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적지 않은 확률로 그것은 체념과 포기로 넘어가는 문턱이 되기도 하는데, 사실 우리가 맞고 싶은 ‘운명의 순간’이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시작, 더 나은 방향으로 상황을 반전시킬 타이밍, 주책이다 싶을 만큼 기대와 설렘이 폭발하는 그런 순간이 아닌가. 현실에 발 붙이고 살다 보면 그런 때라는 것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 그 자체가 의심스러워 지기는 하지만, 『더 셜리 클럽』은 그런 순간들이 다만 환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머릿속에서만 느껴지는 달달한 상상이기보다는 입안에 분명 존재하는 사탕 같다. 입안에서 이야기를 가만 굴리다 보면 이 달콤함은 약간 쌉쌀해졌다가 화하게 시원해졌다가 이리저리 녹으면서 날카로워진 끝으로 가장 여린 부분을 찔러 비릿한 피맛을 주기도 한다. 이런 맛들을 경험해본 적 있는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 생생한 감각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한국인 설희는 그곳에서 우연히 알게 된 ‘더 셜리 클럽’에 마음을 뺏기고, ‘설희’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지은 영어 이름 ‘셜리’는 그렇게 그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만든다. 셜리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로부터 시작되는 또 다른 인연들, 나이도 국적도 무엇도 뛰어넘는 우정과 사랑. 이야기의 처음, 모든 것이 낯설고 다른 ‘이상한 세계’에 떨어진 것만 같았던 설희는 어느새 클럽의 일원으로 함께하며 셜리가 된다. 아니 처음부터 그들에게 셜리는 셜리였을 테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된다. (199쪽)
『더 셜리 클럽』을 지금 읽어야 할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여기에는 우리가 영영 숙제처럼 안고 가야 할 관계들이 있고, 이야기는 그 관계 안에 응당 있어야 할 가치들을 담아낸다. 이해와 화해, 연대가 있고 사랑이 있다. 이것은 그저 '셜리'라는, 평범하지만 이제는 특별해진 하나의 이름이 만드는 거짓말같은 기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문은 작은 하나의 열쇠로 열리고 무엇 하나 기적이 아닌 일도 없다. 그런 기적을, 운명의 순간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여기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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