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영리하지?”
“응. 엄청.”
친구랑 수다를 떨다 ‘왜 첫인상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가끔은 손해볼 줄도 알았으면 하는데, 건건이 자신의 이익률을 계산하는 한 사람을 떠올리며 나는 며칠간 속을 태웠다. “누군들 손해보고 싶나요?”라고 답장을 쓰고 싶었지만 나는 갑이 아닌 을, 아니 병, 정의 입장이니 입을 닫았다.
“우리는 동료지요. 동료.” 나는 그의 말을 믿었다. 동료란 무엇인가. 같은 일을 ‘함께’ 해내는 사람 아닌가. 그런데 왜 자꾸 그는 내 위에 서지 못해 안달할까, 따지고 보면 자신이 ‘갑’이라는 사실을 은근슬쩍 들이대는 그에게 나는 두 손을 들었지만, 두 발은 들고 싶지 않아 안간힘을 썼다.
후배가 밥을 사는 걸 절대로 못 보는 선배가 있었다. 나는 늘 얻어먹는 일이 부담스러워 어느 날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 저는 매번 얻어먹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2차는 제가 살게요. 그래야 저희가 다음에 또 만나 밥을 먹고 그럴 수 있지 않겠어요?” 몇 살 차이 안 나는 선배는 나를 뚱하게 쳐다보더니 “야, 너가 얻어 먹은 거, 나중에 네가 좋아하는 후배한테 베풀면 되는 거야. 받아봐야 베풀 줄도 알지.”라고 말했다. 이런 멋진 선배는 내 인생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정확한 사람을 좋아한다. 일에 있어서는. 하지만 관계에 있어 언제나 정확한 사람은 친해지기 어렵다. 딱 자신에게 도움 되는 만큼의 친밀을 허락하는 사람. 그것은 적당한 거리라기보다 칼보다 먼저 나간 방패다. 손을 잡기는커녕 내밀지도 않았는데 저 멀리서 작별 인사를 먼저 한다. 살짝 손이라도 닿았으면 어쩔 뻔했나? 상상만으로 무안해졌다.
일부러 손해를 본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상대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가 궁금하다는 사람. 그것을 알아내 품어주고 싶다는 사람. 쉽지 않겠지만 내가 정말 닮고 싶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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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umji01@naver.com
limsoso
2020.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