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조용한 희망>을 보았다. 총 10부작으로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다 볼 수 있는 분량이지만 하루에 한편씩 스트레스가 없는 날만 보느라 다 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명치끝까지 가슴이 답답해지는 내용이라 하루에 한 편 이상 보는 것은 심장에 무리가 올 것 같아 천천히 볼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알렉스는 바텐더로 일하는 남자친구와 함께 어린 딸 매디를 키우며 산다. 점점 폭력성을 보이는 남자친구와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알렉스는 매디를 데리고 집을 떠난다. 그때부터 쉼터에서 할머니 집으로, 트레일러에서 지인의 집으로 이곳저곳을 떠돌며 정착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렇게 불안정한 하루하루를 사는 동안 카시트에 앉은 어린 매디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생에 드리워지고 있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한 아이의 마음속에는 어떤 걱정이 자라고 있을까? 갑자기 혼자가 되어 삶의 무게를 짊어지게 된 부모가 그 마음을 세심히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 그런 매디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엄마 아빠도 나를 도와줄 수 없어서 내가 스스로 힘을 내야 할 때 이 이야기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전미화 작가의 『씩씩해요』는 은행잎같이 노랗고 작은 책이다. 표지에는 성별을 알기 힘든 어린이가 "씩씩해요"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아빠의 교통사고 장면으로 시작된다. 수술실에 들어간 아빠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는 어린이와 엄마만 남았다. 아빠의 죽음은 어린이의 삶을 바꿔 놓았다. 엄마가 일을 하기 시작하자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어두워져야 돌아오는 엄마를 보기 위해 밤마다 힘들게 잠을 참았다. 커다란 식탁에 앉아서 혼자 해결해야 하는 감정도 많아졌다. 어느 날 엄마는 어린이를 데리고 산에 올랐다. 산에서 엄마는 "이제부터 우리 둘이 씩씩하게 사는 거야."라고 말한다. 어린이에게 하는 말이자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일 것이다. 그렇게 씩씩하기를 다짐한 두 사람은 열심히 씩씩함을 만들어 그 힘으로 변화한다. 엄마는 운전을 시작하고 어린이는 엄마가 쓴 컵을 씻었다. 두 사람 사이에 활기가 생겼다. 바뀐 상황은 없다. 그저 씩씩하게 살자고 다짐한 것뿐이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리지만 살다 보니 그 말처럼 맞는 말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최민지 작가의 『문어 목욕탕』은 혼자 목욕탕에 가는 상황에서 부모의 부재를 인식하는 어린이의 마음을 다룬 책이다. 『씩씩해요』와 다르게 아빠가 아닌 엄마의 부재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보호자 없이 목욕탕에 간 어린이는 어색함을 느낀다. 왁자지껄한 탈의실에 혼자 온 어린이는 없는 것 같다. 벗은 몸을 수건으로 가리고 목욕탕에 들어가서 먹물탕 속으로 풍덩 다시 몸을 숨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문어를 만난다. 문어는 어린이와 놀아주는가 싶더니 박박 벅벅 어린이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주고 머리도 감겨준다. 문어의 도움으로 깨끗하게 목욕을 마친 어린이가 다음에 또 오겠다며 가볍게 목욕탕을 나선다. 그리고 외친다 "아, 시원해!" 처음의 주뼛대는 어린이가 아니다. 깨끗이 목욕을 해서 그런지 얼굴도 더 예뻐 보인다. 문어 목욕탕은 어떤 곳일까? 왜 혼자 온 어린이를 특별대우하게 되었을까? 목욕탕 입장료는 어른 팔천 원, 아이 팔백 원인데 혼자 온 아이의 입장료는 팔십 원이다. 단 돈 팔십 원에 세신까지 해주다니! 이 정도면 초특급 특별 대우가 아닐 수 없다. 환대 받은 것을 느낀 아이는 구부러진 등을 쭉 펼 수 있었을 것이다. 꼭 엄마만이, 부모만이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니다. 문어 목욕탕의 문어 사장님처럼 세상의 어린이를 응원하는 어른이 많다는 것을 어린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 믿음이 어린이의 마음도 활짝 펴게 할 것이다.
요즘 나에게는 마음을 어지럽히는 걱정이 있다. 매트리스 사이에 낀 완두콩 한 알처럼 이 작은 고민이 나의 일상을 조금씩 갉아먹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우울해지는 것이 싫어서 마음을 다잡을 문장을 찾아다녔다.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이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나를 지키려면 나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보다가 "씩씩해요"를 만나고 "아, 시원해!"도 만났다. 내가 우울에 빠지지 않도록 내밀어 준 손을 꽉 붙들었다. 카시트에 앉아서 몰려오는 불행을 바라봐야 할 때, 그렇지만 그 상황에 지고 싶지 않을 때 책 속의 두 어린이를 떠올려본다.
어린이를 따라 말해보자. "나는 씩씩해요."
그리고 이 걱정이 끝나면 이렇게 외칠 나를 상상한다. "아, 시원해!"
*전미화 쓰고 그린 책으로 『눈썹 올라간 철이』, 『씩씩해요』, 『미영이』, 『어느 우울한 날 마이클이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쩌면 그건』, 『빗방울이 후두둑』 『달 밝은 밤』 『오빠와 손잡고』 등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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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지(만화가)
서양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으며, 글과 그림으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많다. 만화책 <3그램>, <며느라기> 등을 펴냈으며, 여러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작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