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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용의 아직도 고민] 항상 머릿속에 걱정들이 가득해요

자잘한 걱정이 사라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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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속에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한가지를 꼽자면 전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라고 말씀드립니다. (2021.08.03)

<채널예스>에서 격주 화요일마다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아직도 고민’ 상담 칼럼을 연재합니다.

독자 분들의 사연을 받아 채택된 고민에 따뜻한 처방을 드립니다.

익명으로 신청이 가능하며, 간단한 소개(연령 등)와 함께 고민을 보내 주세요.

eumji01@yes24.com

언스플래쉬

독자에게 온 사연 

유튜브 <뇌부자들>를 잘 보고 있는 고등학생입니다. 저는 뚜렷한 고민거리가 있는 건 아닌데 항상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건강과 관련된 불안이 가장 크고, 친구 관련된 불안 등이 커요. 요즘에는 또 나의 성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 불안에 대해서 그렇게 인지하지는 못했는데 작년부터 제가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 너무 과잉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예를 들면 소화가 안되면 설마 위암?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카톡 하나에도 잘못 보냈나 걱정하고 계속 답장이 왔나 확인하는 일을 자주 해요. 친구들을 보면 그래도 세상을 편안하게 사는 것 같아요. 반면 저는 항상 살아가는게 힘들고 매일 자잘한 걱정들이 저를 괴롭힙니다.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친구들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그것으로 또 걱정이 시작되고요.

작년 얘기를 하자면 너무 아픈 데가 많아서 대학병원까지 갔다가 결국 정신과 진료를 받았어요. 내가 건강에 대한 불안도가 높다는 걸 인지하게 됐고요. 약을 복용했고,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 말씀을 대부분 잘 들어서, 아주 악화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또 막 호전된 것은 아니에요. 지금까지 약을 복용하고 있고, 한달에 한번씩 병원에 가기는 하지만 그냥 간단하게 이야기만 듣고 끝납니다.

의사 선생님이 누누이 이 약은 검증된 약이라고 말씀하셔서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이 치료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어요. 수능 때까지는 약을 먹는게 좋다고 하는데, 저는 빨리 약을 끊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리고 제가 갖고 있는 병이 유전적인 요인이 그래도 있다고 하시는데, 그러면 평생 동안 이렇게 불안에 떨면서 살아야 하나 걱정이 됩니다. 아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병이 무슨 병인지, 그리고 언제 회복될지, 회복될 수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걱정, 두려움, 불안을 줄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방학이 시작돼서 공부도 안정적이게 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이 좀 정리된 편이고 그렇게 걱정이 저를 덮치지는 않아요. 그런데 저는 이 시기가 지나면 또 나에게 닥쳐올 위험들, 고난들이 무서워요. 예를 들면 과연 수능을 잘 볼 수 있을까? 취직을 할 수 있을까?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힘든 걸 어떻게 견딜까? 연애는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맨날 들어요. 항상 머릿속에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 차 있는 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을까요?


언스플래쉬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처방전

너무 힘드시죠. 비슷한 걱정들에 힘들어하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기에 지금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괴로울지 이해합니다. 계속되는 다양한 걱정들에 마음이 편할 때가 없겠죠.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마음 상태는 같을 수 없을 거예요. 힘든 마음을 겨우 털어놓아도 내겐 너무도 심각한 그 걱정들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 듣는 타인들의 모습에 상처받고 혼란스러운 적도 있겠죠. 

독자님을 괴롭히는 이 질환의 정체는 불안장애입니다. 불안장애의 카테고리에 속한 여러 질환들 중 범불안장애가 의심되기는 하지만, 직접 만나 뵙지 않은 채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어렵겠네요. 그런데 정확한 진단명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불안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왜 이리 걱정이 많은 것인지 물어보는 분들께 저 또한 독자님의 주치의 선생님처럼 답합니다. 높은 불안 때문에 그렇다고요. 불안은 걱정을 만들어 내고, 그 걱정들에 의해 불안이 더 커지는 악순환이 생겨나죠. 이 악순환 속에서 온갖 걱정들이 자라납니다. 학업, 직업, 건강, 재정, 대인관계 등 일상의 거의 모든 주제들에 대한 걱정들이 내 머리를 채우게 되죠. 

이런 마음 상태에서는 몸도 편할 수가 없습니다. 항상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느라 쉽게 지치게 되죠. 만성 긴장 속에 자율신경계 균형이 깨져버려 신체 이곳저곳의 통증이 흔하며, 소화불량과 불면증이 동반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런 신체적 증상들이 뇌 속에서 시작된 문제라는 사실을 모르고 평생 진통제와 소화제, 수면제 등을 입에 달고 힘들어하며 지내시는 분들도 많은데, 독자님의 경우 빠른 시기에 제대로 된 치료가 시작된 것이 참 다행입니다. 불안장애는 단연코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거든요.

심장의 문제로 인한 높은 혈압과 췌장의 문제로 인한 높은 혈당이 약물에 의해 정상화될 수 있듯 뇌의 문제로 인한 높은 불안도 약물치료로 호전될 수 있습니다. 또한 고혈압과 당뇨의 치료에 있어 약물만큼이나 생활습관 교정이 중요하듯, 불안장애의 치료에 있어서도 생각하는 방식의 교정이 중요합니다. 불안 속에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한가지를 꼽자면 전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라고 말씀드립니다. 너무 무책임한 말 아니냐는 답변이 자주 돌아오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말이거든요. 그리고 정신과 의사로서 수련 받으며 ‘Here & Now’ (지금 여기)가 가장 중요하고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반복해서 배우게 되었는데, 이것 역시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강조하는지 말이죠. 그런데 진료 경험이 쌓여가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습니다. 건강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내일 일을 당겨와서 오늘 걱정하진 말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Here & Now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진료실에서 듣는 이야기들은 모두 과거와 미래에서 비롯된 후회와 걱정입니다. 남녀노소, 학생, 직장인, 전문직, 자영업자, 모두가 똑같습니다. 다들 과거를 후회하고 자책하거나 미래를 걱정하고 불안해하며 힘들어집니다. 그 때 집을 샀어야 했는데, 주식에 더 일찍 뛰어 들었어야 했는데… 집값이 더 오르면 어쩌지, 투자한 주식이 떨어지면 어쩌지 등등. 분명히 다 자연스러운 생각들이지만, 이 과거와 미래에서 오는, 내 손을 떠난 문제들에 대한 생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날수록 내 삶에서 평온한 순간은 사라집니다. 수능을 잘 볼 수 있을까? 취직을 할 수 있을까? 알바를 했을 때 힘든 걸 어떻게 견딜까? 대학가면 남자친구 사귈 수 있을까? 독자님의 이 고민들 중에 지금 손이 닿는 것은 단연코 첫번째 문제밖에 없습니다. 그 문제에만 집중하고, 그 외의 것들은 그 때 가서 걱정해야만 합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린 이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실 수 있어요. 문제는 아는데도 불구하고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겠죠. 원래 변화는 한 번의 깨달음으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헬스장에 한 번 갔다고 근육이 만들어지지 않듯 말이죠. 하지만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면 누구나 이전보다 근육질이 되어가듯, 마음이 단단해지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습관처럼 반복되는 내 생각 패턴을 알아차리고, 내 손을 떠난 걱정들을 나중으로 미루는 연습을 무던히 반복해야 합니다.

저 역시 강한 걱정이 들 때가 있습니다. 특히 진료실에서 자살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크게 걱정되곤 하죠. 예전엔 퇴근길에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그 걱정이 들곤 했습니다. 제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했던 건 아닌지 후회하고,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가 마음이 불편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도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제가 퇴근 후까지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전혀 없다는 사실을요. 진료실을 떠난 그 분이 다음 진료 때 안전하게 돌아오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며, 그렇기에 제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인 진료실에서의 Here & Now에 더 집중해야만 한다는 사실을요. 요즘 퇴근길에도 그날 진료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떠오르며 순간 불안해질 때가 종종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 불안에 이끌려가지 않습니다. 대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죠. ‘아, 이 분이 걱정되는구나. 다음 진료 시간에 얘기하자. 걱정 끝.’



어쩌다 정신과 의사
어쩌다 정신과 의사
김지용 저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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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용(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책 <어쩌다 정신과의사>를 썼고 팟캐스트 <뇌부자들>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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