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세상의 조건은 각자 처한 상태나 삶의 철학에 따라 천차만별하다. 그중 아이들이 즐거워할 만한 환경이라면 누구라도 살고 싶어 할 듯하다.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 듯 으응~ 말꼬리를 길게 잡아끄는 특유의 말투 하며, 골인 지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경주마가 달리듯 앞만 보며 뛰어가는 폭발의 에너지 하며, 생전 처음 보는 사이라도 종이컵 두 개만 있으면 그걸로 쌍안경을 만들어 놀아 금방 친구가 되는 관계의 방식 하며, 이 세상 사람이 모두 아이들만 같으면 갈등과 고통을 거름 삼아 희망과 행복의 꽃이 여기저기 싹틀 것만 같다.
다이(이경훈)는 아홉 살이다. 다이의 세계는 부모를 향한 사랑이 50, 친구들과의 우정이 50으로 이뤄졌다. 이 세계의 균형추가 다소 무너졌다. 엄마(이상희)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다이는 아빠(윤경호)와 함께 집을 옮겼다. 아빠라도 다이를 챙겨줬으면 좋겠는데 근무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화물차 운전사라 여의치가 않다.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다이는 식사도, 빨래도, 잠자리도 웬만한 건 알아서 챙긴다. 다행히 전학 간 첫날부터 마음 맞는 친구들을 사귀어 부모의 부재가 불러온 외로움을 즐거운 놀이와 우정으로 채울 수 있게 됐다.
와중에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가까운 병원을 찾아 “엄마, 친구들과 함께라면 즐겁다.” 어리광을 부리고는 했다. 이젠 그럴 수도 없게 됐다. 엄마의 병세가 악화하여 3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요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엄마가 보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된 다이는 침울한 표정으로 지내다가 친구들이 도와주겠다며 나서 ‘엄마 찾아 삼만리’ 생애 처음 보호자 없는 여행을 떠난다. 엄마를 만날 기쁨에,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에 신났던 마음은 한 번 잘못 탄 버스 때문에 꼬이고 만다.
<아이들은 즐겁다>처럼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에는 일종의 패턴이 있다. 부모의 보호 아래, 집과 학교를 오가는 반복된 동선에, 학원에 저당 잡힌 자유 시간에, 온실의 화초로 자라는 아이들이 그들만의 모험과 같은 여행으로 한 뼘 성장한다는 설정이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집>(2019)의 아이들은 살던 집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걸 막으려고 어딨는지 모를 부모를 찾아 여행에 나서고, <홈>(2017)의 형제들은 비록 엄마가 다르지만, 함께 있고 싶어 가까운 거리의 여행 속에서 형제애를 절실하게 느낀다.
다이와 같은 아홉 살 인생에 부모의 양육은 필요조건이기는 해도 애지중지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대신해 모든 걸 결정하는 건 스스로 결정하고 독립해야 할 아이들의 성장에 무조건적인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아이는 이 사회의 토양에 부모가 심은 씨앗과 같아서 어른들은 잘 꾸민 화단으로 울타리를 쳐 물을 주고 빛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솔솔 귀를 간지럽히는 바람과 기분 좋게 내리쬐는 햇빛을 맞으며 자연의 순환 속에서 자신의 힘으로 뿌리를 내리고 잎과 꽃을 피우는 일 또한 중요하다.
다이는 이번 여행에서 엄마를 만나면 선물하겠다고 예쁘게 꽃이 핀 작은 화분을 준비했다. 실종 신고를 받고 아이들을 찾아 나선 경찰에 걸려 다이는 도망가던 중 넘어져 그만 화분을 깨뜨리고 만다. 그 순간 다이는 깨달았을 터다. 엄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나면 이제 자신을 보살피고 살펴야 하는 건 다이 그 자신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깨진 화분 속의 꽃이 다르게 보인다. 화분이 없는 꽃은 더는 살아가기 힘든 줄 알았다. 아니었다. 오히려 더 넓은 세상에 풀어놓을 좋은 기회이었다. 길가에 면한 땅에 꽃을 심으니 제 자리를 찾은 듯 보기가 좋다.
아이는 작은 어른이다. 아이들의 세계에도 나름의 규칙과 윤리와 기준이 있어서 이를 토대로 옳은 길로 나가려 자아를 발동하고 힘을 합친다. 세상 경험이 적어 지름길인 줄 알았던 옳은 길이 에움길이 되기도 하지만, 이리저리 에둘러 돌아가는 길에서 아이들은 사회의 쓴맛을 접하고 이를 교훈 삼아 더 단단하게 성장한다. 그래서 험난한 여행이 이들에게는 모험으로 작용하는 데 성장의 과정조차 놀이가 되는 아이들에게는 그 모든 게 즐겁기만 하다. 아이들이 즐거운 세상은 모두에게 즐겁다. <아이들은 즐겁다>는 아이와 어른 모두 즐거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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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