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북핵 이야기야? 한반도 관련 이슈마다, 혹은 철마다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북핵 문제. 신문 기사로도 수없이 접했던 그 이야기를 이젠 책으로까지 읽어야 되는 건가? 이러한 질문은 북핵 문제에 피로감이 쌓인 독자들이 『북핵 포커게임』 을 처음 접했을 때 보일 법한 반응일 것이다. 여기에 질문 몇 가지를 더해보는 건 어떨까? 지겨움에 비례하는 만큼 우리는 북핵 문제와 한반도 정세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알고 있다 하더라도 ‘표면’에 그친 지식만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은 북핵 문제와 한반도 정세라는 표면 즉,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수많은 문제ㆍ사건ㆍ이슈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숨은 에피소드와 이야기, 그리고 현장 기자의 눈으로 해당 이슈들을 바라보며 사색한 글을 모았다. 기자의 글이지만 정형화된 기사의 형식을 따르지 않고 편안하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취재노트 형식으로 저자의 사색을 담았다. 한반도를 두고 일어났던 이슈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어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미 삼자관계에 대한 이해도 쉽다.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한반도 정세는 ‘북핵 문제를 둘러싼 남북미 3국의 포커게임’으로 비유된다. “통일이라는 한 국가의 중대 사안을 한낱 포커게임에 비유했다고?” 이런 불편한 시선만 거둔다면 포커게임 비유는 응당 그럴싸한 것이 된다. 한반도라는 판에, 북핵이라는 판돈을 걸고, 포커패를 쥐고 있는 남북미 3국. 포커게임이 그러하듯 한치 앞을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 한반도 정세다.
북미 간 “늙다리 미치광이” , “로켓맨” 등의 살벌한 말폭탄을 서로 내뱉을 때면 금방이라도 핵 버튼이 눌릴 것처럼 가망이 없어 보이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해무드를 보이며 사상 초유의 북미정상회담으로까지 연결되기도 했다. 그리곤 또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냉랭하거나 뜨뜻미지근한 분위기로 바뀌기도 했다.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미궁 속에 있는 한반도 정세는,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포커게임과 이토록 비슷하다.
남북미 3국이 쥐고 있는 패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판의 지형이 급격히 변화하는 한반도 정세의 초읽기가 벅차고 따라가기 힘들 수 있다. 이 포커게임의 규칙을 잘 모르겠다면, 지금 이 게임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면 『북핵 포커게임』 을 지침서로 삼아 펼쳐볼 타이밍이다. 현장에서 발로 뛴 취재기자가 아니었다면 겪지 못했을 표면으로서의 사건, 그 이면의 생생한 에피소드까지 곁들였으니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일회용 라이터에 담긴 에피소드로 폐쇄 국가 북한이 외부 문물에 얼마나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이산가족 상봉 시 남측 가족이 북측 가족에 일회용 라이터를 선물했는데 이 작은 라이터 때문에 북한 주민이 생활총화를 했다는 것이다. (생활총화란 북한에서 자신이 속한 단체나 기관에서 일주일 혹은 한 달 정도의 일정 기간 동안 생활이나 업무를 반성하고 비판하는 정신무장 모임을 일컫는다.) 라이터는 북한 시골에서 편리하게 불을 붙일 수 있어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이 작은 라이터도 이렇게 좋은데 다른 것은 어떻겠느냐?’는 저변이 주민 사이에서 확대되자 남한의 발전상을 알리고 또 동경하도록 만들었다는 이유로 생활총화를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낱 우스갯소리로 치부해버릴 법한 이야기지만 북한 체제 입장에서는 예민하고 부담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중차대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올해 2020년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꼭 20년 되는 해다. 지난 20년 동안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변한 듯하지만, 또 어찌 보면 변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북핵을 둘러싼 남북미 3국의 힘겨루기가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처럼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이러한 이면의 이야기들과 우리가 익히 아는 표면의 사건들을 퍼즐의 조각처럼 조합해본다면 우리는 북한과 한반도 정세를 더욱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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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포커게임 김동욱, 박용한 저 | 늘품플러스
난관에 빠진 북핵 협상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쉽게 쓰여 복잡한 한반도 정세를 한 번에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훌륭한 지침서이다.
최효준(늘품플러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