한 도시고, 누가 새로운 책을 썼는지에 대한 정보가 다 한양에서 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한양으로 가야 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에도 한양의 땅값이 비쌌다고 합니다. 이 책의 뒤편에 보시면, 그 당시 한양의 집을 지금 시세로 계산을 하면 10억 정도였대요. 현재 서울 아파트 가격이랑 비슷하죠. 그래서 정약용이 아들한테 조언을 합니다.

'만약에 돈이 없어가지고 한양 한복판으로 갈 수가 없으면 잠시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서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을 불린 후에 들어가라'

재밌는 건, 지금으로 치자면 장관급인 관리들도 한양이 비싸서 (한양에) 못 살았대요. 이황이 안동 출신인데, 서울에서 일하려면 서울에 집을 구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집을 못 사서 월세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비싼 한양에 누가 살았냐, 부모 잘 만나서 한양 집을 물려받은 금수저들이 살았습니다. 세자가 아닌 왕의 자식들이 결혼해서 출가하면 한양에 살게 되잖아요. 그러면 왕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의 집을 허물어 버리고 대주택을 지어버립니다. 왕족 말고 금수저인 예시는 율곡 이이가 있습니다. 율곡 이이는 외할머니가 한양의 집을 물려줬습니다. 당시 조선은 가치관들이 되게 기이하게 맞물리던 때였어요. 선비들은 이익을 추구하면 안 된다면서 비판을 했지만 사실 모두가 이익을 추구하면서 조선판 자본주의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거죠. 심지어 세종 때 '유정현'이라는 사람은 영의정까지 지내면서 돈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요즘 시대의 재테크 광풍과 온갖 서울 최고론과 기타 등등을 보면서 우리가 이게 다 자본주의 때문이고 신자유주의 때문이고 외세의 어떤 자본 때문이라고 할 때가 많은데, 물론 시스템의 문제도 있겠지만, 인간의 욕심이 계속되고 있었고 인간의 욕심이 굉장히 한이 없고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걸 이 책을 보면서 느끼게 됐어요. 그리고 인간이 그렇게까지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도 읽으면서 많이 생각을 했어요. 공포랑 소문에 너무 휩싸일 때가 많고, 소문 때문에 시장이 갑자기 망하기도 하고 소문 때문에 갑자기 가격이 오르기도 하더라고요. 지금 시대에 이 책을 통해서 역사를 보면서 '이 욕심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냥의 선택

『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

조우리 저 | 문학동네



주인공은 열다섯 살 소년 최현수입니다. 현수에게는 네 살 터울의 여동생 '혜진'이 있었어요. 과거형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5년 전에 네 식구가 동해로 여행을 갔다가 혜진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찾지 못한 상태예요. 여기까지 들으면 시종일관 어두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지만, 소설의 분위기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조우리 작가님이 이 이야기를 쓰실 때 라디오에서 사연을 하나 들으셨대요. 사연을 보낸 사람이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몇날 며칠 동안 자지도 않고 울고만 있었는데, 어느 날 열린 창문 틈새로 갓 튀긴 치킨 냄새가 밀려들어온 거예요. 그 순간 유혹을 참을 수가 없어서 치킨을 시켜서 맛있게 먹었대요. 작가님이 이 사연을 듣고 어떤 삶의 의지, 희망 같은 것을 느끼셨다고 해요. 절망 속에 있으면서도 삶의 의지가 솟아나는 순간이 되게 불가해한데, 그런 순간이 한 번쯤은 우리를 스쳐간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물론 이 소설에는 어두운 이야기들도 있어요. 주인공인 '현수'가 동생이 실종되기 전에 단둘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이 아이는 자라면서 계속 죄책감을 느꼈겠죠. 그런 아이가 지금 사춘기를 보내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면서 어떤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가족의 한 구성원이 사라졌을 때, 그게 자식일 경우, 부모의 삶이 얼마나 달라지고 일상이 얼마나 변화하는지를 그린 부분도 결코 가볍지 않아요. 그런데 그것만 있지는 않다는 거죠. 

저는 이 소설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우리가 때로 감당하기 힘든 엄청 큰 사건을 겪지만, 그 뒤에도 생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잖아요.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했을 때, 그건 '일상이 어떤 시간들로 채워질까'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엇에 기대어서 살까'라는 의미이기도 하잖아요. 이 소설에는 그 두 가지가 다 들어있어요. 인물들의 일상이 어떻게 변화했고 현재에 이르렀는지, 현재의 모습은 어떠한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요. 이들이 어디에 지탱해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나, (앞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나, 그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현수가 방과후 돌봄센터를 다니면서 '서 선생님'이라는 남자 선생님을 만나게 돼요. 그런데 이 선생님이 자꾸 현수를 붙들고 <서프라이즈>라는 TV 프로그램 얘기를 해요. 현수는 관심도 없는데 그 얘기를 계속 늘어놓습니다. 현수와 선생님 사이에 '개'가 한 마리 생기게 되는데요. 강아지 이름이 '개'예요. 누군가 돌봄센터 앞에 유기하고 갔고 선생님이 이 강아지를 품게 됩니다. 그런데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아이에게 선천성 심장병이 있어서 앞으로 상태가 안 좋아질 거라고 해요. 그래서 현수는 불안해합니다. 사라질지 모르니까 정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선생님은 그건 모든 존재가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아낌없이 사랑을 줍니다.

'개'를 보면서 서 선생님이 처음으로 자기 얘기를 해요. "우리 딸도 개를 참 좋아하는데..."라면서.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까 말씀드리지는 않을게요. 비유적으로 얘기하면, 서 선생님이 소설에서 "누구나 가슴 속에 빈방을 가지고 산다"는 말을 하는데요. 비어 있지만 닫아버릴 수 없는, 계속 가지고 살아야 하는 빈방이 있다는 거예요. 선생님도 누군가의 빈자리를 견디고 있는 사람이었던 거죠. 

현수 곁에는 그런 사람들이 또, 또, 생깁니다. 그러면서 현수도 달라져요. 할 수 없었던 것들, 해야만 했는데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계속 무겁고 슬프기만 하거나 무력감과 좌절감을 안겨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경쾌하고 위트 있는 부분들도 있고요. 읽고 나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어요.



한자(황정은)의 선택

『불볕더위에 대처하는 법』

매기 오파렐 저 / 이상아 역 | 문학과지성사



이 책에는 라이어든 가족이 등장을 합니다. 어머니인 그레타, 아버지인 로버트, 장녀인 모니카, 장남인 마이클 프랜시스, 막내인 에이바. 때는 1976년입니다. 1976년에 영국에 실제로 극심한 가뭄이 닥쳤나 봐요. 1976년 7월 15일 목요일부터 7월 18일 일요일까지, 나흘 사이에 라이어든 가족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어디를 다녀왔고, 그들 각자가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었는지를 천천히 보여주는 소설인데요. 

작가인 '매기 오파렐'은 1972년 북아일랜드 태생입니다. 라이어든 가족하고 마찬가지로 작가도 아일랜드계인 거죠. 아일랜드라는 정체성은 소설 전면에 주요한 요소로 등장을 하지는 않지만 라이어든 가족 각자에게 은근히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조건입니다. 그리고 1970년대 영국 내 가톨릭이라는 정체성도 이 소설이 품은 미스터리의 배경이자 원인이기도 한데요. 가톨릭 가치관이라는 게 있잖아요. 혼전 순결과 이혼에 엄격하고 임신 중단을 금지하는 종교관이 있습니다. 게다가 영국계 성공회가 주류인 영국 사회에서 아일랜드계 가톨릭은 오랜 기간 박해의 대상이기도 했어요. 

라이어든 가족이 아일랜드계라서 겪는 일로는, 그레타가 런던에서 IRA 테러 사건이 벌어진 직후에 늘 다니던 이웃 잡화점에 들어가서 버터 한 덩어리를 사려고 하는데 거절당하고 쫓겨나는 삽화가 있어요. 둘째이자 장남인 마이클 프랜시스에게도 비슷한 삽화가 있는데요. 여자친구의 집에 인사를 하러 갔는데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마이클 프랜시스에게 묻습니다. 너도 테러 집단과 교류가 있느냐. 이런 무례한 질문을 받고 마이클 프랜시스가 복수를 하는 것처럼 그 집에서 여자친구와 섹스를 해요. 그게 또 임신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좋아하기는 하지만 딱히 확신은 없는 결혼 생활에 진입을 하게 됩니다. 막내인 에이바는 미국에 살고 있는데, 남자친구인 게이브가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한 병역 기피자입니다. 수배된 상태로 아주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사실상 이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비밀을 가지고 있고 이 중 어떤 비밀은 중반 이후에야 밝혀지기도 합니다. 

소설은 불볕더위로 시작이 돼요. 그레타가 새벽이 되자마자 폭염 때문에 잠을 깨는 장면으로 시작이 되는데 '이런 날씨야말로 빵 구울 날씨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빵을 구워요. 그리고 로버트가 부엌에 나타나서 너무 덥다고 말을 합니다. 로버트는 얼마 전에 정년을 맞아 퇴직을 해서 집에 있는 상태예요. 일정한 루틴이 있는 생활이 중단된 사람인 거죠. 로버트가 부엌에 서 있다가 항상 출근할 때 했던 것처럼 가판대에 가서 신문을 사오겠다면서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아요. 실종됩니다.

그래서 라이어든 가족이 이 집에 모입니다. 뉴욕에 있던 에이바도 영국으로 돌아와요. 그런데 이 가족은 현재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서로 간에 그다지 친밀한 상태도 아니에요. 어색하게 다시 만나서 아버지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각자의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나는 거죠. 저는 이 소설을 가족 소설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저마다의 비밀리에 관한 이야기라서, 그보다는 삶의 불가해성에 대한 이야기라서.

첫 장부터 대단히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이 분명히 있는 소설이고요. 불볕더위에 어떻게 대처한다는 것인지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만, 이 소설의 불볕더위가 단순한 기상 조건만은 아니었습니다. 살다 보면 불볕더위처럼 어쩔 수 없이 나한테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들이 반드시 생기잖아요. 그런데 불가해성은 어쩔 수가 없는 삶의 조건인 것 같아요. '삶'이라는 것은 사람의 '앎'을 항상 초과하는 거잖아요. 그러니 항상 불가해한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되게 필수적인, 필연적인 삶의 조건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굳이 나의 이해가 필요하지 않아도 삶은 굴러가잖아요. 

이 소설에서 언급된 불볕더위라는 것이 비밀일 수도 있고, 상처일 수도 있고, 혹은 남은 이해할 수 없고 실은 자기도 잘 이해할 수가 없는 자신의 어떤 선택들에 다른 이름이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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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