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폭력 사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손을 잡아끌고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부터 없애자고 말하기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삶은 부조리를 딛고 넘어서서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고 ‘너는 파괴되지 않은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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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령 작가

『나는 파괴되지 않아』는 비룡소 블루픽션상, 살림 청소년문학상 수상 박하령 작가가 4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언어폭력을 일삼는 무례한 엄마 아빠, ‘친구’라는 핑계로 따돌림과 멸시를 일삼는 또래들, 심지어 비슷한 처지라 여긴 이가 ‘그루밍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알고 이를 헤쳐 가는 열여덟 살 나연의 이야기가 세밀하게 기록된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작품 『나는 파괴되지 않아』는 작가님 작품 세계의 응집이라 여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청소년 문제의 여러 층위를 아주 촘촘히 담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이번 작품을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 소설은 아주 오래전 그루밍 성폭력 관련 기사를 보다가 울끈불끈 해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어른인 가해자가 ‘여중생과 자신은 사랑이었다’고 주장한 바를 수용한 대법원의 어처구니없는 인식에 분개했습니다. ‘그루밍’은 상대를 정신적으로 길들여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착취하는 범죄인데 특히 청소년기의 정서적 불안과 심리적 허기를 이용해 신뢰 관계를 형성해서 아이들을 조종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이 피해자인지조차 감지 못하고 정신적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에게 비난의 칼자루를 대고 책임을 운운한다는 건 늪에 빠진 아이들에게 발길질하고 자생할 기회조차 박탈하는 잔인한 행동입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도 청소년 그루밍 범죄에 대한 기사가 끊임없이 사회면에 오르고 있건만, 우리 사회는 그다지 인식의 전환이 바뀌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나는 파괴되지 않아'라는 책 제목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결국 아이들의 의지나 자생력을 강조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와닿습니다. 작가의 말을 보니 작품의 집필 방향을 틀었다는 말이 있던데요.

처음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주인공 화자인 ‘나연’이 출구를 찾지 못한 채 갇힌 회로 속에서 얼마나 힘겹게 지내는지, 왜 그루밍의 굴레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나연의 독백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사실 그루밍 범죄는 오롯이 어른들이 벌인 일이고 그러니 책임도 어른들의 몫이란 생각에서 어른들의 공감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청소년소설의 범주에서 다뤄지기 힘들 거라는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하지만 쓰다 보니 그건 너무 요원하고 안일한 결론이라는 생각에 닿았습니다. 건강한 어른들이 만들어 줄 튼실한 방어막이나 사회 제도는 너무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보다는 ‘상황은 바꿀 수는 없어도 상황을 바라보는 눈을 바꿀 수 있도록’ 아이들의 손을 잡아끌고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부터 없애자고 말하기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삶은 부조리를 딛고 넘어서서 앞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고 ‘너는 파괴되지 않은 존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기존의 작품들도 그러하고, 작가님은 사회성을 담은 소재로 10대의 현실을 꾸준히 파고드는 이야기를 펴내시지요. 현실을 날카롭게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라는 공감과 연대의 힘을 꾸준히 건네며 독자들에게 그 의미와 감동을 전해 준다고 생각됩니다. 이 작품도 그런 맥락에서 문학의 역할에 방점을 찍고 쓰신 거죠?

네. 전 어릴 적에 비교적 늦된 편이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청소년 시절을 소급해 보면 ‘앗!’ 싶을 정도로 황당한 생각을 펼친 기억이 많죠. 그래서 전 아이들은 어른들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건강한 성인이 될 때까지 정신적, 물리적,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정의처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어른들은 이 일의 일부분을 해야 합니다. 

미성년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미처 자라지 못해 여물지 못한 채로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들을 가정과 사회가 일정 기간 보호해 줘야지요. 개인의 한계로만 치부하거나 남의 집 아이의 일이라고 방치한다는 건 굳이 거창하게 선의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이 사회의 건강성을 내 자신이 해치는 일과 같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는 명제이고 삶의 진실을 찾아내는 문학이 그 일을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나연이 엄마 아빠를 ‘삼인칭’으로 부르면서 힘을 얻는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이 역시 아이들의 자생력을 믿고 싶은 작가님의 의도에서 비롯된 건가요?

그렇죠. 객관화 작업을 하게 하고 싶은 의도입니다. 명상 기법 중 나와 상대를 삼인칭으로 유체 이탈하듯 바라보는 관망법이 있습니다. 이처럼 상황에 매몰되지 않게 건강하지 않은 가족애에 대한 집착을 벗어 버리고 독립된 자아로 자신을 ‘리셋’해서 바라보게 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가족을 이성적으로 ‘거리 두기’ 하여 바라보는 객관화 작업이 필요한 것이죠. 

가족으로부터 건강하게 분리된 사람은 잘못된 메시지를 식별할 줄 알기에 ‘가족이므로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는 식의 강박으로 껴안고 뭉개는 일을 하지 않아요. 그게 궁극적으로는 더 바람직한 사랑이고요. 나연이 건강한 성인으로 크는 방향이 결국 부모에게도 모두에게도 좋은 일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건 비단 가족의 문제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듣다 보니 작가님은 전작들도 그렇지만 가족 안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가족 문제를 끊임없이 소설의 화두로 삼는 건 가족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많기 때문이죠.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한 에라스뮈스의 말처럼 우리는 부모를 통해서 그들의 가치와 신념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그게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 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 관한 학습도 가족을 통해 습득하게 됩니다. 자아상이 형성되는 곳도 가족이고요. 그런데 그 가치가 잘못된 것이라면 치명적이겠죠. 가족에 의해 받은 상처는 잘 드러나지 않아요.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자신이 왜 불안하고 우울한지 원인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부모의 비합리적인 신념이 만들어 놓은 잣대에 갇혀서 죄책감을 느끼면서 사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소설 속 나연의 엄마도 강박적인 기질에 통제 욕구가 강한 건강하지 않은 어른이라 나연이 그루밍 범죄에 휩쓸리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설 속에서 나연은 ‘곁을 내주지 않는, 말조차 건네기 힘든 무서운 엄마’를 안타까워하며 언제든 달려가 안길 수 있는 존재로서의 엄마를 갈망하는 대목이 나오죠. 이처럼 나연은 돌아갈 길이 없으니 그곳이 진흙탕이라는 걸 알아도 발을 담그고 악순환에 휘둘리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강연 등의 만남을 통해 청소년 독자들을 (온·오프라인으로) 마주할 기회가 많으시지요. 연령과 자리를 불문하고 요즘 청소년에게 ‘이것만은 꼭!’ 하고 전하는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사실 요즘 청소년은 물질적인 면에서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죠. 하지만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존중은 전보다는 못 한 것 같아요.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의 가치가 웃자라 있어서 스스로 깨닫고 자라도록 시간을 주기보다 빠른 효과를 얻기 위해 상명하달식의 언어로 즉각 행동하기를 강요하거나 ‘사랑=물질’이라는 도식으로 물질로 모든 걸 대체하기에 오히려 ‘정신적인 흙수저’가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덩치만 큰 어른 아이가 많아지거나 은둔형 외톨이의 증가가 바로 그 예라고 볼 수 있죠. 

게다가 삶의 일부를 SNS 속에서 살다 보니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일조차도 더뎌지고요. 그래서 메타버스 안에서의 그루밍 범죄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저는 청소년들에게 ‘삶의 주도권은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기를, 그래서 ‘자생력’이라는 말을 끊임없이 생각해 보기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조금 늦고 뒤처지더라도 항상 ‘나다움을 잃지 않기를’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전 과정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임을 알게 되길 바랍니다. 

작가님의 2022년 새해 계획이 궁금해집니다.

해마다 ‘나다운 글을 성실하게 쓰자’고 다짐하며 스스로를 독려합니다. 올해에도 청소년소설 작가로서 그들의 이야기 중 미처 닿지 못한 분야를 찾아가 취재하고 잘 구성해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글로 탄생시키고자 노력하려고 합니다. 소박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올해도 애써서 부지런해져 보겠습니다. 




* 박하령 

지금 이곳의 사회성을 담은 소재로 십 대의 현실을 예리하게 파고들며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라는 공감과 연대의 힘을 꾸준히 건네고 있다. 2010년 「난 삐뚤어질 테다!」가 KBS 미니시리즈 공모전에 당선되었고 장편소설 『의자 뺏기』로 제5회 살림 청소년문학상 대상을,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로 제10회 비룡소 블루픽션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기필코 서바이벌!』 『1인분의 사랑』 등이 있으며 『발버둥 치다』는 ‘2020 서울시 올해의 한 책’에 선정되는 등 여러 기관의 추천을 받았다. 그 밖에 단편집 『숏컷』 『나의 스파링 파트너』 『소녀를 위한 페미니즘』(공저) 『세븐 블라인드』(공저) 등이 있다.




나는 파괴되지 않아
나는 파괴되지 않아
박하령 저
책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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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