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카페에는 텀블러를 들고 가지만 밤이면 야식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배달 음식을 잔뜩 주문하는 나. 그 모순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다면? 하루치 작가의 카툰 에코 에세이 『지구를 위해 모두가 채식할 수는 없지만』을 읽어보자. 선량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지구를 위해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에 주목하는 이 에세이는 보통의 우리를 위한 책이다. 처음부터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완전한 비건식을 먹겠다는 거창한 다짐들은 잠시 넣어두자. 지구를 위하는 일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가령 이 에세이를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므로.
안녕하세요, 하루치 작가님! 『지구를 위해 모두가 채식할 수는 없지만』을 좋아해 주시는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 책을 좋아해 주셔서 감사 인사드립니다.(어색한 웃음)
에세이를 읽는 동안 저절로 웃음이 나는 귀여운 그림들을 보는 게 즐겁기도 하면서도 환경 오염을 시각적으로 명료하게 표현한 그림을 볼 때는 많은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따스하고 귀여운 그림들로 환경이라는 주제를 쉽게 풀어내면서도 마냥 가볍지만은 않게 그리는 게 어려울 것 같아요. 작업하실 때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두 가지로 나눠서 말씀드려야 할 듯합니다. 첫 번째는 과거에 느꼈던 어떤 감정을 불러와 복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물원을 탈출한 퓨마의 이야기도 당시 사건 보도를 접하며 가슴에 소용돌이쳤던 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불러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야만 그 뉴스를 보며 안타까워했던 독자 역시 저와 비슷한 감정의 동요와 공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저 혼자만 몰래 보는 기록물이라면 사실에 무게를 두겠지만, 타인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면 감정의 전달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본문에도 있는 내용인데, 책을 쓰는 사람과 보는 사람 사이의 양방향 실행력이었습니다. 평소 환경 관련 도서를 보면서 독자로서 작가와 발걸음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이 기억을 기반으로 제가 만드는 책은 같은 2인3각 같은 책이 되기를 바라며 쓰고 그렸습니다.
이번 카툰 에세이에는 3편의 그래픽노블을 비롯해서 70여 편의 그림들이 가득한데요. 이렇게나 풍성한 그림 중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그림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혹은 작업하면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 그림이 있을까요?
표지 그림으로 활용된 장면이 들어 있는 카툰 ‘달팽이’ 입니다. 집에서 작업실까지 걸어가는 25분 동안에 마주할 수 있는 ‘일시적 유해한 존재’들 사이에 우연히 ‘무해한 존재’로 여겨지는 인물을 만나 조금은 특별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던 기억을 담은 에피소드입니다. 타인과 자연에 유해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행위의 횟수를 줄이며 살자는 것이 제 삶의 목표이기도 합니다.(웃음) ‘달팽이-2’ 에피소드도 기획에 있었지만 당시 반려묘 피콕의 죽음으로 인한 정신과 육체의 고단함으로 에너지가 충분치 못해 이번 책에 담아내지 못한 점이 지금까지 아쉽네요.
작가님이 정말 환경 보호에 진심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97년도에 받은 장바구니를 지금도 사용하고 계신다는 얘기에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꾸준한 실천을 해올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환경엔 진심인 인간이야.”라고 다짐하며 살진 않았습니다. 그저 작은 습관과 관심이 가지를 뻗어 나가면서 지금까지 실천하는 중입니다. 사실 책에 나오는 장바구니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피콕이 급성신부전 판정을 받은 날로부터 몇 달 동안 일상의 기억이 사라졌거든요. 그때 장바구니도 사라졌습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단기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 하더라고요. 지금은 다른 장바구니를 사용하는데 그것도 10년은 족히 넘은 겁니다.
이번 에세이에서 언급했던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우리가 날씨다』나 상업적 어업의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씨스피라시>처럼 작가님이 인상 깊게 보았거나 혹은 함께 감상하고픈 환경 관련 콘텐츠들을 추천해주신다면요?
책에서 언급된 KBS 스폐셜 ‘북태평양 쓰레기 지대를 가다’와 ‘카우스피라시’, ‘씨스피라시’, 그리고 유트브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_지금까지 채결된 기후변화 정책,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편을 추천합니다. 꽤 심각해지실 예정이니 준비물로 물 한 컵 준비하시길 바랍니다.(웃지 않는 웃음)
특히 <씨스피라시>를 다룬 만화를 보고는 무척 놀랐습니다. 바다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중 어망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는 것은 몰랐거든요.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고 이렇게 새로운 사실을 한 가지 더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님도 환경에 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을까요?
5번 질문에 답변드린 내용 중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 기후정책 변화’ 편을 보면, 30년 동안 기후 변화와 관련된 국제 협약들의 유명무실한 실태를 윌리암 노드 하우스 교수의 주장을 빌어 질타하는 내용이 30분 가까이 이어집니다. 이 영상을 보시면 자연스럽게 지구 멸망 무빙워크에 자동 탑승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에세이 제목처럼 ‘지구를 위해 모두가 채식할 수는 없겠지만' 일상에서 환경 보호를 위해 작은 것부터 실천하겠다고 다짐한 독자분들께 응원의 메시지 부탁드려요.
언제부터인가 위로가 전부인 시대가 된 듯합니다. 현재의 당신이 가장 중요하다며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 전 동의할 수 없고요. 사는 것, 먹는 것, 버리는 것 모두, 미래를 미리 앞당겨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내 몸에. 타인에게. 지구에게. 유해한 행위를 하나씩 줄여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런 말씀 드릴 자격이 있나 싶지만 어제보단 더 노력할 것입니다.
*하루치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션 감독, 그림책 작가, 텍스타일 디자이너.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만든 그림책 『어뜨 이야기』로 앤서니 브라운 그림책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항상 장바구니를 소지하고 배달 음식은 잘 먹지 않는다. 식물이 가득한 공간에서 작은 자연을 만들며 살고 있다. 작은 집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고양이와 초록 식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산책할 때 보이는 것들, 머리 위 파란 하늘에 그려지는 상상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비교하며 혼자 몰래 부끄러워하는 감정들 모두를 쓰고 그리며 살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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