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리딩의 힘
아들이 다섯 살 때였습니다. 한 권이라도 더 읽어 주려는 욕심에 아이의 마음이야 어떻든 빠른 속도로 하루에도 열 권의 책을 읽어 주었죠. 아이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아이가 읽어 달라고 하지도 않았고요. 그저 내가 책을 여러 권 읽어 주었다는 것에 만족했었죠. 어느 날, 새로 구입한 책이 있어서 평소보다 천천히 한 권을 읽어 줬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한 장 한 장 꼼꼼히 보고 제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숨어 있는 그림들까지 손가락으로 짚으며 몰입해서 책을 보는 것이었어요. 다 읽고 또 읽어 달라고 하면서… 정말 글도 모르는 아이가 책을 즐긴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줄곧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권을 읽어도 아이가 음미하고 책 읽는 기쁨을 만끽하며 읽게 하는 비법을 이때 발견했습니다. 비법은 ‘천천히,’ ‘여러 번’ 읽을 여유를 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단순한 비법인지!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달라는 아이가 있어요. 부모들은 다양한 책을 접하게 하고 싶어서 고민을 하게 되죠. 하지만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답니다. 아이가 읽고 싶다면 지칠 때까지 읽어 주세요. 보고 싶다면 다시 찾지 않을 때까지 보여 주세요. 아이가 10번 읽고 싶다면 그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같은 곳에 여행을 가도 갈 때마다 새롭고 느끼는 감정이 다르듯,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달라집니다. 과거에 놓쳤던 그림이 보이기도 하고 생각도 바뀌죠.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어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아이가 먼저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상세히 묘사까지 해서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슬로리딩은 말 그대로 책을 천천히, 자세히 읽는 것이예요. 다른 말로 ‘숙독’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초등학교에서도 슬로리딩 수업을 하는데, 한 권의 책을 1학기에 걸쳐 상세하게 읽고 토론하고 글도 써보게 하는 방법입니다.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 때 그것은 지식이 됩니다. 책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즐기는 것이 정독 습관의 첫 걸음입니다. 정독 습관이 몸에 배면 다독은 당연히 따라오게 됩니다.
영어를 모르는 아이라도 영어 책의 그림에서 새로운 장면을 발견하고, 읽어 줄 때마다 달라지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전에 느끼지 못한 감정을 느낍니다. 우리말 책도 마찬가지랍니다. 엄마가 귀찮아하지 않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천천히 반복해서 읽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정독 습관의 시작입니다.
아이 손으로 넘기게 한다
부산에서 초등학생 아이들이 반바지만 입고 높은 둑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며 수영을 즐기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 아이들은 한 번도 수영 교습을 받은 적이 없었죠. 그저 바다가 가까이 있고 물을 자주 접하기에 바다 수영이 두렵지 않았던 것이에요.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것도, 파도를 헤치며 자맥질을 해나가는 것도 숨 쉬듯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수영이 몸에 밴 것이죠.
세 살 아이. 엄마가 책을 읽어 주어도 책장은 아이가 직접 넘기게 해 주세요. 가까이 있는 친구마냥 책과 손잡게 하는 것이죠. 글을 몰라도 책장을 넘기는 것이 몸에 배면 익숙하고 편안해집니다. 책에 대한 거부감 따위는 아예 생길 수가 없게 하는 방법이죠.
책은 늘 가까이에 두게 해주세요.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곳에 두고, 아이가 오다가다 만져 보고 펼쳐 보게 해 책에 익숙해지게 합니다. 책이 평생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게 하는 첫걸음이랍니다.
정독 습관의 주춧돌 ‘음독’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의 작가 사이토 다카시는 “음독은 10번 (마음속으로) 읽은 효과를 발휘한다”고 말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음독을 의미했고 옛날 우리나라 서당에서도 훈장님을 따라 천자문을 큰 소리로 따라 읽었죠. 중국은 오늘날에도 반 전체가 음독하며 공부하는 학교가 있답니다.
소리 내어 읽는 음독은 뇌 전체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도록 돕는 뇌의 전신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는 눈으로 본 것이 전달되면 이를 다시 음성언어로 바꾸어 발화한 다음, 그 발화된 소리가 다시 자신의 귀로 들어가 머리에 저장되는 시스템을 주관하죠(엄마의 독서학교 인용). 뇌를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음독 시에 전두엽이 눈에 띄게 활성화되고 묵독에 비해 기억력이 20% 더 높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아이가 책을 따라 읽을 수 있게 되면, 처음부터 음독하는 습관을 길러 주세요. 열 살에 영어 자립을 이룬 큰아이의 영어 학습법 중에서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이 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 내어 책을 읽게 했던 것입니다. 영어 도서관에서도 아이들이 눈으로 책을 읽은 후 한 번 더 소리 내어 음독하게 하고 있습니다. 집중력과 이해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본인의 발음을 귀로 듣고 스스로 고치는 효과도 있죠. 음독하며 책 읽기, 정독 습관의 주춧돌입니다.
욕심 부리지 말자. 꾸준함이 답이다
4번째 비법은 당부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처음이라 어려운 걸 알지만, 처음이라 과욕을 부릴 수 있죠. 진부한 말이지만 어떤 분야에서든 결국 승리하는 사람은 꾸준한 사람입니다. 하루에 한 권 영어 책 읽어 주기. 쉬울 것 같지만 쉽지 않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한 권씩만 읽어 주면 1년이면 365권, 2년이면 700권이 넘습니다. 『우리아이 첫영어 지금 시작합니다』 에 약 500권의 영어책 추천도서를 수록하였습니다. 단계별로 하루 한권 따라 읽혀 보세요. 경험한 것을 주로 습득하는 기능을 가진 우뇌가 성장하는 만 3세까지는 특히 독서 습관을 들이기 용이한 시기입니다. 매일 손으로 책을 잡고 본다는 것은, 그러한 경험을 몸으로 쌓고 매일 ‘두뇌 훈련’을 한다는 의미합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아이에게 매일 책을 읽어 주는 것이 평생 독서 습관을 길러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입을 모으죠. 세 살 때부터 엄마가 안고서 매일 책을 읽어 준 아이는 책과 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친해지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진다는 것은 습관이 됨을 의미하죠. 하루 한 권이 답입니다. 하루 한 권씩 영어책 읽어 주기. 지금부터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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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첫 영어 지금 시작합니다정인아 저 | 위즈덤하우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 그 이유는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어떤 순서로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알파벳을 학습으로 인식하지 않고 그림으로 익히는 방법부터 파닉스를 다각적으로 습득한 후, 그림책을 읽고 미국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책을 읽게 되기까지의 단계별 과정을 담고 있다.
정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