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감정을 드러냈을 때 따뜻하게 위로받아 본 경험이 별로 없는 현대인들은 상처받지 않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 ‘누구도 믿지 않는 것’이라 어느새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참 슬픈 일이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상담실에는 갈등의 한가운데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당황스러워하고, 낯선 누군가에게 눈물을 보여야 할 만큼 힘든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자신의 현재를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사람들을 위해 마치 상담실에서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답하듯 이 책을 써 내려갔다.
『마음이 답답할 때 꺼내보는 책』은 제목처럼, 책 속에 등장하는 비슷한 고민을 겪고 있거나,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가졌거나, 겉으로 두드러지는 정신과적 질병을 가진 사람 등 용기가 없어 쉽게 병원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의 문제를 점검하고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담았다.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이 책으로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스스로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줄 수 있기를 바란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음이 힘들어서 찾아오시는 분들을 매일 매일 상담실에서 만나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민경이고요, 최근에 ‘마음이 답답할 때 꺼내보는 책’을 펴낸 저자입니다. 누구든 삶을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게 어려운 일들을 겪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다치면 주위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기도 쉽고 어디서 치료 받야겠다 정보를 얻기도 수월한데요, 마음이 힘들어지면 선뜻 이걸 내가 어디서 위로를 받고 해결해야 하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혹은 가족이 우울해지거나 불안해지거나 평소에는 관심이 없고, 생소했던 조울병, 조현병 등에 걸리게 되면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특히나 정서적인 문제에 대해서 치료를 받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아직도 많은 편견이 있는지라, 주위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남들이 알까 봐 오히려 쉬쉬하게 되지요.
이런 상황에서 정말 많이 고민하고 망설이다 마음이 상처가 겹겹이 쌓인 이후에야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분들을 보면서 저는 평소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지난 2020년부터 시작된 팬데믹으로 인해 일상의 리듬이 깨지고, 위축되어 우리 마음은 더 힘들어졌는데, 접촉을 줄이라는 권고 때문에 집안에서 오롯이 혼자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는 판단하고 이해하는 뇌의 기능이 떨어지게 되는데요, 그럴 때는 애써 해독을 해야 하는 어려운 이론의 내용보다는 눈에 쉽게 들어오고 설명해주는 책이 도움이 됩니다. 당장 상담실을 찾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을 때 편하게 책을 펼쳐서 누군가와 대화하듯이 내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받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부부, 가족 간의 갈등에 대한 상담을 하고 계시잖아요. 요즘 특히나 상담하시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최근 들어 특히 사람들이 고민하는 부분이라면 아무래도 상대에 대한 ‘기대’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부부, 가족은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안전기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등반을 하다가 비바람이 몰아치고 폭설이라도 내리면 안전기지에 좀 머물면서 피해야 하는 건데요, 지금의 상황을 그렇게 비유해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COVID19 이라는 팬데믹으로 외부 활동에 많은 변화가 생겨서 아이들이 학교를 못가기도 하고,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를 하게 되고, 많은 분들이 실직을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내 잘못이 아닌데 갑작스럽게 위기에 몰리게 된 건데요, 이럴 때는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대상으로부터 위안을 받고 싶어집니다. 그럴 때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가족’ ‘배우자’ 일 텐데요, 문제는 지금 상황이 모두가 힘들다는 데 있습니다. 나는 위안이 필요한데 상대도 내게서 똑같이 위로받기를 원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서로 요구사항이 올라가게 되고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됩니다. “내가 밖에서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데 집이 이게 뭔지... 청소하나 제대로 못 해주나요?”, “아이들이 학교를 안가니 하루 세끼 밥을 해야 하고 하루종일 집안일을 하다 보니 너무 지치는데 도움 받을 곳이 없어요”, “하루 종일 온라인 수업하는 것도 힘들어 좀 쉬면 멍하니 뭐하냐고 혼내고, 부모님 잔소리가 너무 힘들어요” 이렇듯 가족 구성원 각자가 상대에게 서운한 것을 쏟아내게 되는데요. 각자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다 보면 초점이 안 맞기 일쑤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흔히 표면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청소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식사 준비가 힘들다면 배달 음식을 먹어야 하나 등의 문제해결 방식을 쓰는 겁니다. 그런데 종종 이런 표면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면 다 좋아질 것 같지만 관계는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흔한데요, 좀 더 근원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이해받고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상황에서 힘들다는 것, 외롭다는 것을 가까운 사람이 알아주고 서로 마음이 연결이 된다면 표면적인 문제는 얼마든지 같이 해결할 수 있는 거죠.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마음의 위안이 필요하고 가족 내에서 주고받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관계의 심리적 부담을 느끼시는 분들께는 어떻게 위로를 해드리면 좋을까요?
우리 모두는 함께 있을 때 즐거움과 편안함을 느끼고 에너지를 낼 수 있어서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을 모두 다 같이 이겨내기도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전하는 것을 보면 코로나로 인해서 마음이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 중 상당수가 고립되어 있는 분들입니다. 직장생활이 스트레스가 되어 힘들다고 해도, 규칙적으로 출근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코로나로 마음이 불안해졌다가도 옆 사람이 잘 이겨내는 걸 보면 같이 안도하게 되기도 합니다. 아이들도 마스크를 쓰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규칙적으로 수업을 하고 휴게 시간을 갖는 게 더 즐겁다고 합니다. 컴퓨터 화면에서 제공되는 일 방향 수업에서는 나눌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인 스티븐 포지스는 우리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고립과 감금’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가뜩이나 관계의 어려움이 컸는데 코로나로 사람들과의 만남이 차단되는 상태라면 정말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개 타인과의 관계에서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 것은, 함께 있고 싶으나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잘 모르겠고, 용기를 내서 다가갔으나 상처를 받은 경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이 많이 위축되고 불안할 때는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의 거리를 잘 유지하기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을 너무 줬다가 되레 상처를 받기도 하고, 빨리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상대의 내밀한 면을 불쑥 건드렸다가 외면을 당하기도 하거든요. 이럴 때는 내가 안전하게 느끼는 몇몇 사람들과 우선 교류하면서 연습하는 게 필요합니다. 코로나 방역 수칙으로 직접 만나서 식사를 하지 못한다면 마스크를 끼고 만나서 대화만 나눠도 좋습니다. 그게 힘들다면 전화나 편지, 메시지 등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관계에 대한 부담으로 사람들과의 만남을 멀리하고 혼자서만 지내게 되면 상처가 더더욱 견고해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잘 걷게 되기까지 수천, 수만 번을 넘어지면서 연습하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안전한 거리감을 연습해야 하는 겁니다. 가까운 사람이 관계의 상처로 잔뜩 웅크려 있다면 뭔가를 충고하거나 도와주려는 적극적인 행동 보다는 그저 같이 있어 주고 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우선 충분합니다.
직장을 다니다 보면 직장 안의 인간관계가 빠질 수 없는데요. 상사를 어려워하는 직장인분들께 추천하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로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요즘 정말 많은데요, 상황마다 또 내담자들마다의 경우가 달라서 딱 이 방법이면 해결이 된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움이 있는 거 같아요. 가장 흔한 경우를 예를 들어 풀어보겠습니다. 제가 대학병원에서 수련 중이었을 때였어요. 여러 명의 동료 전공의들과 교육을 받기 위해 모였을 때 교수님이 ‘내가 뭐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자네들의 반응은 다 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뒤이어 설명하시는 것은 우리 내면에는 상대와의 관계에 대해 일종의 지도와 같은 것이 있어서 그대로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수님이 지시하거나 꾸중을 하지 않았는데도, 지적당하지 않으려고 정말 애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윗사람의 조언은 귀담아듣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패턴은 어렸을 때 양육해준 사람과의 관계에서부터 만들어진다는 거지요. 내담자들과 상담을 해보면 유달리 상사, 윗사람들의 권위에 부담감을 느끼고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상사들이 딱히 권위적이진 않는데 그냥 윗사람은 불편해요’라고 말하는 걸 보면 모든 상사가 권위적이거나 꼰대는 아닌 거 같습니다.
이럴 때는 내 마음에서 상사의 말이나 행동의 어떤 부분이 거슬리는가에 집중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냉담하고 지시적인 태도가 상처가 된다면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있다고 상상하면서 내 감정을 좀 보호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명심할 것은 ‘ 00 상사 때문에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 저 사람만 없다면 좀 살만할 텐데...’라고 비난하거나 투덜거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 마음을 좌지우지하는 열쇠가 상대에게 가게 되는 것이거든요. 현실적으로 회사에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힘들잖아요? 내가 편안해지는 방법이 ‘저 사람이 바뀐다면, 혹은 사라진다면’이라고 단정하는 순간 나는 괴로움의 덫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잃게 되는 겁니다. 내가 불편해하는 관계의 패턴을 찾아보고 내 마음을 조금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관계가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헤어졌을 때의 심정은 정말 마음이 무너질 듯이 아프잖아요. 현재 그 부분으로 힘들어하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따듯한 위로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우선은 떠나보낸 슬픔이나 그리움, 아픔을 꾹꾹 눌러서 무시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억지로 눌러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슬픔은 언젠가는 더 곪아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터져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면 마음이 아프고 슬픈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우리는 그 슬픔을 좀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외로움, 슬픔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혹은 상담자에게 표현해보세요. 누군가에게 슬픔을 언어로 전달하게 되면 그 정도가 좀 약해질 수 있습니다. 감정이 올라와서 힘들고 괴로운 것도 말로 표현하다 보면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이 내가 소화할 수 있을 정도까지 차츰 가라앉기 시작하거든요. 힘들고 아픈 기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생생하게 떠올라 괴롭고 눈물이 나는 감정들이 컬러사진에서 흑백사진으로 바뀌듯이 내 마음속에서 덜 아프게 자리 잡게 될 겁니다.
혹시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이신 작가님께서는 상처를 받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해결을 위해 하는 행동이나 생각이 있으신지요?
정말 적절한 질문을 주셨는데요, 저는 사실 답답한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썼습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은 저에게도 힘든 시기였거든요. 많은 입원환자들을 돌보는 상황이라 감염관리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써야 했고, 확진자가 늘어나던 시기에는 입원환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외래에서 상담하던 분들의 상담 일정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 과정에서는 저는 상당한 무력함과 답답함을 느꼈고, 정신과전문의인 저조차도 그런 상황에서 비난할 대상을 찾게 되더라고요. ‘이게 다 00 때문이야’라고 투덜거리게 되는 식이죠. 그때 읽었던 책이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일할 것인가’였는데요, 그 책에 등장하는 의사들도 비슷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모이기만 하면 누가 누가 더 힘드나 경쟁하듯이 투덜거리고 한탄하게 된다고요.
그때 저자인 가완디는 투덜거리거나 한탄하는 대신 ‘글을 쓰라’고 권했습니다.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으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코로나19로 상담실조차 찾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상담하는 것과 비슷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글을 쓰자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고 당장 내가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것을 찾게 되면서 답답함이 해소가 되었던 거 같아요. 감정적으로 힘들 때는 글쓰기는 스스로의 마음을 좀 차분히 돌아보고 안정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막연한 답답함을 느끼실 때 제 책을 읽으시고, 독자분들도 스스로의 마음을 글로 적어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 꺼내보는 책』을 읽고 위로받고 행복해지실 독자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힘들고 답답한 마음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마음이 답답할 때 꺼내보는 책』이 그냥 편하게 쓱 꺼내서 볼 수 있는 마음의 비타민이 되길 바랍니다. 책을 통해서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내 마음을 위로하고 그 힘으로 주위를 돌아볼 수 있다면 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민경 부산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 가톨릭 중앙의료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았다. 명지병원 임상자문의 및 외래교수를 겸임하고 있으며, 인간 내면의 심리를 이해하고 싶어서 3년간의 융 분석을 통해 꿈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했다. 최면치료 고급과정을 수료했고, 최근에는 애착이론을 기반으로 부부관계의 회복을 돕는 ‘EFT 정서 중심적 부부치료’ 전문가 과정을 밟아 부부, 가족 간의 갈등과 외도 등의 문제를 돕고 있다. 지금은 병을 두려워하는 많은 분을 위해 방송에서 심리상담을 하고 있으며, 현장에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건강한 마음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rucollaa 브런치 @dr-rucolla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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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21.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