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YOURSELF: 15년차 호텔리어의 솔직한 고백
자신을 끝까지 들여다본 사람들이 갖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길고 아득한 강을 지나고, 깜깜한 터널 속을 밤새 터벅터벅 걸어본 사람만 비로소 갖게 되는 무언가.
글ㆍ사진 안지은 (젤리판다 편집자)
2020.04.07
작게
크게

사진1.jpg

 

 

자신을 끝까지 들여다본 사람들이 갖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길고 아득한 강을 지나고, 깜깜한 터널 속을 밤새 터벅터벅 걸어본 사람만 비로소 갖게 되는 무언가. 그녀가 그랬다. 수화기 너머 건너오는 목소리도, 원고 속 수천 번 고쳐 쓴 흔적이 보이는 문장도 모두 섬세하고 사려 깊은 사람, 하지만 강단 있는 사람.

 

이 책의 저자 김은희씨는 15년간 호텔리어로 재직하다, 서른아홉에 퇴사하고 전업주부가 된다. 한없이 서툴렀고, 어설펐던 시간, 그녀는 수많은 후회와 자책을 지난다. 담담하고 솔직하게 써내려간 글에 몇 번씩 스크롤이 멈췄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는 이 이야기의 끝을 속단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좋은 엄마가 되었다’는 이야기일 거라고,

 

하지만 이내 그녀는 그 사려 깊은 발걸음으로 총총, 내 빈곤한 상상력이 닿지 못하는 전혀 다른 곳으로 나아갔다. ‘나의 행복’, ‘가장 자연스러운 내가 될 것.’ 한 방 얻어맞은 느낌으로 원고를 읽어나갔다. 거창한 내용, 현란한 내용은 그야말로 ‘1’도 없었다.

 

어떤 글은 목에 핏대를 세워, 큰 소리로 읽어야 한다. 좌중을 설득하고 휘두르는 글, 한 문장 한 문장 마치 칼처럼 내리꽂히는 글도 있다. 그런데 김은희 작가는 한없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들릴락 말락, 귓가에 조용히.

 

당신 자신으로 살아가라고, 당신이 언제나, 모든 순간 당신이길 바란다고.

 

양치를 하다가도, 컴퓨터의 흰 화면 앞에서 멈춰 있을 때에도 책 속의 문장이 울컥울컥 떠올랐다. 그 목소리를 가장 생생히 전해주고 싶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사진2.jpg

 

 

이 책이 출간되고 얼마 후, 그녀를 만났다. 푸른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원고에서 본 그대로, 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모습이었다. 그날은 마침 이벤트용 도서에 직접 사인을 해주기로 한 날이었다. 그녀는 한 권의 책에 사인을 할 때마다 매번 이면지에 대고, 같은 사인을 몇 십 번이나 연습했다. 얼핏 보기에도 사인은 제법 복잡해보였다.

 

“작가님, 이 사인 무슨 뜻이에요?”


“이건 웃는 얼굴, 이건 제 이름.”


“그리고 이건 제 슬로건이에요.”


또박또박 정갈한 글씨로, 그녀는 써내려갔다. “Be yourself."

 

 


 

 

울분 필립 로스 저/정영목 역 | 문학동네
주인공 청년 마커스가 결국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삶의 선택들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끔찍한 상황을 초래하게 되는지 그린다. 때로는 희극적이기까지 한 사건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역사와 개인의 비극을 절묘하게 낸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사랑하되 애쓰지 말 것 #편집자 #호텔리어 #솔직한 고백
0의 댓글
Writer Avatar

안지은 (젤리판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