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건물에 들어갈 때는 인적사항을 쓴다. 오늘의 건물 출입자로 신고를 하고 나면 나올 때는 자유롭고, 다시 들어갈 때는 다시 인적사항을 쓰고. 그 일을 반복하다가, 느닷없이 이게 바로 혼인신고의 나아갈 방향이 아닌가 생각을 했다.
내 동네 친구들은 국내법을 기준으로 전원 비혼인데, ‘국내법을 기준으로’라고 하는 이유는 미국에서는 결혼한 기혼자 부부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팟캐스트 비혼세에 여러 번 나온 적이 있는, 해방촌 성생활용품점 피우다의 주인 혜영 언니 부부다. 언니는 현재의 아내와 오랜 연애 후에 미국에서 결혼식과 혼인 신고를 한 유부녀 레즈비언이다.
결혼한 사람이 왜 비혼 팟캐스트에 나왔냐고? 강제비혼도 비혼이니까. 사회가 인정하는 결혼을 제외한 모든 삶의 형태를 비혼이라고 한다면, 결혼하고 싶어도 결혼하지 못하는 모든 커플은 사실상 강제 비혼이다. 어찌 보면 비혼을 ‘선택’하는 것 역시 헤테로(이성애자)의 권력이다. 어쨌거나 발랄하게 출연한 언니는 비혼세 방송 최초로 결혼썰, 신혼썰, 각자의 부모님 만난 썰 등 진부하기 짝이 없을 이야기를 누구보다 신나게 풀고 갔다.
나는 진행자의 권한으로 언니가 천만번쯤 들었을 무례한 질문을 다시 했다. 앞으로 이거 들은 사람들이라도 그만 좀 물으라는 소망을 담아, 사전에 협의해서. “사회에서 인정도 못 받는데, 굳이 결혼한 이유는 뭐예요?” 물론 “하고 싶으니까요.”가 명료한 정답이겠지만, 혜영 언니는 ‘비트 주세요’ 하는 표정으로 차근차근 친절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함께 살고 있으며 이변이 없는 한 함께 살 예정인 우리는 서로를 보호해야 하니까. 아플 때 서로 수술 동의를 해줄 수 있었으면 하고, 둘 중 한 명이 혹시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잘못될 때 둘이서 쌓아온 세계가 인정받지 못하고 서로보다 기여도가 적은 가족에게 모든 권리가 넘어가서 남은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으니까.
안타깝게도 그게 효력을 실제로 발휘할 수 있을지는 대비한 ‘유사시’가 현실이 되지 않는 한 알 수 없다고 한다. 서로를 지킬 제도를 찾아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갔다 돌아와도 서로를 지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그래도 하는 결혼. 우리에게 필요해서, 우리에게 적합해서, 결혼이라는 이름 하에 있고 싶어서. 내가 나라서 결혼 밖에 서 있고 싶어 하듯이.
최근 나온 김규진 님의 책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원 바깥의 결혼 이야기를 한다. 내가 비혼 이야기를 할 때와 똑같은 훈수를 들어가면서. “조용히 혼자 하지, 굳이 떠들 이유가 있는 거니?” 있다. 나에게 필요한, 나에게 적합한 삶을 세상이 떠들게 놔두기보다는 내가 직접 말하고 싶으니까.
건물 출입구를 닫고서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 누굴 들여보낼지 마이크에 대고 그 명단을 부르고, 막상 결혼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건물 안으로 들어오라고 소리를 지르느라 또 마이크를 잡는 세상에서 우리는 각자의 마이크를 황급히 쥐는 것이다. 나는 들어갈 마음이 없으니 그만 소리치라고 맞고함도 치고, 혜영 언니 같은 사람은 건물 밖에서 나는 들어가겠다고 외치고.
그냥 그 문을 회전문처럼 개방해버리고 언제는 팽팽 돌도록 기름칠이나 해 두면 모두가 행복할 일인데. 특정 건물 밖을 고수하던 비혼자가 어느 날 어떤 계기로 쏙 들어가 인적사항을 적어 신고해도 그러려니 하고, 울타리 안에 있던 기혼자가 비혼이 되기로 결심하고 누군가의 손을 놓고 회전문 한 칸씩을 머쓱하게 차지하며 돌아 나올 때도 그러려니 하면서.
우리 그냥 비혼하게, 그리고 쟤네 그냥 결혼하게 해주세요. 결혼하는 퀴어와 비혼하는 헤테로를 유난스럽고 시끄러운 사람들이라고 부르지 말아 주세요. 우리가 안 떠들어도 되게 해주면 언제든 마이크를 놓을 거니까. 거 들락날락 좀 하자고요. 여러분, 비혼합시다. 결혼합시다. 이혼합시다. 재혼합시다. 시끄럽게, 마음대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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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지
작가. 출판레이블 <아말페> 대표. 기성 출판사와 독립 출판사, 기타 매체를 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 등이 있다. 비혼라이프 팟캐스트 <비혼세>의 진행자, 해방촌 비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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