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이다혜 작가의 북클러버 첫 번째 모임이 열렸다. 예스24가 만드는 오프라인 독서모임 북클러버는 매달 한 권 이상의 도서를 선정해 읽고 토론하는 자리를 만든다. 올해 3월까지 진행될 이다혜 작가의 북클러버는 ‘여성 작가 읽기’라는 주제로 매달 여성 작가의 책을 선정해 같이 읽을 예정이다. 첫 번째 모임에서는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 가 선정됐다.
북클러버 참가자들은 이다혜 작가의 이야기를 듣기 전 먼저 대여섯 명씩 모여 사전에 준비한 질문을 가지고 작품에 관해 토론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다혜 작가는 토론이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님을 강조했다.
“이야기하다 보면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을 거예요. 통합되는 의견을 도출하고 뭐가 주제인지 찾아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쇼코의 미소』 는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책이고,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한국 소설 작품을 아울러서 이야기할만한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골랐습니다.”
참가자의 이야기를 듣는 이다혜 작가
죽음이 문학에 끼치는 영향
『쇼코의 미소』 는 단편집으로 총 9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참가자들은 가장 좋아하는 단편으로 「신짜오 신짜오」와 「한지와 영주」 등을 골랐다.
“사실 소설집에 실린 작품 중에서 사람이 죽지 않는 이야기는 「한지와 영주」뿐이에요. 「한지와 영주」 는 표제작으로는 약하게 보였을 거예요. 소설집을 구성하면서 소설을 어떤 순서로 배치할까 생각해보시면 「쇼코의 미소」는 일단 길이가 길어요. 그래서 어디 있어도 묵직해 보였을 거예요. 「미카엘라」와 「비밀」은 직접적으로 누군가 죽는 이야기기 때문에 앞보다는 뒤에 싣는 게 정서상 맞을 가능성이 높아요.”
단편집은 순서대로 읽는 경우가 많은데, 계속해서 누군가 죽는 이야기가 반복되다 보면 독자들의 피로가 쌓인다. 「한지와 영주」는 충분히 알지 못하는 이유로 주인공들이 멀어지지만, 등장인물에게 큰 시련이 닥치거나 인생이 바뀔만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르게 생각해 보시면 ‘왜 이렇게 많이 죽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도 해볼 만해요. 왜 이렇게 많이 죽어야 할까요? 심지어 작품 속에서 사람이 죽는 게 너무 중요해요. 만약 죽는 사람이 없다면 작품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나 인상이 완전히 바뀌는 이야기들이기도 하죠. 「미카엘라」가 세월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비밀」도 세월호 이야기라고 생각해보신 적 없으세요? 세월호 사건이 있었을 때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 등 글을 쓰는 사람들이 다들 했던 이야기가 ‘이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였어요.”
모두가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마비된 상황에서는 창작의 의미가 없어진다. 예술에서 이야기하는 고독이나 아픔, 그리움 같은 정취는 사람이 죽는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아름다운 문장이나 감흥이 많은 사람이 죽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는 자각에 가깝다.
“세월호 사건 이후 사람들이 죽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세월호의 은유일까요? 꼭 그렇다고 볼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이야기에는 겉으로 보이는 줄거리가 있고 독자마다 뒤에 있는 이야기를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게 되는데, 작가가 세월호 이야기라고 직접 말하면 이야기가 너무 평평해질 위험이 있어요. 실제로 작가들도 무엇을 써야 할 지 모르는 상태이기도 했어요. 세월호를 직접적으로 가져오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는 세계를 그리는 것도 힘들고요. 그래서 비슷한 시기에 쓰인 작품 중 다수가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 죽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다만 「쇼코의 미소」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과정이 그려지는 것과, 「미카엘라」에서 죽음이 사회를 공격하는 폭력 요소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는 화자의 눈으로 이모와 엄마의 관계를 그린다. 엄마가 ‘언니’라고 칭하는 이모의 남편은 감옥에 갇히고 할머니는 이모를 내친다.
“살다 보면 화해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문제가 생긴 다음 다시는 화해하지 못하고 멀어진 채로 끝나죠.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에서 언니에게 문제가 생기고, 남편이 국가보안법 관련해 끌려가 옥바라지하는 과정에서 화자의 엄마는 도와주려고 하다가 어느 순간이 되어서는 점점 멀어집니다. 상대방 사정이 딱한데 못 도와주고 멀어지면 누구나 죄책감이 생겨요.”
「먼 곳에서 온 노래」의 ‘언니’라 불리는 미진은 노래패에 속해 있었다. 남성중심적으로 학생운동을 하는 곳에서 미진은 사실상 조직을 해체한다. 이야기의 화자는 자신에게 안 좋은 상황이 오자 미진과의 거리를 충분히 가깝게 유지할 수 없었고, 화자는 미진이 죽고 난 뒤 죄책감을 느끼고 산다. 이다혜 작가는 영화 <벌새>와 위 두 작품을 비교하며 흥미로운 지점을 짚어냈다.
“이 이야기를 <벌새>와 같이 하는 이유는, 죽은 사람은 훨씬 더 애틋하게 그리워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보통 누군가가 죽으면 대개 다시 돌아오지 않잖아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누가 죽어도 엄청난 사건이 됩니다. 아무리 원수 같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예요. 소설 속에서 죽음은 살아있을 동안 겪었던 갈등을 갑자기 봉합하게 만들어요. 소설 속 세계는 어딘가에서 끝이 나야 하기 때문에, 죽음은 때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계 장치로 내려온 신이라는 뜻. 문학 작품에서 결말을 짓거나 갈등을 풀기 위해 등장하는 역할이나 기법을 말한다)처럼 사용되기도 하죠.”
토론 중인 참가자들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계속되는 이야기
『쇼코의 미소』 표지는 분홍색 배경에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의 뒷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이다혜 작가는 여성 작가가 쓴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 분홍색 표지로 만들었나 싶었는데, 다시 보니 다른 지점이 눈에 보였다고 했다.
“여성의 일상적인 마음과 감정을 표현한 소설은 그전에도 있었지만, 저 자신과 동일시해서 써 내려가는 책은 없었던 것 같아요. 언젠가 했던 것 같은 머리 스타일에, 언젠가 입었던 것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표지에 넣은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얼굴을 보여줬다면 특정한 사람을 연상하게 되는데, 뒷모습은 자기 자신을 생각하기 쉽죠.”
한 참가자는 「쇼코의 미소」에서 쇼코가 뒤를 돌아봤을 때 서늘하게 웃고 있었다는 내용을 토대로 표제작을 묘사한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쇼코가 여러 가지 색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표현에 따라 표지의 배경색도 표제작의 묘사에서 기인한 거라는 추측이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소설과 연관 짓기보다 문학동네 출판사가 내는 여성 작가의 작품에 여성의 실루엣과 파스텔톤 표지가 공통적으로 쓰인 걸 언급하기도 했다.
“「쇼코의 미소」를 여러분이 썼다면 어떤 부분에서 이야기를 끝냈을까요? 저는 읽으면서 여기쯤이면 끝나겠다, 여기쯤이겠다 하다가 ‘여기서 끝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쇼코의 미소」는 한 가지 중요한 갈등을 해결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지 않아요. 크게 싸우고 갈등을 겪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갑자기 죽는 일은 현실에서 많이 일어나지 않잖아요. 계속해서 그 사람과 불화한 채 살고 있단 말이에요. 해결되지 않는 어떤 걸 꾸역꾸역 하는 것, 한때 좋아했지만 이제는 멀어진 것들을 가지고 계속 살아가는 거죠. 멋있거나 근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고 계속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게 이 이야기의 장점입니다.”
출국장으로 들어가던 쇼코의 미소를 기억한다. 보딩패스를 내밀고 자동 유리문 안으로 들어가는 쇼코의 얼굴. 그때 쇼코는 그 예의바른 웃음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음이, 어린 시절 쇼코의 미소를 보았을 때처럼 서늘해졌다.
『쇼코의 미소』 , 64쪽
마지막 부분을 읽고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 주인공 입장에서는 다 떠나 보내고 아직 처음 감정이 남아 있는 결말이다, 서늘한 미소라고 표현했지만 그 서늘한 느낌까지 인정한 것이다, 마음이 서늘해졌다는 게 차가운 느낌이라기보다 한 줄기 바람처럼 환기되는 느낌이었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인간관계에서 해피엔딩이 뭘까요? 로맨틱한 관계나 우정 관계라면 보통 맺어지는 걸 해피엔딩으로 상상하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그대로 헤어지는 것도 괜찮은 엔딩이 아닐까요? 주인공이 쇼코와 다시 만날지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연락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를 했겠죠. 하지만 우리는 보통 둘 다 해요. 돌아간 다음에 잠깐 연락을 주고받다 점점 뜸해집니다. 웬만한 관계가 그렇게 희미하게 끝나요. 이야기를 읽을 때 서늘하다고 하면 이 둘 관계는 끝난 걸까요? 「쇼코의 미소」는 계속해서 그다음 국면으로 독자를 데리고 간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쇼코는 훨씬 많은 사람과 닮아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누구나 어떤 사람을 사귀었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꿈을 가졌다가 꿈이 이루어지지도 않기도 하는데, 이런 여러 가지가 나오기 때문에 읽는 사람마다 어떤 대목을 가장 인상 깊게 읽느냐에 따라 흘러 들어갈 여지가 많은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이면이 많은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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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최은영 저 | 문학동네
맑고 투명한 그 목소리로 타박타박 담담하게 이어지는 소설들, 서로에 대한 마음의 ‘기댐’과 ‘기댐 받음’의 연쇄가 갖고 있는 힘을 믿는 소설들. 그리하여 다시 한번 우리를 ‘사람의 자리’로 이끌어가는 소설들이다.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