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선 작가가 첫 그림책 『삼거리 양복점』 으로 2020년 볼로냐 라가치 상 오페라 프리마(신인상)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삼거리 양복점』 은 ‘양복점’이라는 작은 상점이 겪어낸 100년의 경제, 문화, 역사의 변화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안재선 작가는 평소 ‘100년이 넘은 가게’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즐겨 봤는데, 어느 날 서울 중구 소공동 거리를 걷다가 한때 화려한 시절을 누볐던 양복점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는 모습을 보고 『삼거리 양복점』 을 구상했다. 자료조사를 하던 중 정확히 100년 동안 3대째 운영되고 있는 양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 양복점을 모티프로 오래된 가게들이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책을 만들었다.
일부러 조금 '헤매는 시간'을 갖습니다
먼저, 첫 그림책 『삼거리 양복점』 으로 2020년 볼로냐 라가치 상 오페라 프리마(신인상) 부문에서 우수상 격인 '스페셜 멘션'을 수상하셨어요. 소감을 여쭤보고 싶어요.
두 아이 육아에 정신이 없었을 때였는데요 아이를 재우려고 하는데 연락을 받았습니다. 사실 『삼거리 양복점』 이 볼로냐 북페어에 출품 된지도 몰랐기 때문에 얼떨떨했어요. 이 때도 사실 계속 육아로 인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해오던 시기였거든요. 수상으로 또 한번의 일러스트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어요. 『삼거리 양복점』 은 처음 시작부터 육아때문에 그리고 첫 책이기 때문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작업들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결과들을 쏟아내서 ‘참 인생은 알 수 없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삼거리 양복점』 의 실제 모델이 있었다고요.
예전부터 오래된 가게에 대한 책을 구상해 보고 싶었는데요. 어느 날 소공동 거리를 걷다가 젠트리피케이션이나 개발, 생활의 변화 등에 의해 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한 때는 화려한 시절을 누볐던 양복점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는 모습을 보며 참 쓸쓸하고 아쉬운 감정이 들었습니다. 자료조사 하던 해에 딱 100년 동안 3대째 운영 되고 있는 양복점이 있는 걸 알게 되었고, 작업에 들어갔어요.
작품 구상, 취재, 스케치, 채색 등 총 작업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본격적으로 그림책을 만들자라고 생각하던 때 그림책 작가들의 모임이 있었어요. 이 모임에선 매년 볼로냐 북페어에 출품을 목표로 같이 자신들이 구상한 내용들을 가지고 이미지에 관한 연구나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는 모임인데요. 2016년 삼거리 양복점을 생각하며 떠오른 이미지 5장을 출품하게 되었고 그 작업이 2017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뽑히게 되었고요. 그 이후로도 계속 그림책으로 진행을 해 오며 편집자와 출판사를 만나게 되었고 2019년에 완성했어요. 육아를 하며 다른 일들도 병행하느라 짧지 않은 기간이 걸렸던 듯해요.
주인공을 ‘강아지’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부터 꼭 강아지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우선 책의 내용이 드라마틱하다거나 어떤 구체적인 사건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저 인물로만 표현했을 경우 책 자체가 좀 건조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죠. 강아지의 종에 따라 인물들의 성격이나 캐릭터를 보여주기가 수월하겠다는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미지 적으로도 양복과 강아지 캐릭터의 의외로 조합이 잘 맞은 듯하고요. 덕분에 아이들한테도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쉽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그림이 굉장히 둥글둥글 따뜻해요. 캐릭터를 만들 때, 염두에 둔 것들이 있었나요?
캐릭터는 너무 귀엽거나 너무 딱딱하지 않게,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즐길 수 있는 이미지로 만들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 도감을 펼쳐놓고 여러 강아지들을 그려봤는데 확실히 사람을 그리는 것보다 강아지 캐릭터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의 성격이나 표정을 잘 잡아주는 듯했어요. 강아지 캐릭터로 잡은 덕분에 모든 세대에게 접근하기 좋았던 것 같아요.
작가님만의 특별한 작업 방식이 있을까요?
컬러 작업을 시작하게 되면 처음엔 일부러 조금 '헤매는 시간'을 갖습니다. 저는 좀 계획적이고 단계적인 그림은 잘 못 그리는 편이어서 처음부터 원하는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이거야~ 하는 느낌이 오는 이미지가 올 때까지 계속 낙서를 반복합니다. 그렇게 처음 헤매다 덕구 씨의 캐릭터와 삼거리 양복점 내부 이미지를 잡게 되었을 때 기뻤고 그 이후 다른 이미지들도 좀 더 쉽게 구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로 일러스트 작업을 하셨어요. 글과 함께 작업하신 건, 이번 책이 처음이신 거죠?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거의 15년 가까이 이미지 위주의 일러스트 일만 해오다 글과 그림을 작업하게 된 첫 책입니다. 여러 이유로 글, 그림 작업을 함께 하기가 여의치 않았는데요. 그림이나 이미지 구현은 자신은 있었지만 그림책의 글에 대해서는 좀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어요. 글을 그림에 맞게 적절히 축약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오랜 기간 편집자 분과 출판사와 대화를 하면서 하나하나 거칠었던 내용들을 다듬어 갔습니다. 아직도 그림책의 글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쉽기도 한 점이 많았지만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었어요. 다음 번에는 조금 더 그림과 글이 조화를 잘 이루는 조금은 더 정교한 글과 이미지의 그림책을 해 보고 싶어요..
마지막 장면이 정말 좋았어요! ‘아빠’하고 딸이 양복점으로 찾아오는 장면이요! 스튜어디스인가요? 아버지가 만들어준 양복을 입은 건가요?
(웃음) 사실 그런 반응이 많았어요. 스카프 색깔 때문인가 싶은데요. 사실 제가 한 설정은 성장한 딸이 어떤 전통과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나라에서 배우고 와서 본인이 만든 양복을 입고 아빠의 양복점을 4대 째 이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을 담은 건데요. 어차피 삼거리 양복점도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하긴 할테니까요. 그런데 스카프 색과 비행기 때문인지, 스튜어디스로 착각하시는 독자분들이 몇 분 계셨는데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에요.
2014년에는 어떤 작품으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신 건가요?
2014년에는 2010년에 개인적으로 냈었던 책 『안녕! 서울』의 이미지 중 5컷으로, 그리고 2017년에는 『삼거리 양복점』 의 초안 이미지 5장으로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상 시기마다 출산과 육아로 일러스트 일을 계속 해야 할 지 기로에 서 있었는데요. 수상 덕분에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은 계기가 되었어요.
전세대가 읽을 수 있는 그림책
어릴 때, 주로 어떤 책들을 즐겨 보셨나요?
어릴 때부터 책은 좀 잡식성으로 읽었고요. 지금도 손에 잡히는 대로 끌리는 대로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엔 부모님이 만화책을 봐도 혼내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진짜 틈만 나면 당시 유행했던 만화 대여점에서 책을 빌려 진짜 많이 읽었어요. 그 때 만화를 보고 많이 그림 그리는 법 스토리 전개 법, 캐릭터, 작법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듯합니다.
그림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림은 어릴 때부터 줄곧 그려왔었습니다. 교과서에 연습장에 그리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 그림 그려 주기 등등. 미대에 갈 생각은 없었다가 친구 따라 미술학원 가봤다가 미대에 가게 되었는데요. 막상 진학한 곳은 가구디자인학과여서 그림은 거의 그리지 못하고 도면만 그리고 나무 작업 위주로 하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가구 회사 퇴사 후 작업실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본격적으로 일러스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가 소개 글을 읽으니, 두 아들을 키우고 계신다고요. 두 아들과 자주 가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지금 7살, 8살 연년생 형제를 키우고 있습니다. 제가 오래된 골목이나 좀 시간이 배인 정취들을 좋아해서 아이들과는 자주 강북의 오래된 골목 산책을 한다거나 아이들이 숲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서 숲이나 강변, 공원이나 바다같이 자연이 가까운 곳을 자주 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자주 읽어 주시나요?
네. 아이들에게는 잠자기 전에 꼭 그림책을 읽어주는데요. 이 시간이 아이들뿐 아니라 저에게도 많은 힐링과 그림책을 배우는 시간이 됩니다. 이 때는 제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긴 하지만 제가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같은 이야기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때가 있거든요. 아이들의 피드백을 들으면서 제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라든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들을 깨닫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전혀 다른 상상력이 담긴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이 시간들을 즐기고 있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그림책과 그림책작가도 궁금합니다.
최근 너무 좋은 그림들과 작가들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운 정도인데요. 그래도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 ‘로라칼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드로잉 같은 편한 그림과 먹선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예전부터는 요안나 콘세이요, 헨리다거의 그림도 너무 좋아했고요. 조혜란 작가님의 『할머니, 어디 가요? 시리즈』 도 넘 재밌게 보았습니다. 최근에는 알라 반 크로프트의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 를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림책으로 또 다루고 싶은 좋아하는 공간이 있나요?
확실히 제가 어떤 공간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좋아하는 듯해요. 요즘엔 제가 살아왔고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공간은 다시 구체적으로 다루고 싶기도 하고요. 예전 어릴 적 시간을 보냈었던 정원이 있던 작은 집을 그림책 안에 담아보고 싶어요.
만약, 『삼거리 양복점』 의 덕구 씨처럼 아드님이 대를 이어, 그림책작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환영하실 것 같나요?
전 그림책 작가가 참 근사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각박한 시대 저희 같은 사람들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고요. 물론 그림책을 대하는 사회적 의식이나 지위 그리고 기본적인 경제적인 대가가 만족스럽게 갖추어진다면, 아이들 중 하나가 그림책 작가가 되어도 좋을 듯해요. 이미 저를 뛰어 넘는 드로잉의 소유자가 있기도 하고요. 나중에 나이를 먹어 그림책을 가지고 서로 토론하고 의견을 주고 받는 상상을 하니 참 좋습니다.
앞으로 어떤 그림책을 만들고 싶나요?
유아동 만의 그림책 말고 여러 세대가 어우러진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전혀 엉뚱한 이미지들을 모은 넌센스책 같은 것도 만들고 싶습니다. 또 그림책뿐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여러 매체들에 여러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후속작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조만간 서울에 관한 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데요. 그 이후 몇 권의 책들도 구상 중입니다. 계획을 딱 잡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아직 초안 정도만 잡혀서 언제 출간 될지는 모르지만 빠른 시일 내에 완성해서 또 좋은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싶어요.
『삼거리 양복점』 을 독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펼치면 좋을까요?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좀 고지식하고 고루한 가치를 다룬 내용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변화하는 세상 속에도 간직하고 지켜져야 할 기본들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과 성인들 모두에게 사라지고 있는 중요한 것들을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요.
-
삼거리 양복점 안재선 글그림 | 웅진주니어
‘양복점’이라는 작은 상점이 겪어낸 100년의 경제, 문화, 역사의 변화를 담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한 가지 ‘업’을 지키는 진정한 장인 정신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성장하고 때로는 위기를 맞이하며 이를 극복하는 감동적인 순간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보여 주는 그림책입니다.
엄지혜
eumji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