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은 어떻게 시작되고, 깊어지는 걸까. 최민지 작가의 『나를 봐』는 우정의 비밀을 ‘보다’라는 동사로 풀어내는 그림책이다. 『나를 봐』 속 두 주인공인 ‘나’와 ‘친구’는 서로를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보고, 오래 보기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가 하면 남모를 아픔을 공유하며 진정한 친구가 되어간다. ‘이제 너를 잘 알 것 같아’라고 느끼는 순간도 잠시, 지켜보기를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서로를 발견해 가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나와 친구, 나아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 다르잖아요
책의 반응이 좋아요. ‘한국 그림책의 미래’라는 수식어도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책이 나오면 기분이 가라앉거나 들뜨거나 둘 중 하나였거든요. 독자들이 어떻게 읽을까 싶어서 부담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고요. 이제는 다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바로 다음 책을 준비할 수 있게 됐어요. 매일 온라인 서점 순위를 확인하긴 하지만요. (웃음)
순위를 말씀하시니까 생각나는데요. 작가들이 본인 이름이나 작품명으로 검색해서 독자 반응을 확인하잖아요. 그런데 그림책 작가들은 이런 방식으로 독자 반응을 확인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어린이 독자가 많으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강연이나 북 토크가 소중해요. 어린이 독자들이 어떤 장면에서 웃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거든요. 처음에는 북 토크 같은 행사가 저한테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어요. 독자를 위해서 하는 행사라고 생각했는데 해보고 알았죠. 나를 위해 해야 하는 거고, 필요한 일이구나 싶었어요.
‘몰랐는데 친구가 되었다’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게 좋았어요. 제목보다 먼저 이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이 메시지를 먼저 배치한 이유가 있나요?
모든 관계가 작은 공통점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적어도 저한테는 그런 경험이 많았어요. 그래서 같은 책을 보고 있는 두 아이가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면서 친구가 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싶었어요.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던 사실을 가까이 가서야 알게 되는 장면이 반복돼요.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바로 알게 되기도 하고요.
누군가를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 보이는 게 다르잖아요. 여러 위치에서 다른 시선으로 보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서로 몰랐던 사람이 친구가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는 게 신기해요. ‘친구가 된다는 게 뭘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이야기로 만들어진 것 같아요.
중간에 화자가 친구에게 ‘이제 널 다 아는 것 같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와요. 그 말을 하자마자 얼굴에 있던 점을 새로 발견하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모르는 게 있고, 끊임없이 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그 장면을 좋아하는데요. 다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낯선 모습을 볼 때가 있잖아요. 그런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멀리서 보던 코끼리를 가까이에서 다시 보는 장면에서 코끼리를 슬프게 표현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화려하고 재밌다고 생각한 어떤 공간에 갔는데 막상 가보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운 걸 목격한 적이 있거든요. 화려하고 다들 신난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는 고독할 수 있잖아요. 동물원 철창에 갇힌 코끼리의 모습을 통해서 그런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등장인물에게서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전작 『문어 목욕탕』에도 엄마가 없어서 목욕탕에 가보지 못한 아이가 등장하는데 외로운 아이들 또는 아이들이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에 주목하는 것 같아요.
제가 외롭나 봐요. (웃음) 어린이들이 주로 보는 책을 만들지만, 어린이의 마음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잘 알아서 만드는 게 아니라, 그저 내 이야기를 할 뿐인데요. 어렸을 때의 나를 생각해 보면 지금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적어도 감정이나 마음의 문제만큼은 어른과 어린이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린이라고 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특별히 어린이들의 외로운 마음을 알아주고 거기에 집중했다기보다 지금 내 마음의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어린이도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에 제 그림책에 공감하는 것 같아요.
그림책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장르
전작에서는 주인공의 성별이 모호하게 표현됐는데 이번 책에서는 두 인물 모두 여성이에요.
특별히 의도한 건 아닌데 제가 여자니까 자연스럽게 여성 인물을 생각하게 돼요. 『마법의 방방』에서는 의도적으로 성별을 모호하게 했어요. 남동생을 생각하면서 만든 이야기라 처음에는 남자아이로 그렸는데요. 생각해 보니 모험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부분 남자였던 것 같아서 아쉽더라고요. 그럼 여자로 그려야겠다 싶었는데 여자라는 걸 긴 머리나 화려한 옷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중성적인 이미지로 그렸어요. 성별 구분 없이 모든 아이가 자기 이야기로 읽기를 바라면서요.
실제로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던가요? 주인공의 성별을 물어본 독자들이 있었나요?
엄청 많이 물어보셨고요. (웃음) 어린이 독자보다 성인들이 많이 물어보세요. 어린이 독자들은 대부분 본인 성별로 받아들이고요.
재밌네요. 어린이 독자와 성인 독자의 질문이나 반응에 차이가 있나요?
성인들은 그림책 읽는 방법을 많이 물어보고요. 어린이 독자들의 질문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다 달라서 정말 신기해요. 어린이 독자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배우는 게 많고, 다음 책을 준비할 때 많이 참고해요. 질문 받고 당황스러울 때가 많은데요. 당황스럽지 않은 척하는 훈련을 하고 있어요. (웃음)
독자의 영향을 받아서 달라진 장면이나 작품이 있나요?
첫 책 『문어 목욕탕』이 나오기 전에 전시회를 열었는데요. 전시에 왔던 어린이 독자가 그림에 있는 물고기가 나중에 죽는지 안 죽는지 물어보더라고요. 그 물고기는 한 번 나오고 안 나오는 서브 주인공이었거든요. 스쳐 가는 캐릭터였어요.
비중 없는 인물에 집중한 독자였네요.
어린이 독자는 작은 인물에게도 관심이 많더라고요. 그 인물이 본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 장면을 처음부터 다시 그렸어요. 그 뒤로 면지에 있는 엑스트라 같은 인물에게도 서사를 넣으려고 노력해요. 이 책도 마찬가지인데요. 앞 면지에 임신한 사람이 있는데 뒷면지에서 아이를 낳아요. 작은 그림책이지만 이 안에서는 모든 인물이 살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렸어요.
텍스트로는 이야기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그림에서는 표현되는 거네요.
그렇죠. 그림책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어린이 독자들이 작은 것들을 잘 읽어내요.
어린이 독자들이 한 이야기나 질문 중에 인상 깊은 게 있다면요?
하나를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데요. 특징은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진짜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진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묻는 것들이 재밌어요. 이를테면 전작인 『문어 목욕탕』을 읽은 어린이 독자가 ‘문어 목욕탕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는 식이죠. (웃음)
어렵네요. 없다고 할 수도 없고요. (웃음) 그런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하나요?
“책에 있고, 나는 아직 안 가봤는데 너는 꼭 가봤으면 좋겠다”고 해요. “어딘가에 있다고 믿고 썼다”라고도 하고요. 없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없는 걸 있다고 거짓말할 수도 없으니까요. 『마법의 방방』을 읽은 독자가 달 토끼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하냐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웃음) 다 그림책의 이야기가 실제라고 생각하니까 할 수 있는 질문들이죠.
제목은 처음부터 ‘나를 봐’였나요?
처음에는 ‘보이니?’라는 질문 형태의 제목이었는데요. 왠지 모르게 아쉽더라고요. 다른 책의 제목이기도 했고요. 고민하던 중에 편집자님이 책에 나오는 말인 ‘나를 봐!’를 제안해 주셨고, ‘이거다’ 싶어서 결정했어요. 책의 메시지를 잘 표현하는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책은 비교적 분량이 짧잖아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해야 할 것 같아요.
함축적으로 해야겠다고 의식하고 작업하지는 않아요. 글과 그림이 동시에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장면이 구성되는데요. 글보다 그림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게 그림책이잖아요. 오히려 다른 책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하고 다 쏟아낼 수 있어서 해방감도 들고 재밌어요.
많이 덜어내야 하는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많은 걸 담을 수 있겠네요.
필요 없는 장면을 삭제하거나 생략한다는 면에서 덜어내기도 해야 하지만 텍스트보다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생략하거나 삭제한 장면이 있나요?
영화관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두 친구가 같이 영화를 보는 장면이었고, 모든 관객이 한 장면을 보고 있는데 상황을 표현하고 싶어서 넣었는데 흐름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삭제했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예요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셨다고요. 어떻게 그림책 작가가 됐나요?
그림책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그림책 독자가 되었는데요. 졸업하고 나서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왜 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재밌더라고요. 원래 글이 익숙한 사람이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그림책의 세계에 눈을 뜬 거죠. 그림책이 나를 위한 이야기로 느껴지더라고요.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졌고, 혼자서 A4용지 잘라서 만드는 미니북을 만들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했어요.
그림을 그리는 일이 생소하지는 않았나요?
생소하긴 했는데 불편하다거나 어렵지는 않았어요.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였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림에 대한 재능을 고민하지 않아서 그림책 작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되고 나니까 고민되더라고요. ‘더 잘 그려야 하는데’ 싶어서요. 소설 쓰기를 오래 공부해서인지 예전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로 하는 게 익숙했는데 지금은 그림책이 훨씬 편하고 좋아요. 그래서 계속 쓸 수 있는 것 같고요.
어린이 책을 만드는 어른으로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릴 때 경계하거나 특별히 주의하는 게 있다면요?
누군가에게 내 책이 첫 그림책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해요. 처음에는 무섭기도 했어요. 책에 나의 고정관념이 들어가진 않을까 싶어서요. 『마법의 방방』에 나오는 ‘백점만’이라는 캐릭터를 엄마 이미지로 그리려고 했다가 로봇으로 바꿨어요. 엄마를 잔소리하는 양육자로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양육자가 꼭 엄마일 필요는 없는데 저도 모르게 엄마로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림책을 만드는 일이 작가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겠네요.
그림책 만들면서 내가 편견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있어요. (웃음) 배우는 것도 많고요. 면지에 강아지가 나오는데요. 처음에는 이 강아지가 목줄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강아지를 키우는 편집자님이 목줄을 허리줄로 바꾸자고 하셔서 나중에 수정했거든요. 요즘은 목줄보다 허리줄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또 하나 배웠죠. 그림책을 잘 만들려면 끊임 없이 공부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림책은 쉽게 쓰고, 쉽게 읽힌다는 편견이 있기도 한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림책을 만들 때는 인물이 들어가는 위치에도 신경 써야 해요. 면지에 휠체어 타는 인물이 있는데요. 이 인물이 구석에 있는 것과 가운데 있는 것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이 책을 만들면서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걸 배웠어요.
수상 작가로서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분들한테 조언한다면요?
독자였기 때문에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뻔한 이야기지만, 그림책을 많이 보라는 말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많이 읽어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이야기하고 싶은 방식을 찾을 수 있어요. 그리고 본인이 그림과 글에 재능이 있는지 고민하기 앞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해요.
작가로서 바라는 게 있나요?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이전 작품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 다른 이야기로 독자들을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그림을 그릴 때도 이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도구를 쓰면서 책의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최민지 그림책 작가. 쓰고 그린 책으로 『문어 목욕탕』 『코끼리 미용실』 『마법의 방방』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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