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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랜드> 서로 연결될 수만 있다면 희망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의 유력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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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카데미 영화제의 유력한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로 꼽히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는 길의 영화, 즉 ’로드무비 road movie’다. (2021.04.01)

영화 <노매드랜드>의 한 장면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의 유력한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로 꼽히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는 길의 영화, 즉 ’로드무비 road movie’다. 삶은 종종 홀로 나서는 긴 여정으로 은유 되고는 한다. 여행자가 여러 장소를 공유하며 외로움의 시간을 견디기도 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 사건을 겪기도, 감정 교류도 하는 등 결국에 삶의 어떤 의미를 터득하게 되는 게 로드무비의 특징이다. 중요하게 살펴야 할 건 길을 나선 이가 어디서 출발해 어디로 도착하는지, 처음과 끝 각각의 공간을 잇는 이동 경로의 형태다. 

제목의 ‘노매드 nomad’는 방랑자, 유목민, 이동식 주택을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은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밴을 타고 네바다 엠파이어를 떠나 사우스다코타로, 네브래스카로, 애리조나의 쿼츠사이트로, 캘리포니아의 핸디우즈 국립공원으로 기약 없는 길 위에서의 행보에 나선다. 계획에 있었던 건 아니었다. 지역 경제를 지탱하던 석고 공장이 문을 닫자 인사과에 근무하던 펀은 일자리를 잃었고 대출금을 갚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밴을 집 삼아 미국 서부 횡단에 나섰다. 

가진 돈도 별로 없어 잠시 머무는 지역마다 물류 창고의 노동자로, 도넛 가게의 주방 보조로, 캠프장의 안내원으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가던 펀은 노매드 공동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이동한다. 그곳에는 펀처럼 차량을 집 삼아 여행하는 이들이 많다. 처지는 비슷해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집을 잃었거나, 가족과의 불화로 함께 살기 힘들거나, 자식의 죽음이 여전히 믿기지 않아 방황 중이거나 사연은 제각각이다. 펀은 자신의 사정을 어필하기보다 공동체에서 만난 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간다. 

이 영화에서 펀은 자신의 사연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대신 들어주는 쪽에 위치를 잡는다. 나만 힘들어 죽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많은 이가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펀의 위치로 전달된다.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자는 그 자신과 타인을 연결한다. 연결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기본 전제다. 펀이 길을 나선 건 속해 있던 공동체의 모든 연결이 끊어져서다. 일자리와 보금자리뿐 아니라 동반자, 그러니까 탄광에서 일하던 남편까지 잃었다. 연결이 절실한 펀에게 길은 또 다른 공동체로 안내하는 심리적 지도와도 같다.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고 마땅히 밴을 댈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펀의 전반부 여정은 장면(cut)들이 짧게 편집되어 있어 무언가가 끊어진 듯한 인상을 준다. 노매드의 공동체에 와서야 펀을 비추는 카메라는 사막 저편의 저물어가는 석양에 홀린 듯 따라가는 그녀를 1분 가까이 롱테이크로 담는다. 지역 공동체의 붕괴 여파에서 감정적으로 헤어나지 못해 불안정한 펀이 노매드의 공동체에서 삶을 지속할 용기를 얻는 과정이 짧은 편집과 길게 이어지는 롱테이크로 대비되어 드러나는 것이다. 

펀의 사연을 들은 어떤 이는 이런 얘기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정든 마을과 일자리를 떠나 산다는 건 슬픈 일이에요. 그렇다고 내가 답을 줄 수는 없군요. 당신이 여기에 모인 이들과 생활하면서 그 답을 찾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곳에서 펀이 특별한 방식의 무언가를 하는 것은 없다. 모인 사람들과 식사하고 쓰지 않는 물건은 물물 교환을 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있다는 것의 감정을 오랜만에 느낄 뿐이다. 가족으로 모여 살지 않더라도, 매일 출퇴근하며 일자리를 공유하지 않더라도 펀은 또 다른 형태의 연결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답을 찾는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공식 포스터

노매드는 이동이 숙명이다. 각자의 목적지가 있는 까닭에 서로의 선이 중첩할 때 생기는 점의 형태가 바로 공동체인 셈이다. 네바다 엠파이어를 떠나 노매드 공동체를 반환점으로 펀이 향하는 곳은 다시 네바다 엠파이어다. 처음 떠날 때처럼 지역은 황량하고 정든 집은 텅 빈 그대로의 상태이지만, 펀의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기존의 공동체가 무너졌다고 해서 모든 공동체가 붕괴한 것은 아니다. 서로 연결할 마음가짐만 있다면 공동체는 언제, 어디서든 존재가 가능한 희망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영화 속 세상을 통해 독특한 정체성을 탐구하고 관객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연결되고 싶었다.”면서 <노매드랜드>는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모든 것, 우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정의한다. 극 중 펀의 이동 경로를 연결하면 원의 형태가 된다. 그처럼 삶은 순환이다. 하지만 인간은 단수의 공동체에만 속해 살지 않는다. 영화는 펀이 다시 밴을 타고 길을 나서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또 다른 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펀은 또 어떤 이들을 만나 공동체를 형성할까. 결국, 이 세상은 다양한 공동체를 찾아가는 유목민의 땅, 바로 ‘노매드랜드 Nomadlan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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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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