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욱은 광고의 본질은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는 20년 차 카피라이터다. 현재는 광고회사 TBWA KOREA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글로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망설임 없이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쉬지 않고 쓰다 보니 사람들이 들어봤음 직한 카피들도 썼다. 시디즈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 e편한세상 ‘진심이 짓는다’, 비타500 ‘착한 드링크’, ABC마트 ‘세상의 모든 신발’, 겔포스 ‘겔의 포스가 함께하길’ 같은 광고들을 만들었고, SBS의 슬로건 ‘함께 만드는 기쁨’을 썼다. 지은 책으로는 『생각의 기쁨』 『평소의 발견』 『없던 오늘』이 있다. 최근에 출간한 『없던 오늘』에서는 카피라이터만의 예리한 감각과 섬세한 시선으로 코로나 이후 시대의 변화를 담아놓았다.
책의 재미를 느꼈던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어릴 적 동생과 함께 자던 방 한쪽 면은 책으로 가득했어요. 어머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집을 계속해서 사들이셨고, 그 중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백과사전이 스무 권 정도 있었습니다. 백과사전을 열면 공룡의 종류부터 온갖 운송수단의 역사까지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었고, 스마트폰도 없던 제 유년시절엔 그 책을 펴놓고 이불에 누워 귤을 까먹으며 빈둥거리는 것이 꽤나 행복한 호사였습니다. 일단 책을 펼치고 있으면 집안 구성원 누구도 제게 잔소리를 한다거나, 심부름을 시키는 일이 없었거든요. 아마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요? 책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책 읽는 시간은 작가님께 왜 소중한가요?
카피라이터로 오래 일하다 보니 일과시간에는 주로 생각하고, 씁니다. 제가 하는 일의 본질은 발상과 문장이에요. 발상과 문장은 계속해서 짜내기만 하면 계속해서 비슷비슷한 것들만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비슷비슷한 문장을 쓰는 카피라이터가 오래도록 일을 잘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꾸준히 인풋을 집어넣는 습관이에요. 한 사람의 생각을 오랫동안 응축한,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한 책을 읽는 것처럼 제게 소중한 인풋은 없습니다.
요즘 저자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코로나 위기가 단지 한 나라의 잘못된 식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지구를 대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이 위기는 질병의 이름과 양상만 바뀐 채 계속해서 찾아올 것 같아요. 요즘은 환경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책들을 더 자주 접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슬란드의 작가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이 쓴 『시간과 물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어보려 합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기사를 하도 많이 보고 들어서 이제는 그조차 당연하게 느껴지는 현대인들을 위해 쓴 책이라고 들었어요. ‘과학의 언어를 시의 언어로 번역한 책’이라는 평도 보았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최근작 『없던 오늘』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코로나 이후, 우리는 무엇을 잃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은 변치 않았으며, 앞으로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될지를 고민한 책을 썼습니다. ‘없던 오늘’이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코로나를 두고 저는 ‘질문의 질병’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이 미세한 바이러스가 인류의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삶의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중으로 보입니다. 부디 이 위기를 우리 모두가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일하던 방식, 우리가 지구를 대하던 방식, 지금까지는 해본 적 없던 근본적인 질문들을 더 자주 던졌으면 좋겠어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저
즐거우면 빗속에서 춤을 추고, 물레를 돌리는 데 방해가 되면 새끼손가락을 자르고, 오직 현재의 나의 감정에 충실한 조르바의 삶을 보면,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너무나 많은 굴레를 현재에 씌우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김훈 저
문장의 밀도가 중요한 카피라이터에게 김훈의 문장은 훌륭한 교보재입니다. 김훈의 글을 처음 읽고 그 단순명료함과 묵직함에 숨이 턱 막혔던 기억이 납니다.
알랭 드 보통 저
알랭 드 보통의 이 책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엑스레이로 찍어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무표정하게 해부하면서도 위트를 잊지 않는 보통의 초기작은 요즘 읽어도 여전히 매력이 넘치네요.
김서령 저
김서령 작가님의 문장은 마치 솜씨 좋은 이가 차려낸 한정식 같아요. 정갈하고, 세심합니다.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고 싶습니다.
유발 하라리 저
유발 하라리의 시선은 그 스케일부터 남다릅니다. 제 시선이 2021년 서울, 5층 건물 옥상 위 정도의 높이라면, 유발 하라리는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조망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시간대까지 마음대로 움직이죠.) 책을 펼치면, 지구 위 매우 제한된 영역에 묶여 있던 제가 순간 자유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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