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A를 둘러싼 서로 다른 목소리들
잘나가는 애들 말고 코드가 맞는 친구랑 사귀고, 못하는 걸 감추려고 전전긍긍하지 않았어요. 유행에 민감했었는데, 그냥 좋아하는 스타일로 옷을 입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얻은 건 아주 컸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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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또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처럼 지난하지만 의미 있는 소녀들의 시간에 주목하는 작가, 김지숙 작가의 두 번째 청소년소설 『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가 출간됐다. 전작 『비밀노트』는 중학생 소녀들의 우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소설이었다. 『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는 그보다 자란, 성인의 문턱에 선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다. 미묘한 우정을 나누는 네 명의 소녀들은 서로를 상처 입히고, 또 치유하며 진짜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려낸다. 흡입력 있는 전개 속에 단연 빛나는 것은 김지숙 작가만의 애정 어린 시선이다. 상처 입은 존재들을 따뜻하게 감싸는 작가의 문장을 읽다 보면 독자 역시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



전작 『비밀노트』에 이어 『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로 소녀들의 미묘한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셨어요. 소녀들의 이야기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마 제 자신이 소녀로서 그 시기를 거쳐왔기 때문일 거예요. 청소년 소설을 쓰는 일은 지나간 십 대를 다시 한번 겪어내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어떻게 나이가 들어서 청소년 소설을 쓸 수 있냐는 질문을 간혹 받는데, 소설을 쓰다 보면 생각보다 그 시기가 멀지 않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청소년기의 강렬한 감정들이나 경험은 몸에 새겨지는 것 같거든요. 그 때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을 어른이 된 지금 다시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소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기도 하고요. 

물론 언젠가는 저 자신에게 국한된 기억에서 더 나아가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하셨겠지만, 학교폭력을 주제로 하는 이 책이 출간된 직후 사회적으로 학교폭력에 관한 이슈들이 쏟아져 나왔는데요, 이런 뉴스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마음으로 지켜봤어요. 본의 아니게 사회적 이슈와 출간 시기가 맞물렸는데, 실제로 제가 이 소설을 쓴 건 5년 전이었습니다. 작년에는 마무리 작업만 하고 책을 낸 거였죠. 근데 또 생각해보면 놀라울 건 없는 게, 학교폭력은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해왔으니까요. 

다만,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건 늘 현실이 소설보다 가혹하다는 거였어요. 약간의 스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 주인공들이 화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과연 화해가 답인가, 싶은 경우도 많았어요. 

소설 속 ‘소녀A’를 바라보는 독자들의 시선이 다양할 듯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에 선 인물이니까요. 소녀A라는 캐릭터를 구상하면서 어렵거나 고민된 부분이 있었다면요? 

다른 인물의 이야기들은 신나게 써내려간 것에 비해, 소녀A는 수도 없이 고치고 고민하면서 완성했어요. 소설의 구성 자체가 소녀A가 어떤 캐릭터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보니, 저 역시도 소녀A와의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애썼고요. 

쓰는 과정에서 소녀A는 실제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가해자에 더 가까웠던 때도 있고, 피해자에 더 가까웠던 버전도 있어요. 가해자 소녀A는 반성을 모르고 끝까지 자기 이득만을 생각하는 아이였고, 피해자 소녀A는 오히려 루머의 희생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소녀A를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운데에 두게 되었어요. 그건 인물들에게 화해의 실마리를 주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용서받을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었어요. 실제로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와 피해자 그 사이 어디 즈음에 놓여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유진, 선미, 세리, 아름은 서로 다른 아픔을 겪고 있죠. 소설을 쓰면서 특히나 마음이 가거나 감정 이입을 한 인물이 있을까요?  

여러 인물들에게 나름대로 공평하게 목소리가 주어지는 소설이기 때문에, 쓸 때는 특별히 한 인물에게 마음이 기울지 않았어요. 각자의 상처가 있고, 그 경중을 따지기가 어려웠으니까요. 그런데 책이 나온 다음에 다시 보니까, 유진이가 아픈 손가락처럼 마음에 걸렸어요. 유진의 상처는 이야기의 시발점이 될 만큼 강렬하기도 했고, 실제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뚜렷한 사건에서 피해자의 입장에 놓여 있었으니까요. 또 소설 속에서 아름과 화해를 하긴 했지만, 온전한 치유를 위해서는 더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해요. 소설이 담아내지 못한 그 아이의 뒷이야기를 혼자 생각해보곤 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렇듯이 우리는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잖아요. 남들의 시선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면 좋을까요? 

저 역시 청소년기에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아이였어요. 다른 아이들이 절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느라 학교에 다녀오면 녹초가 되기도 했어요. 전 책을 좋아했는데 친구들이 잘난척한다고 할까 봐 숨어서 읽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왜 타인의 시선 때문에 좋아하는 걸 포기해야 하는지 어느 순간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그냥 놔버렸어요. 극단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는 방향을 발전한 거죠. 잘나가는 애들 말고 코드가 맞는 친구랑 사귀고, 못하는 걸 감추려고 전전긍긍하지 않았어요. 유행에 민감했었는데, 그냥 좋아하는 스타일로 옷을 입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얻은 건 아주 컸어요. 제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편안해졌죠.‘진짜 나’보다 ‘타인이 보는 나’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오는 걸 늘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잃어버리는 건 위험한 일이니까요. 

“어떤 상처는 깊어서 극복할 수 없기도 해. 그럴 땐 같이 살아가야만 하지.”라는 문장이 긴 여운을 남기는데요. 이 문장이 말해주듯 누구나 마음속에 쉽게 지울 수 없는 상처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처를 보듬는 일이 쉽지 않은 독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주인공들이 화해하기를 바랐어요. 화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며 글을 써내려갔고요, 그런데 소설을 쓰면서 타인과의 화해보다는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게 훨씬 어렵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주인공들을 화해시키기 위해서는 각자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했어요. 타인과의 화해는 자신의 상처 치유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하니까요. 

마음을 바라보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생각보다 마음을 직시하는 게 어렵잖아요. 미움, 질투, 부끄러움, 자기비하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도 있는 그대로 보아주세요. 당장은 어렵더라도 끈을 놓지는 마세요. 여러분의 인생에도 유진, 선미, 세리, 아름이처럼 예상치 못한 계기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작가의 말’에서 독자들이 이 책을 덮을 때 해답보다는 질문을 품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는데요. 작가님은 이 책을 쓰시며 어떤 질문을 떠올리셨을지 궁금합니다. 

질문이 끊이지 않는 시간이었어요. ‘진정한 화해란 무엇인가’, ‘깊은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 ‘타인의 평가는 얼마나 중요한가’와 같은 질문이 수시로 머리를 맴돌고, 그 때마다 글의 진행이 막히기도 했습니다. 

제 자신이 만족스러운 해답을 얻은 것도 아니고, 독자 분들께도 답안을 보여드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의 선택을 통해 작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오해를 풀지 못하고 엇갈린 채 남아 있는 관계가 있다면, 그로 인한 상처를 오랫동안 외면해왔다면 소설 속 인물들의 선택이 힌트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김지숙

첫 직장 생활 중 쓴 단편소설 〈스미스〉로 2009년 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어릴 때 꿈은 디자이너, 변호사, 교사였으나 중학교 때 독서의 재미에 빠지면서 ‘글 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생각 많고 산만하고 대체로 평범한 십 대를 보냈지만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이라는 질문에는 고민 없이 “십 대”라고 답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청소년소설을 썼다. 궁극적인 꿈은 소설로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이다. 쓴 책으로는 《비밀노트》가 있다. 소설 동인 ‘오독’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
소녀A, 중도 하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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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