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그것을 나누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의 곁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지만, 분명히 주체는 내가 아닌 그들이다. 나는 인생이란 여행의 가이드일 뿐. 무리하게 개입해서도 안 되며, 지나친 책임감을 가지는 것도 분수에 맞지 않다. 삶의 방식을 내가 결정해줘서는 안 된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지용 작가님의 『어쩌다 정신과 의사』에서 한 부분을 읽어드렸습니다. 인간의 심리를 완벽히 분석하고, 정확한 솔루션만을 갖고 있을 것 같은 정신과 의사. 그러나 김지용 작가님은 의사로서 갖는 불안과 죄책감, 괴로움 등을 솔직하게 고백해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자신은 그저 인생이란 여행의 가이드라고요. 어쩐지 이 말이 더욱 미덥게 들리는데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김지용 작가님이 오셔서 정신과 전문의의 진짜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인터뷰 – 김지용 편>
오은: 방송 전에 책 보도자료를 편집자 분께 받았어요. 이렇게 애정이 가득한 편지를 오랜만에 받아서 읽어드리려고 가지고 왔습니다. “이 책, 『어쩌다 정신과 의사』도 딱 김지용다운 책입니다. 복잡하지 않으며(좋은 의미입니다!), 단순하고(정말로 좋은 의미입니다!), 솔직하고(이쯤 되면 믿어주시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직업인으로서의 고뇌와 진심이 배어 있습니다. 제가 만난 김지용 선생님이 딱 그런 분입니다. 이리저리 재는 것 없고, 솔직하고, 그러면서도 진심어린.(중략) 무언가에 온 마음을 쏟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정성을 다하는 사람을 목격하면 경외감이 들곤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잠시나마 그런 경외감에 빠질 기회를 얻으시길 감히 바랍니다.” 제가 이 편지를 보고 책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게 올라갔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고요. 그 기대가 충족되었다는 것도 같이 말씀드려요.
김지용: 와! 네.
오은: 책으로 정신과 전문의라는 직업이 밝은 직업만은 아니다, 밖에서 보기에 훌륭한 직업처럼 보이지만 그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것 같거든요.
김지용: 네, 우선 밝은 이야기를 거의 못 듣잖아요. 저는 하루 종일 인생의 우울하고, 어두운 면에 대해서만 듣고요. 듣다 보면 내가 몰랐던 무서운 사회가 있구나, 생각하죠. 이런 무서운 가정, 무서운 직장, 무서운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요. 게다가 병원에 오는 것은 항상 피해자들이에요. 이분들은 상처를 드러내지도 못하는데 ‘네가 약해서 그런 거다’, ‘네가 예민한 거다’ 라며 2차 피해를 당하죠.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 듣다 보면 그분들 입장이 되어서 화가 나요. 그렇게 쌓인 분노가 팟캐스트, 유튜브를 하는 원동력 같고요. 책은 화를 억누르며 쓰긴 했는데 어쩔 수 없이 후반부에 가면 화가 나오더라고요.(웃음)
오은: 팟캐스트 <뇌부자들>도 그렇고, 이 책 『어쩌다 정신과 의사』도 그렇고, 정신과의 문턱이 낮아졌으면 하는 김지용 작가님의 바람이 가득 담긴 것 같은데요. 실제로 전보다 문턱이 낮아졌다고 느끼시나요?
김지용: 제가 정신과 전문의로 활동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과연 예전에 어느 정도였는지 솔직히 알기는 어려운데요. 지난 5년 정도, 짧게는 3년 정도의 시간 동안에도 분명히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가령 이런 거죠. 저는 의과대학 학생 시절에 공황발작을 경험한 적이 있거든요. 이것이 반복되면 공황장애가 되는데 제 경우 반복되지는 않았어요. 당시 의과 대학 동기, 선후배와 그 경험을 얘기했었는데 아무도 제가 공황발작을 겪었는지 알아채지 못했어요. 그런가 하면 요즘은 의사가 아닌 일반 분들과 얘기를 해도 이런 증상을 들으면 공황장애라는 걸 떠올리고, 병원에 가보라고 말을 하잖아요. 그런 것만 봐도 분명 정신과학이 조금 더 대중화 되었고, 문턱도 낮아졌다는 걸 느껴요.
오은: 정신과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이 있잖아요. 그 중 이것만큼은 해소하고 싶다, 하는 것이 있나요?
김지용: 하나만요?(웃음) 정신과 약을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오해를 꼽고 싶어요. 일단 ‘정신과 약’이라는 말부터 오류가 있죠. 무슨 약 드세요? 하면 보통 “감기약이요”, “당뇨약이요”라고 하지 “내과약 먹어요”, “이비인후과약 먹어요”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정신과 약은 ‘정신과 약’이에요. 그게 수면제든 항우울제든 항불안제든 말이죠. 병 중에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병도 있고요. 그냥 3개월만 먹으면 끝나는 병도 있어요. 필요할 때만 먹으면 되는 약도 있고요. 정말 다양하고, 저마다 다르니까 뭉뚱그려서 말할 순 없는 거죠. 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내과 환자’, ‘정형외과 환자’라는 말을 잘 안 하잖아요. 그런데 유독 정신과만 ‘정신과 환자’라고 말해요. 그런 면이 참 답답하고 억울해요.
오은: 이제 김지용 작가님 소개를 해드릴게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팟캐스터. 작가. 아파트 벽에 끝없이 공을 던지고, 그래서 이웃집 할머니에게 자주 혼나고, 그래도 공이 안 보이는 늦은 밤까지 공 던지기를 하며 놀다 집에 들어가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학창시절 꿈은 고고학자였다. 꽤 오래 고고학자를 꿈꿨는데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반항하는 마음에 공대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뜻밖에도 수능이 대박 났다. 처음으로 전교 1등을 했고, 그렇게, 어쩌다, 의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최고로 공부 잘하는 의대 친구들 사이에서 공부로는 도무지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이때 김지용이 택한 것은 ‘회피’. 게임과 농구에 하루하루를 불태웠다. 대학 게임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농구대회에서는 우승뿐 아니라 MVP까지 차지했다. 두 번째 유급이 됐을 때 비로소 커다란 위기감이 찾아왔다. 의대 입학 4년 만에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김지용은 그렇게 객관식 세계의 유일한 주관식 나라 같았던 정신과의 길에 접어 들었다.
정신과 의사가 된 그날부터 자주 화가 났다. 오해와 편견을 줄여보고 싶은 마음에 동료들과 2017년 3월 팟캐스트 <뇌부자들>을 시작했다. 요즘 새로 생긴 취미는 <뇌부자들>의 유튜브 채널 댓글 읽기다. 잔소리가 심하고, 성격이 급한 편이었다. 이런 불안정한 면이 아내를 만나 엄청나게 바뀌었다.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아 “김지용은 결혼하고 사람 됐다”고 할 정도. 항상 가는 음식점만 가고, 먹던 메뉴만 먹고, 만나던 사람만 만나는 ‘인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오이는 싫어하고, 술은 즐기지 않지만 술자리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다. 정신과 의사로서 워라밸을 유지하는 김지용만의 비법은 진료실을 나서는 순간 '나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알 것 같다가도 알 수 없고, 저마다 다 달라서 사람이 재미있다. 결국에는 사람이 답이라고 믿는다. 잘 늙어가는 것을 지금의 목표로 지내고 있다.” 여기까지입니다. 그나저나 김지용 작가님께서 10년 전만 하더라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물론이고, 팟캐스터, 작가도 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일이었던 것 같아요.
김지용: 맞아요. 정말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어요. 정신과도 그런데요. 원래 정형외과를 고민하기도 했고요. 보건복지부 공무원도 고민을 해서 그쪽으로 실습을 나가기도 했었는데요. 특히나 팟캐스트나 유튜브, 책을 쓰는 일은 단 1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거예요.(웃음)
오은: 이번에는 작가님께서 직접 『어쩌다 정신과 의사』를 소개해주세요.
김지용: 이 책은 정말로 ‘어쩌다’ 정신과 의사가 된 제가 정신과 의사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그리고 정신과 의사가 된 후에 정신과 안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부조리와 사회의 불합리한 측면에 대해 고발한 책이기도 합니다. 사실 정신과 의사의 개인적인 삶을 공개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고요. 치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많아요. 그렇지만 이렇게 해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책을 썼고요. 지금도 일견 부담스럽기도 한 책입니다.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먼저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영업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지용: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인데요. 어린 시기의 트라우마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룬 책입니다. 어린 시절 양육자의 양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경우가 진짜 많은데요. 이 당연한 진실이 상식이 되길 바라며 추천합니다.
오은: 두 번째 질문, 『어쩌다 정신과 의사』가 한 권 있다면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으세요?
김지용: 정신과에 한 번, 혹은 짧게 가보셨다가 실망하시고 상처 받으신 분이 있다면 그 분께 이 책을 선물해서 정신과 의사의 생각은 이렇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