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는 여성이면서 엄마이고, 동시에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열한 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열한 명의 인터뷰 참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성, 엄마이자 한국 예술계에서 오래 활동해 온 두 명의 저자는 지금 미술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들을 가감 없이 다루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여성의 경력 단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결혼’과 ‘엄마’의 역할이 어떻게 작가들의 활동과 연관되는지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제목부터가 강렬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성만이 ‘결혼’과 ‘엄마’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구나 느꼈습니다. 이 책은 두 분의 경험도 크게 작용했겠지요?
고동연 : 여성 이론가, 연구가로서 제 경험이 당연히 반영되지요. 하지만 저의 아들은 이제 대학교를 졸업한 상태라 육아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요. 한편으로는 유학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기는 했는데 이번 기회에 무의식적으로 억누르고 있었다고 느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주위의 기획자들, 작가들을 보면서 공감해 온 부분을 구체적으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왜 여성은 육아의 경험을 별로 이야기하지 못해 왔나, 뭔가 포장하려고만 해 왔나 하는 것도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예요.
고윤정 : 매 순간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독립 큐레이터, 말하자면 프리랜서로 일하는데, 프리랜서로 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에요. 정해진 동료와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싶은 순간이 많은데, 아이 키우면서 일하다 보니까 프리랜서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르게 되었지요.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에 언제 어떻게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올지 등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서 갑자기 포기하거나 혹은 아주 느린 시간으로 실천하는 일들이 늘 있지요.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것이 윤석남 작가부터 국동완 작가까지, 그러니까 80대 원로 작가부터 40대 초반의 젊은 작가들까지 섭외하셨어요. 어떤 기준으로 인터뷰 참여자들을 선택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미술계에서 30대 여성 작가들이 육아의 경험을 쓴 책이 인기를 끈 적이 있었는데 주위의 30~40대 여성 작가들이 윗세대의 이야기를 궁금해했어요. 아울러 70~80대 한국 여성 작가들은 연세가 있으니 기록 차원에서라도 서둘러 그들의 경험담을 남겨야겠다는 절박함도 작용했어요. 인터뷰 참여자의 기준은 어려운 질문인데요. 결국 해당 주제에 대한 경험이 많은 분과 그래도 작가로서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분들을 함께 고르려고 했어요. 완벽은 없겠지만 이 주제에 대해 진지한 분들, 단순히 책을 통해서 자신의 작업을 알리려는 의도 이상의 경험과 참여의식을 지닌 분들을 섭외하려고 했어요.
마찬가지로 예술계에서 오래 활동해 오신 두 분이라 ‘부부 작가’, ‘여성의 몸’, ‘연대’, ‘성차별’ 같은 가장 뜨거우면서도 민감한 이슈를 단도직입적으로 다루셨어요.
고윤정 : 사실은 미술계에서 예전부터 일어나던 현상들인데,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에요. 연대를 통하여 많은 예술가들이 콜렉티브 활동을 해요. 경제적인 이유이거나 아이디어의 공유, 실천적인 전략의 기류 아래에서 생겼던 일들이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밖으로 보이지 않은 내부의 균열들이 존재하기 마련이거든요. 그 대부분이 성차별적인 이슈들이었어요. 그런 일들이 곪고 곪아서 아주 최근까지도 부끄러운 일들이 계속되었지요. 미술계 역시 일단 이 위기를 넘기고 보자는 시선들이 공존했고요. 자신의 작품 속에서 그러한 일들을 첨예하게 드러냈던 예술가들을 보면서 저희도 적극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을 다루게 되었어요.
각각의 이슈들마다 작가들의 입장도 달랐을 텐데요. 인터뷰 뒷이야기도 흥미진진했을 것 같아요.
고동연 : 제가 이 책 작업 전에 여성 미술 관련 비평가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요. 섭외가 너무 어려웠어요. ‘여성 미술’과 연관된 프로젝트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어요. 작가의 경력에 도움이 안 되는 부분도 있고, 또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분명 부담돼요. 그래서 몇 분은 인터뷰는 진행했지만 책에는 포함할 수 없었어요. 혹시 나의 이야기가 우리 가족에게 누가 되지는 않는가? 내가 충분히 여성 작가들의 고민을 대변할 만큼 여성주의를 고민해 왔는가? 나의 이야기가 대표성을 띨 수 있는가? 작업에 대한 해석이 엄마로서의 경험에 한정되면 어떻게 하는가? 중요하고 공통된 이야기라서 공유해요.
이 책이 468쪽이거든요. 두꺼운 책이죠. 하지만 원고 정리와 편집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많은 분량을 줄이셨다고 들었어요. 책에는 아쉽게도 빠졌지만 이건 꼭 말하고 싶다, 하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고동연 : 작가분 중에서 법적인 다툼 중에 계신 분이 있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다 넣을 수도 없었기는 한데요. 어차피 인터뷰가 기록만을 위한 것은 아니에요. 이야기를 공유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기도 해요. 여하튼 그런 참여자 선생님들께는 너무 감사드리죠.
고윤정 : 원래 원고를 모두 실었다면 (분량 때문에) 인쇄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할 만큼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았어요. 아무래도 이면에 있는 이야기들을 드러내다 보니까 각 작가들이 가족들과 즐겁게 보낸 내용이나 행복했던 기억 등은 많이 삭제했지요. 사담이 공적인 이슈로 연결되지 않은 내용을 주로 지웠어요.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나와 있지 않은 작가들 중에도 육아로 느리게 성장하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그분들의 이야기는 다 담을 새가 없었어요. 그리고 육아 외에도 또 다른 돌봄 노동으로 고생하시는 분들, 그리고 어린 나이에 미술계에 상처받고 직업을 전향하신 분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하지 못했고요. 최근에 작업과 예술 공간을 병행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경향은 아주 일부만 다루게 되었고, 또 육아를 전담하는 요즘 아빠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루지 못했어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등장한 새로운 현상들이기도 한데 인터뷰 마무리 시점에 따라서 조금 달라진 지점이지요.
『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에는 여성, 엄마, 예술가인 작가들이 세 가지 다른 정체성을 모두 지키기 위한 전략이 솔직하고 진솔하게 담겨 있는데요. 저자인 두 분의 생존 전략도 궁금합니다.
고동연 : 저희가 여지없이 이 질문을 하는데, 많은 작가분들이 덕담처럼 해야 하는 이 질문에 부담을 느껴요. 생존에 대한 정의도 어렵고, 전략적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는 더 어렵네요. 미술계도 급변하니까요. 현실적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갖는 것, 정서적으로는 연대를 가질 수 있게 관객, 동료, 그리고 상담할 수 있는 진정한 멘토를 전문 분야에서 찾고 그 관계를 일구어 가는 데 미리부터 힘을 쏟는 것 등. 진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살아남는 전략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야 계속 사회가 필요로 하고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테니까요.
고윤정 : 작가들에게도 처음에 어떤 부분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머뭇거리는 분들이 많이 있었어요. 성공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지금 생각으로는 다음 일이 이어지기만 해도 생존을 위한 전략을 구사한 것이겠지만 향후에는 커리어 면에서 더 욕심을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읽으신 분들, 읽으실 분들에게 하시고 싶은 이야기요.
고동연 : 처음에 이 책을 만들 때 정정엽 선생님이 미술인들만 읽는 책이면 별로라고 하셨는데 미술인 아닌 사람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남성 독자들도요. 한국 미술계에서 어떻게 설치 미술, 사진 시장, 거대 공공 설치 작업, 미술 교육 등의 분야에서 여성들이 자신만의 틈새를 찾아왔는지도 기록되어 있거든요. 한국 미술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책으로도 의미를 지녀요. 『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를 통해 현대미술사, 문화 정책, 젠더와 작가 생존 전략의 다양한 이슈를 함께 고민해 주셨으면 해요.
고윤정 : 저는 이 책이 꼭 예술가를 위한 책보다는 자신의 일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예술가의 작품과 삶을 통해서 그것을 잘 투영시키는 것뿐이지요. 또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급여 없이도 작은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자아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분들이 많을 텐데 그런 분들에게 공감대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고동연 국내외 아트 레지던시의 멘토, 운영위원, 비평가로 활동 중이며, 2014년부터 국내 미술인의 인터뷰 책을 출간해 왔다. 2017년과 2018년 고양 야외조각축제의 커미셔너를 역임했다. 『응답하라 작가들: 우리 시대 미술가들은 어떻게 사는가?』(2015), 『Staying Alive: 우리 시대 큐레이터들의 생존기』(신현진 공저, 2016), 『소프트파워에서 굿즈까지: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 현대미술과 예술대중화 전략』(2018), 『The Korean War and the Postmemory Generation(한국 전쟁과 후기억 세대: 동시대 미술과 영화)』(Routledge, 2021) 등을 썼다. *고윤정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퍼포먼스 아트를 중심으로 한 《프롬나드런》(2019), 세종문화회관의 《행복이 나를 찾는다》(2020), 《하나의 당김, 네 개의 눈》(2021) 등을 기획했다. 2018년 『퍼포먼스 아티스트 레코딩』으로 한국의 퍼포먼스 아트, 공동체 기반의 예술을 실천하는 젊은 작가들에 대한 작은 비평서를 썼다. 끊임없이 생동하는 동시대 미술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 전시 공간 등 독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계 일원이 자생하는 생태계에 주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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