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어쩌면 연애
책을 입고하는 것이 연애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그래서다. 나의 코어를 담은 책이 타인의 코어에 받아들여지다니.
글ㆍ사진 곽민지
2020.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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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응켱

나는 현재 출판사와 함께 협업하면서, 꼭 내 멋대로 만들고 싶은 책이 생기면 독립출판 레이블 <아말페>를 통해 출간하고 있다. 『오늘 헤어졌다』를 시작으로 올해 『난 슬플 땐 봉춤을 춰』가 세상에 나왔다. 올해는 타 출판사와 계약된 책이 있어 그 책 집필에 집중하고, 이미 나온 책 판매에 집중하려고 한다.

내 출판사가 있으면 좋은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원하는 모습대로 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그 책이 작은 서점이나 독자에게 선택받으면,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 주는 연인을 만난 것 같은 희열이 생긴다. 그래서 첫 책이 나왔을 때는 서울부터 제주도 우도까지 직접 배송을 했고, 현재도 내 책을 넣어주는 책방에는 왠지 사랑을 빚진 기분이 든다.

처음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책을 내고 나면 이 책을 꼭 넣고 싶은 서점에 입고 문의를 보낸다. 큰 서점과 달리 독립서점은 규모가 작기 때문에, 쏟아지는 책 중에서 어떤 것을 받아줄 것인지는 전적으로 서점 대표의 가치관에 의존한다. 대형서점 평대에 오른 내 책도 뿌듯하지만, 작은 책방 한 켠에 내 책이 놓인 것이 다른 의미로 엄청난 희열인 것은 그래서다. 게다가 그 책이 내 취향대로 만든 책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책을 입고하는 것이 연애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그래서다. 나의 코어를 담은 책이 타인의 코어에 받아들여지다니. 아말페의 책은 영광스럽게도 두 권 모두 기성 출판사의 러브콜을 받아서 대형 서점 입점 기회가 있었는데도, 고집스럽게 독립출판물로서 독립서점에만 유통시키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내 취향이 타인의 꼬장꼬장한 공간에 받아들여진 기쁨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처음 입고 문의를 보낸 서점들은 다 내가 좋아한 곳들이었다. 대표님의 사상이나 그 책방들이 가진 큐레이션이 마음에 들었다. 인테리어가 예뻐서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작은 책방 속에 꽉꽉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덕후 겸 충무로 ‘스페인 책방’ 덕후인 나는 스페인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도 꼭 내 책을 넣고 싶었고 (스페인 책방에는 대형출판사가 출간한 스페인 여행 에세이 『걸어서 환장 속으로』를 포함해 내 책 3권이 입고되어있다.)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 있는 ‘책방 토닥토닥’은 페미니즘, LGBTQ 이슈, 성 평등 관련 서적을 많이 두고 있어서 꼭 나도 그런 책방 한 켠에 꼭 끼고(?) 싶었으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이슈들을 큐레이션해 다루면서도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 서점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던 ‘이후북스’에도 꼭 넣고 싶었다. 집 앞에 있는 핫한 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에도 꼭 놓고 싶었고, 사랑을 말하는 제주 금능 책방 ‘아베끄’, 입도 후에 또 배를 타고 나가 전기스쿠터로 첫 책을 배송한 ‘밤수지맨드라미’도 너무 좋아하는 곳이었다. 그 공간들을 너무 선망해서 꼭 끼고 싶었고, 내 새끼들을 끼워주셨을 때의 기쁨은 말로 못 한다.

얼마 전 책방에 재입고 주문분을 포장하면서, 고민이 일었다. 작은 책방의 특성상 손님이 떨어뜨릴 수 있고 그러면 상품이 훼손되기 때문에 일일이 비닐포장을 해 보내는데, 이번에 보내는 책방 사장님은 환경을 많이 걱정하는 분이셨다. 고심 끝에 낱개포장 없이 책 여러권을 뽁뽁이로 한 번만 둘러서 보냈다. 택배와 정산메일로만 직접 서로에게 손을 뻗는 사이지만, 책방 SNS를 통해 상대를 알아가고 물품 포장을 하면서도 개개인을 생각하는 과정이 어찌나 설레는지. 같은 결을 공유하는 사람과 교류하면서 점점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게 연애라면, 독립출판 제작자와 독립서점 사장님이 서로의 내밀한 세계에 자리를 내주고 침투하는 설렘도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오늘도, 삐뚤빼뚤 고집스럽게 만들고 택배를 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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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지의 혼자 쓰는 삶 #독립출판 #연애 #코어를 담은 책 #eBook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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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al0321

2020.07.30

작가님을 체널예스 혼자쓰는 삶 글로 알게 되어, 비혼세를 즐겁게 듣고있는 구독자입니다. 이리도 다양하고 많은 생산물을 내어주시니 고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즐길거리가 많아진 저는 즐겁기만 하네요. 나만 좋나? 싶어 다시 또 미안한 맘도 걱정이 한가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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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지

작가. 출판레이블 <아말페> 대표. 기성 출판사와 독립 출판사, 기타 매체를 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 등이 있다. 비혼라이프 팟캐스트 <비혼세>의 진행자, 해방촌 비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