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용의 아직도 고민] 착한 아이 콤플렉스, 벗어날 수 있을까요?
착한 아이 콤플렉스. 진료실에서 정말 자주 만나는 심리입니다. 전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라 성인만 진료하는데 말이죠. 이 심리는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게 만듭니다. 마치 누가 누가 더 말을 잘 듣나 경쟁하는 아이들처럼요.
글ㆍ사진 김지용(정신건강의학과 의사)
202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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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격주 화요일마다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아직도 고민’ 상담 칼럼을 연재합니다.

독자 분들의 사연을 받아 채택된 고민에 따뜻한 처방을 드립니다.

익명으로 신청이 가능하며, 간단한 소개(연령 등)와 함께 고민을 보내 주세요.

eumji01@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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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온 사연 

아직도 고민을 열심히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30대 초반 직장인이고요. 2년 전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전에는 엄마, 아빠, 남동생과 함께 살았고 이제 독립을 처음 한 거예요. 그런데 작년부터 엄마가 아프십니다. 작년에 쓰러지시고 뇌수술을 받고 거동이 불편하신데 우울증도 조금 있으세요. 

저는 약간 착한 딸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는데 엄마께서 해달라고 하는 것을 많이 해드리는 편이었어요. 작은 것도 부탁을 많이 하는 가정주부로만 살아오신 엄마는 인정욕구가 크신 편이에요. 지금 본인이 아프신 게 너무나 충격적이신. 그래도 열심히 엄마의 부탁을 많이 들어 드렸죠. 그런데 제가 이제 착한 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항상 엄마의 기대치에 부응하고자 했지만 엄마는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서운해 하시거든요. 엄마가 아픈 것은 너무 속상하고 힘들어요. 그런데 아빠도 계시고 동생도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도 아니고 병의 차도가 크진 않지만 일상 생활은 아주 힘들지 않아요. 우울증이 너무 걱정됐지만 생의 의지는 있으세요.

저는 독립하고 싶고 그래도 엄마가 많이 안쓰럽고 저에게 심리적으로 많은 걸을 기대하고 기대시는 분이라 어떻게 적절하게 조율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 마음은 제가 어떻게든 만들 수 있고 회복할 수 있는데요. 실질적으로 수술 후 후유증과 우울증을 갖고 계신 엄마께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 마음은 위로해주시지 않아도 되는데요. 병으로 아픈 엄마께 어떤 도움을 드려야 할지, 또 제가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지 궁금합니다. 아픈 사람에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싶은데 제가 심리적으로 너무 괴롭진 않길 바라는데, 제 욕심이 큰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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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처방전

오늘은 아이의 축구 교실이 있던 날입니다. 축구를 배우고 경기를 뛰는 아이를 보는 것이 요즘 제 삶의 낙이에요. 수업 도중 축구장 곳곳에 놓여있는 도구들을 정리해야 할 순간들이 몇차례 있는데, 그 때마다 선생님은 아주 간단한 마법으로 순식간에 상황을 해결합니다. “누가 좀 선생님 도와줄래?” 말이 떨어지는 즉시 아이들은 쏜살같이 축구장을 뛰어다닙니다. 분명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도구를 하나라도 더 가져오려고 경쟁이 붙기도 하죠. 참 예쁘고 귀여운 장면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모습이 성인 축구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어떻게 보일까요? 윽. 상상만 해도 뭔가 심하게 이질적입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고요. 그게 바로 아이와 성인의 차이입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진료실에서 정말 자주 만나는 심리입니다. 전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라 성인만 진료하는데 말이죠. 이 심리는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게 만듭니다. 마치 누가 누가 더 말을 잘 듣나 경쟁하는 아이들처럼요. 제3자가 볼 땐 어긋난 그 삶을 너무도 당연하단 듯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삶의 방식이 계속되면, 자라나면서 이미 예전에 버렸어야 할 아이 때의 옷을 계속 입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그렇기에 절 만나게 된 거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영화 부당거래에 나오는 명대사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독자님이 항상 엄마의 기대치에 부응하고자 했지만 결국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서운해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된 것처럼요. 서운해야 할, 아니 서운함을 넘어 화가 날 사람은 독자님입니다. 그런데 부모에게 부정적인 정서를 품는다는 것은 착한 아이에겐 허락되지 않을 일이기 때문에 내 마음 속에서 인정받지 못한 그 감정들은 차곡차곡 눌러 담기기만 합니다. 어릴 땐 어머니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방향에 맞추려 노력하지만, 자라나면서 점차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 따로 생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기준에 반하는 것은 착한 아이에겐 있어서 안 될 일이기 때문에 그 소망도 억압됩니다. 이렇게 계속 표현되지 못하고 억압되기만 한 마음 속에서는 결국 우울과 불안이 자라납니다. 

‘이제 더 이상 착한 딸이 되고 싶지 않다, 독립하고 싶다’는 독자님의 말은 정말 다행입니다. 이 삶의 방식이 잘못되었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제 추측이지만, 아마도 결혼이 독자님에게 미친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리적인 독립과 심리적인 독립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꽤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나를 어린아이에 머물게 만들던 관계에서 한발짝 거리가 생기면, 오랜 기간 멈춰 있던 내 자아의 성장이 자연스레 일어납니다. 또한 이제 독립된 가정을 꾸린 난 정말로 아이가 아님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무의식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부모님을 대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바로 옆에서 보며 얻게 되는 학습효과도 있죠. 

그런데 변하고 싶지만, 동시에 착한 딸로 남고 싶은 마음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번 글에서 명백히 보이고 있어요. 자신의 마음보다 어머니의 마음을 더 챙기고 있으니까요. 아픈 어머니께 가장 큰 힘이 되고 싶으면서 동시에 자신은 심리적으로 너무 괴롭질 않길 바라는 독자님의 마음, 당연히 이해는 가지만 저 역시 욕심이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내 자신을 더 우선시해야 할 시기예요. 30년 만에 나타난 지금 마음의 새싹을 이대로 시들게 해서는 안 돼요. 이 마음을 더 소중히 지키고 자라나게 하는데 온 노력을 기울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지난 오랜 시간 지속되어온 삶의 관성에 그대로 다시 끌려가버릴 수 있거든요. 새로운 삶의 방식이 불편하고 두려워서, 왠지 이러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에 익숙한 기존의 삶으로 회귀하는 분들이 참 많아요. 

어머니와의 관계를 완벽히 끊으라는 것이 아니에요. 일종의 타협점을 찾아볼 수 있어요.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님 본인을 위해서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 내 마음이 크게 불편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순차적으로 거리를 늘려 나가는 거죠. 멀어져 가는 독자님의 모습에 어머니께서 힘들어 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어머니에겐 다른 가족들도 있고, 독자님보다 훨씬 더 오래 성인으로 살아온 어머니가 감당하며 극복하실 수 있는 부분이죠. 

삶의 새로운 챕터를 열기 시작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 드려요.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에요. 내 생각, 내 감정, 내가 소망하는 것들. 과거의 마음이 발목 잡기도 하겠지만, 가족 외의 다른 관계에서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작용했던 부분들이 있겠지만, 그것들 하나하나 알아채고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앞으로 삶의 방향은 지금의 내가 결정할 수 있어요. 



어쩌다 정신과 의사
어쩌다 정신과 의사
김지용 저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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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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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al0321

2021.08.25

고민을 쓴 당사자는 아니지만, 김지용 의사님의 처방전에 제 마음도 토닥여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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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용(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책 <어쩌다 정신과의사>를 썼고 팟캐스트 <뇌부자들>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