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소설을 좋아합니다. 특히 소녀 주인공이 나오는 성장소설을요. 특히 지치고 힘들 때, 삶이 무료하게 느껴질 때 저는 성장소설을 읽어요.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삭막하기만 할 때, 인생은 무상하고 내 하루가 보잘것없이 느껴질 때, 한 줄기 긍정의 빛이 필요할 때마다 저는 성장소설을 펴 듭니다.
그러니까, 성장소설을 읽는 건 저에게 깜깜한 마음속에 빛나는 점을 하나 찍는 일 같아요. 힘겹게 알을 깨고 나오는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으면 ‘성장’이 가능하다는,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된달까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성장한다는 게, 더 나아진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되잖아요. 어쨌거나 성장소설에는 반드시 ‘성장’이 있을 테니까, 그 사실 자체가 빛나는 점 하나예요. 성장소설을 펴 들면 마음속에 빛나는 점 하나가 찍히고, 주인공이 힘겹게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그 빛이 점점 퍼져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마음속에 긍정적이고 선한 빛이 차오르는 게 느껴집니다.
“세실리아 로즈, 수많은 사람들이 무관심으로 식어버린 심장을 안고 살다가 죽어. 그렇게 세상을 떠나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야. 인생은 우리에게 놀라운 기회를 주지만,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회를 알아보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어.” (162쪽)
『씨씨 허니컷 구하기』 는 성장소설입니다. 그것도 똑똑하고 당찬 열두 살 소녀 주인공이 나오는 성장소설이요. 주인공 씨씨는 정신증에 걸린 엄마 때문에,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에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떠맡게 됩니다. 엄마는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그날에 갇혀 지냈어요. 헌옷가게에서 산 낡은 파티드레스에 왕관까지 쓰고 마치 앞마당이 미인대회 무대라도 되는 양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곤 했지요. 씨씨는 그런 엄마를 돌보며 외로운 ‘애어른’이 되어갔습니다. 씨씨의 유일한 도피처는 책 속 세상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리고 씨씨는 남부의 투티 할머니에게 보내집니다. 그렇게 씨씨는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올레타가 오트밀 그릇의 뚜껑을 열었다. “식기 전에 아침 먹어야지.” 위장이 꼬이는 느낌이었지만, 그녀가 준비한 아침을 먹지 않으면 큰 실례일 것 같았다.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숟가락을 오트밀에 담갔다가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오트밀이 혀에 닿는 순간, 갑자기 미각 세포들이 후드득 깨어났다. 올레타는 오트밀에 황설탕을 조금 뿌리고 통통한 라즈베리도 넣어주었다. 내가 오트밀 그릇을 허겁지겁 비우고 오렌지주스 한 컵을 꿀꺽꿀꺽 마시는 동안, 그녀는 한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102쪽)
“금요일은 드디어 자기 인생을 찾은 불쌍한 여자를 위한, 보라색 벨벳 소파의 날이야. 보라색 벨벳 소파는 여자의 자유를 상징해.” (173쪽)
그곳에서 씨씨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남부 여성들을 만납니다. 그들을 통해 씨씨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눈 뜨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소중한 친구들과의 시간을 진심으로 채워가는 법을 배워나갑니다. 『씨씨 허니컷 구하기』 편집 작업을 하면서 저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식탁보를 바꾸고, 한 끼를 먹더라도 정성스럽게, 예쁜 그릇에 담아 먹고, 아끼는 친구들과의 파티에서 쓸 모자를 일주일 내내 직접 만드는 남부 여성들의 생활을 어설프게나마 따라해보기도 했어요. 식탁보 대신 테이블 매트를 바꾸고, 황설탕을 뿌리고 라즈베리를 올린 오트밀 대신 그래놀라와 바나나, 블루베리를 올린 요거트볼을 만들어 먹으면서요. 그렇게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다보니 저도 씨씨처럼 마음이 훈훈하게 차오르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씨씨 허니컷 구하기』 는 예쁘고 선한 마음으로 가득한 소설입니다. 그 선한 마음들이 모여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또 세상을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소설이에요. 매일매일이 선물이라는 걸 일깨워주고, 우리가 힘을 되찾아 더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게 해주는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씨씨 허니컷 구하기』 와 함께 세상의 모든 외로운 애어른 ‘씨씨’들의 마음에 빛나는 점 하나가 찍히게 되면 좋겠습니다.
-
씨씨 허니컷 구하기 베스 호프먼 저/윤미나 역 | 문학동네
세상의 모든 ‘씨씨’들을 위한 간단하면서도 분명한 조언으로 가득하다. 봄이 찾아와도 마음은 여전히 겨울인 이들에게는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고, 무관심에 식어버린 심장으로 삶의 활기를 잃어버린 이들에게는 불꽃을 던져줄 유쾌하면서도 선한 소설이다.
정혜림(문학동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