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 과학 저술가이자 TV쇼 제작자 앤 드루얀의 딸 사샤 세이건이 쓴 첫 책이다.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았으며 2020년 가디언이 선정한 ‘이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30권의 책’에 선정됐다. 이 책은 부모에게서 이어받은 과학적 사고의 뿌리와 극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인문학적 통찰이 돋보이는 에세이다.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에게 과학이란 직업이기도 했지만, 세계관이자 철학이기도 했다. 그들이 말하는 과학적 시선이란 냉정한 검증의 눈초리가 아니라, 새롭게 발견된 진실을 기쁘게 바라보는 태도다.
사샤는 10대 때 아버지를 잃었지만 그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세계와 인간사를 정밀하게, 그러나 매우 따스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사샤 세이건은 태어남과 성장, 명절과 결혼, 죽음같이 인간의 생애주기에 따른 사건들을 계절의 순환이라는 자연의 리듬과 이어나가며, 우리가 행하는 일상 속 작은 의식들이 얼마나 삶의 순수한 기쁨을 일깨우는지 담담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발견해 나간다.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딸이라면 과학서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는데요. 과학이 아닌 극문학을 전공하고 작가로 활동하셨어요. 부모님의 길과는 다른 진로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부모님은 저에게 (그리고 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외심으로 가득한 과학적 시선을 일종의 철학으로 가르쳐주셨어요. 저는 과학자가 아니지만,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방법, 제가 삶을 이해하는 방식은 과학이에요. 문학과 역사는 제게 열정의 불씨를 일으켰고, 학교에서 제일 잘했던 과목이기도 해서 진로를 그렇게 정했지만, 과학은 저를 이끄는 빛이에요. 부모님이 저에게 가르쳐주신 것과 제 여정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것들을 연결할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저 나름대로 부모님의 작업과 유산을 기리고 싶어서요.
유명인의 딸로 살아가는 건 평생 타인의 평가를 받는 일이 뒤따르는, 쉽지 않은 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지만 작가님의 책을 보면 부모님과의 순간순간을 기억하고, 부모님이 지키려 했던 관점을 자기 삶으로 이어가려는 모습이 보입니다.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말 많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우주적 관점이에요. 우리는 지구 중심적으로 살아요. 우리 행성, 우리 종, 이 행성에서 우리가 사는 변두리에 집중하면서요. 때로는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시야를 넓혀서 광범위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아주 작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에서 오는 경이로움이 있어요. 모든 일이 우리가 생각한 대로 되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창백한 푸른 점』 연설을 찾아보라고 추천하곤 해요. 너무 아름다워서 연극의 독백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예요. 한국어로 번역된 영상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버지가 가진 삶의 관점을 잘 요약해주거든요.
(편집자 주 :『창백한 푸른 점』 영상은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의 순환과 인간의 생애주기를 교차한 차례가 눈에 띕니다. 이런 방향으로 책을 구상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과학과 역사, 미술과 수학, 문학과 종교 등의 주제가 서로 얽혀 있다는 생각은 전부 부모님이 가르쳐주셨어요. 학교에서는 각 분야를 구분하지만, 서로 깊은 연관이 있죠. 무엇이든 하나를 이해하면 다른 것도 이해하기 쉬워지는 법이니까요. 저는 기념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기념할 일이 아주 많은 것 같아요. 초현실적이거나 종교적인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고도 말이에요. 종교적, 문화적 기념일이나 기념식에 대해 조사하면서, 이런 전통의 바탕에 과학적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랐어요. 하지나 동지, 분점, 달의 위상, 출생, 성장과 죽음 등 우리는 천문학과 생물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하고 있더군요. 모두 상호연관이 있는 개념이죠. 제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정말 말해주고 싶었던 것 중 하나예요.
"신앙이 없더라도, 우리는 무언가를 기념하고 축하할 수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학과 신앙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간단히 설명을 부탁드려요.
맞아요, 인류는 오래도록 자연을 신성시했고, 행성들의 움직임과 규칙을 깊이 이해할수록 신이나 신성한 존재들과 가까워진다고 생각했죠. 최근 들어서야 과학과 종교를 반대 개념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옛날 생각들이 틀렸음을 과학이 증명했기 때문이겠죠. 그래도, 저처럼 비종교적인 사람들은 계속 삶을 기념해야 해요.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사람들이 결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어요.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흔히 종교가 사용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죠.
책에서는 많은 분량을 할애해 세계 곳곳의 전통적 의식과 유대교 신앙에 대해 서술합니다. 인류의 다양한 의식(ritual)을 조사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 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나요?
이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해요. 이 작은 행성에서도 계절이 바뀌고, 해가 뜨고 지고,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고,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죠. 멈춰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모든 변화를 수용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변화를 수용하는 것, 그게 바로 의식이라고 생각해요. 종교적인 의식이든 아니든, 다들 작은 의식 하나씩은 가지고 있잖아요. 의식을 통해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느끼기도 하고, 때론 주도권이 없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도 하죠. 제 생각에 최고의 의식은 이 짧은 순간 동안 살아 있음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는 의식이에요.
임신한 상태에서 이 책을 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이건 가만의 정신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곧 부모가 될 사람의 시각으로 책을 썼어요. 어린아이를 키우는 다른 부모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랐고요. 아이들은 세상에 대해 호기심도 많고, 세상을 아주 신기해 하고 즐거워 해요. 그런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요. 제 딸이 이제 네 살 정도인데, 정말 웃기고 환상으로 가득해요. 딸아이가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길 바라지만, 아이의 호기심이 그를 탐험하고 싶은 모든 곳으로 이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요.
영미권 이외 지역에서는 첫 출간입니다. 사샤 세이건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나는 한국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말씀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제 책이 한국에 출간되었다니 정말 기쁘고, 또 영광입니다. 한국 독자분들 여럿이 저에게 인스타그램이나 이메일로 연락을 주셨어요. 그중엔 사랑스럽고 호기심 많은 열두 살짜리 작가 지망생도 있었죠. 언젠가 꼭 한국에 가보고 싶어요.
*사샤 세이건 1982년 뉴욕 이서커에서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 영화, TV쇼 제작자이자 작가인 앤 드루얀의 딸로 태어났다. 뉴욕대학교에서 극문학을 전공했다.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은 사샤에게 방대한 우주와 자연현상에는 심오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으며,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되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가르쳤다. 부모의 삶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인간 존재를 다층적으로 탐색하는 글쓰기를 해왔다. 『뉴욕매거진』 『오, 디 오프라 매거진』 『바이올릿 북』 등의 잡지에 글을 실었다. 인버스미디어그룹이 뽑은 ‘2020년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50인’으로 선정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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