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 스토리>,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간 러브 테마
이것은 영화음악 역사상 가장 감성적이고 감동적인 결말 중 하나이다. 그렇게 불멸의 주제곡으로 우리의 기억을 잠식했다.
글ㆍ사진 이즘
202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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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4월 15일 개최된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에서 무려 7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최우수 작품상(Best Picture)을 위시해, 감독상(Best Director), 남우주연상(Best Actor), 여우주연상(Best Actress), 각본상(Best Story and Screenplay), 남우조연상(Best Supporting Actor),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Best Original Score)부문까지, 대중적 흥행은 물론, 전문 비평가들로부터도 걸작 대우를 받은 영화는 명실상부, 불멸의 명화가 되었다.

비록 6개 부문 후보 지명에 그쳤지만, <러브 스토리>는 영화로서도 그 진가를 충분히 입증했다. 장편 소설로 출판돼 1년 이상 베스트셀러의 명성을 이어온 원작의 공신력을 재 확인시켜준 셈.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부문, 즉 음악상 수상은 그러한 가운데 더욱 빛났다. 이전 골든 글로브(Golden Globe)에 이어 오스카 트로피까지 거머쥔 결과였다. 그 가치는 명불허전(名不虛傳).

오리지널 스코어는 프랑스 작곡가 프랑시스 레(Francis Lai)가 작곡했다. 1966년 클로드 를르슈(Claude Lelouch) 감독의 <남과 여>(A Man and A Woman)에 쓴 음악에 감화된 힐러(Arthur Hiller) 감독의 선택이었다. 힐러 감독은 프랑스어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레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원하는 음악의 종류와 음악이 사용될 위치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서신으로 레에게 전했고, 이러한 접근 방식이 매우 이례적이긴 했지만 레는 최선을 다해 음악으로 화답했다.

그는 그야말로 시대를 빛낸 음악,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주제선율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극 중 음대생 제니가 연주하는 건반악기를 사용했다. 관객이 여주인공과 감정적 일체감을 갖도록 한 것이었다. 레는 피아노가 사랑하는 남녀의 이야기와 그들의 무한한 사랑, 그리고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에 감정적인 매개체 역할을 하리라고 믿었다. 그는 또한 당시 현대 관객과의 음악적 소통을 위해 영화에 1970년대의 동시대적 사운드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1960~1970년대는 일명 “엘리베이터 뮤직(Elevator Music)”이라고도 불렸던 “무작(Muzak)”이 대중들의 일상 속 생활 음악으로 자리한 시기였음을 감안한 착안이었던 것. 일종의 배경음악으로 호텔, 레스토랑 및 전용 클럽, 소매점, 패션 매장, 항공사 및 공공장소 등에서 진정제 효과를 발휘한 무작은 패츠 웰러(Fats Waller)나 하비에르 쿠거(Xavier Cugot)과 같은 인기 아티스트가 연주한 당시의 인기곡이나 노래들로 구성되었다.

쉽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경음악(Easy Listening)', 클래식, 블루스, 재즈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포함되었고, 클래식의 오케스트라와 대중음악의 세션을 결합한 방식의 합주나 협주 또는 독주나 협연에 의해 구현되었다. 한편, 작곡가 레는 당대 최고의 록 밴드 비틀스(Beatles)를 위시해 포크(Folk), 리듬 앤 블루스(R&B), 재즈(Jazz), 디스코(Disco)와 같은 동시대의 대중적 유행 음악도 아울러 영화음악에 반영했다.

영화의 장면 전개에 맞게 조응하도록 사용된 지시 악곡들은 클래식 명곡들을 포함해 영화가 개봉된 시대의 분위기를 아우른 대중음악의 조화 및 병치가 두드러진다. 주로 두 주인공의 사랑에 초점을 맞춰 영상을 반주하는 테마를 시작으로 기악 편성에 따른 변주와 편곡의 형태로 나타나는 음악은 등장인물들의 동선과 감정에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동화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우선 “Love story theme”(러브 스토리 테마)은 도심 속 공원의 스케이트장에 홀로 앉아 독백하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향해 다가가는 카메라와 영화 제목이 나오는 화면을 반주한다. “그녀는 모차르트, 바흐, 비틀스, 그리고 자기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오닐의 대사 뒤로 다소 격정적인 터치로 매혹적인 화음을 넣는 피아노와 관현악 협주가 깔린다. 제니와 올리버가 처음 만나는 도서관으로 이동하기까지 연속해서 전개되는 장면에 사용된 이 곡은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 음악적 스토리텔링이다.

제니와 사별한 올리버의 해설과 패닝으로 들어가는 카메라워크, 레는 거기에 쓰인 'Love theme'(사랑의 테마)를 세 부분으로 나눠 제공한다. 먼저 피아노로 시작하고 기타, 그리고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결합해낸 방식이다. 기본적으로 이 세 가지로 나누고 결합한 악기 편성에 따른 반주인 한편, 여기서는 주제음악의 시작 어구만 제공한다.

영화에서 이 부분은 이를테면 세 문장 중 첫 번째 문장만 사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레가 이 영화의 감성적 핵심을 완벽하게 포착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Snow frolic(눈싸움)'은 올리버가 눈 속에서 뛰놀며 눈사람을 만들고 그들의 사랑을 축하하는 모습을 반주한다. 레는 “우, 우우우우”를 반복하는 다니엘 리카리(Danielle Licari)의 영적인 허밍 보컬과 클래식 하프시코드, 그리고 부드러운 베이스와 드럼에 의한 록 리듬으로 단순히 장면을 보조할 뿐이다. “Eb-Db-Bb-Eb-Fm-F-Bb-Eb-Bb-Eb-Fm-Bb-Eb-Fm-Bb-Eb-Bb-Eb”를 단조롭게 반복하는 화음이 뇌리에 각인된 이 곡은 이후 애청곡 1순위를 차지, 매해 연말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 축가로 자리매김했다.



'Concerto no. 3 in D-Allegro'에서 제니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하프시코드 협주곡 3번 라장조”를 연주한다. 극 중 안경을 쓰고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제니의 모습을 흐뭇하게 응시하는 올리버의 시선을 통해 법대생과 음대생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조화로운 협주곡의 화음이 교량 역할을 해주는 것과 같다. 'Search for Jenny(제니를 찾아서)'는 제니가 나서서 화해시키려 하지만 단호하게 거부하는 올리버와의 불화를 반주한다. 올리버는 화를 내며 자기 인생에서 빠지라고 소리치고, 그로 인해 제니는 도망친다. 그는 후회하고 곧 그녀를 찾기 위해 달려 나간다.

레는 올리버가 제니를 찾아 거리와 학원을 배회하는 장면에 계속해서 하프시코드의 러브 테마(제니의 모차르트 사랑)와 록 리듬(올리버의 비틀스 사랑)을 결합한 변주를 사용해 기억에 남을 순간을 연출하도록 돕는다. 서로 다른 듯, 결국 사랑이란 주제로 하나 된 남과 여의 운명은 일맥상통한다는 걸 테마음악으로 다시금 강조해 주는 지시 곡.

'The Christmas trees'(크리스마스 트리)는 올리버가 크리스마스트리를 고르고 실어 나르는 장면에 사용된 지시 곡으로, 'Silent night(고요한 밤)'에서 영감받은 레가 전자오르간을 이용해 엄숙한 종교적 색채를 가미하고, 아름다운 관현악 협주로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마음이 따뜻해지는 특별한 순간을 포착했다. 영화에서는 'Jingle bell', 'Joy to the world'와 같은 캐럴과 더불어 접속해 이어지면서 성탄절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는 구성요소로 사용되었다.



'Bozo Barrett'(보조 배렛)은 제니와 올리버가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차로 이동하는 동안 미래의 아들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에 쓰일 트랙이었으나 삭제된 곡. 피아노로 러브 테마를 연주하다가, 갑자기 유사 힙합을 연상케 하는 리듬적 하프시코드로 전환된 다음 오르간에 의한 엄숙한 조합으로 전개되고, 그런 다음 레는 다시 펑키한 리듬으로 주제선율을 분해해 마무리한다. 'Skating in central park(센트럴 파크에서 스케이트 타기)'는 제니가 센트럴 파크의 스케이트장 스탠드에 앉아서 올리버의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을 뒤따라 연주된다. 레는 'Snow frolic'의 주요 멜로디를 되풀이하며 이제 우아하고 고풍스런 3박자 왈츠로 전환해 장면을 수놓는다. 올리버가 얼음 위를 쉽게 미끄러지는 것처럼 음악은 완벽한 감성을 제공한다.

'피아노 소나타 12번 F장조-알레그로(Sonata in F Major-Allegro)'는 제니가 수학하는 음악 대학교 창문을 외곽에서 비추는 장면에 사용되었다. 제니와 올리버가 옥신각신, 미주알고주알 언쟁을 하는 대사만 들릴 뿐, 둘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모차르트를 선호하는 제니의 음악 취향을 나타내는 것이자 빠르고 유쾌하게 이어지는 대사 전개에 적합한 선곡.

'I love you, Phil(사랑해, 필)'은 학교에서 제니가 통화하는 장면의 전후로 배경에 깔린다. 현악과 하프시코드, 그리고 전기 기타와 드럼 등 고전과 현대의 음악 요소를 짝짓고, '라라라라'로 연이어지는 여성 보컬을 결합했다. 음악학교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자, 건반을 연주하고 고전음악을 연구 분석하는 제니와 현대의 록 음악을 선호하는 올리버의 성향을 대변해 조화롭게 구성한 음악.



'The long walk home(집으로 가는 긴 발걸음)'은 제니의 죽음에 정신을 잃고 황폐해진 올리버가 센트럴 파크의 스케이트장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반주한다. 제니와 올리버, 둘의 사랑을 주제로 한 테마음악은 신디사이저와 클래식 기타의 이질적 조합해 의해 시작되고, 도시의 소음과 정신적 혼돈을 효과적으로 대변하는 전자음 구간을 지나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올리버의 내면을 투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영화 대미를 장식하는 'Theme from love story-Finale'를 통해 수미쌍관으로 연계되는 주제곡은 쓸쓸하게 홀로 남은 한 남자의 형언할 길 없는 공허와 좌절,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관객이 공감할 수 있게 음악으로 전해준다. 점점 더 풍성하게 벅차오르는 관현악 협주의 물결, 마음을 찢는 것 같은 현악과 때론 소용돌이치듯 때론 위로하듯 감정을 휘젓는 피아노 선율이 주도하는 가운데 오케스트라는 종극으로 치닫는다.

마지막 패닝(Panning)으로 시점이 멀어지는 올리버의 뒷모습이 그렇게 애잔해 보일 수 없는 이유이다. 관객은 이제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저항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긴 한 남자, 그리고 둘일 때 행복했던 남과 여의 사랑 이야기의 전말을 음악의 숭고함과 장엄함으로 온전히 느끼게 된다. 사회 계층이 배태한 구조적 모순과 차별에 의해 인정받지 못한 그들의 자유로운 사랑, 하지만 첫눈에 반한 둘이 하나가 된 순간부터 다시 하나로 돌아가기까지 그저 행복한 순간을 맛보고 꿈을 키웠던 남과 여의 <러브 스토리>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음악 역사상 가장 감성적이고 감동적인 결말 중 하나이다. 그렇게 불멸의 주제곡으로 우리의 기억을 잠식했다.



프랑시스 레가 작곡한 <러브 스토리>의 주제곡은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면서 그 시대의 가장 친숙한 영화 속 러브 테마 중 하나가 되었다. 'Theme from love story'는 미국 빌보드차트 31위에 올랐다. <러브 스토리> 사운드트랙 앨범도 영화와 함께 흥행에 날개를 달았다.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올라 6주간 머물렀다. 작사가 칼 시그먼(Carl Sigman)이 작사를 해 넣은 원래의 주제곡에는 'Where do I begin'이라는 제목이 붙었고, 가수 앤디 윌리엄스(Andy Williams)가 가창해 주제가로 제2의 생명력을 얻었다.

노래는 1971년 초 핫 100 싱글 차트에 9위까지 올라 수주 간 순위를 유지했다.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차트에는 정상에 등극했다. 그 이후로 수많은 다른 가수들이 다시 불렀고, 음반으로 제작되었다. 헨리 맨시니(Henry Mancini)의 연주 버전도 차트에서 선전했다. 가사가 있는 노래로 다시 태어난 <러브 스토리>의 주제곡은 영화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지울 수 없게 만들 만큼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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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