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채널예스가 매달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공모하여 ‘에세이스트’가 될 기회를 드립니다. 대상 당선작은 『월간 채널예스』, 우수상 당선작은 웹진 <채널예스>에 게재됩니다.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은 매월 다른 주제로 진행됩니다. 2020년 2월호 주제는 ‘두 번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살면서 한 번만 가고 다시는 가지 않은 음식점이 수두룩하다. 먹어봤으니까 됐고, 가봤으니까 됐다는 마음으로 두 번 가지 않는 것에 대해 미련 역시 없다. 그런데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을 뱉지 못해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해버린다. 한번 생긴 인연이면 웬만하면 이어져야 한다는 부담. 그러기 위해 나 역시 또 만나고 싶은 매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무의식적 강박. 그런 의미에서 엄밀히 말하면 나에게 누군가를 두 번째로 만나는 것은 선택이 아니었다. 만나지면 만나야 하는 거고, 웬만하면 또 만나는 식이었다.
반면에 우리 집 개 래오는 두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이 거의 없는 까칠남이다. 까만색에 4kg 정도되는 날씬한 체형의 닥스훈트인 래오는 등뼈가 다 드러나게 마른 채로 길거리를 헤매다가 구조되어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개를 처음 키워보는 순진한 우리 가족은 모든 개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영리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래오는 영리하기만 했다. 산책 중에 혹이라도 귀엽다며 아는 체 하는 모든 사람들은 향해 단전에서 끌어올린 우렁찬 소리로 짖었다. 자연스레 래오를 데리고 다닐 때는 나도 긴장하게 되었다. 사는 곳이 주택이라고 하지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라 래오가 오고 한 달쯤 지나자 여기저기서 불만이 들렸다. 어느 날은 래오와 길을 가는데 아주머니들 무리가 “저 개야. 쬐끄만 게 지나만 가도 짖어대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내가 멈춰서 사과를 하는 동안 래오는 옆에 서서 그 아주머니들을 향해 짖어댔다. 이웃이고 뭐고 다 상관없다는 식의 너의 자세.
귀여운 인형 같은 강아지를 바랐던 일곱 살 딸은 래오의 그런 성품(?)에 처음에는 좀 실망했지만 래오의 성향에도, 주변 이웃들의 반응에도 곧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딸 아이와 래오를 데리고 산책을 가다가 동네 김밥집에 들렸다. 그런데 주인 부부가 강아지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래오를 보고 반가워하더니 내가 미처 경고하기도 전에 김밥에 넣는 볶은` 당근 한 줄을 들고 래오에게 다가갔다. 순간 놀랐지만 다행히 래오는 짖지 않았다. 당근에 약한 건지 꼬리까지 흔들어대며 좋아하는 걸 보고 당황스런 기분이 들었다. 그런 래오를 보며 주인아저씨는 “아고, 예쁘다.” 하며 쓰다듬어주는데 이건 아주 생경한 광경이었다. 포장이 다 된 김밥 값을 내고 나와 걷는데 딸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오늘은 좋은 날이야. 다른 사람이 래오한테 예쁘다고 했잖아.”
아이도 놓치지 않고 본 것이다. 보기 드물게 화목한 래오의 풍경을.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저 김밥집에 다음에 또 갈까?” 아이가 좋다고 답했다. 래오 덕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명료하게 두 번째 다시 가고 싶은 음식점이 생겼다. 이 인연에는 좀 부담 없는 미련을 가져도 될 것 같다.
레바 김 영화 속 명대사로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 상담심리를 전공하고 컨텐츠를 좋아해서 팟캐스트 <미드처방전>을 진행한다.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http://www.yes24.com/campaign/00_corp/2020/0408Essay.aspx?Ccode=000_001
레바 김(영어 강사)
내향형인데 외향형처럼 회화를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원어민처럼 하려다가 자신감을 더 잃어보았다. 사람들을 응원하는 고치기 힘든 습관이 있다. 20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고,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해 영어와 심리를 접목한 유튜브 채널 '일간 <소울영어>'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