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 합정동의 그림 스튜디오를 다녔는데, 수업 첫날 선생님은 빈 도화지에 아무 그림이나 그려 보라고 했다. 미술 치료를 배운 선생님은 내가 그린 나무 한 그루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가지가 많고 잎이 풍성하네요. 그런데 그에 비해서 나무 둥치가 너무 가늘어서 불안정하죠. 세상으로 죽죽 뻗어 나가고 싶지만 중심이 탄탄하지가 않고 내적인 힘이 약하다고 할까.”
아, 신묘한 그림 치료의 세계여. 그림 한 장으로 내 속마음을 그대로 들켜 버릴 수 있구나. 그 시절의 나는 정말이지 욕구 불만 덩어리였다. 번역은 좋아하며 하고 있었지만 번역가로만 만족해지지가 않았다. 내 글을 쓰는 작가가 되거나 인지도를 높이고 싶은 건가. 모르겠다. 여행과 우정으로 내 일상을 다채롭게 채우고 싶은 건가. 모르겠다. 어떤 내가 되고 싶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지만 몇 년간 정체되어 있던 그 상태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또한 몸통이 가늘다는 건 내 재능과 매력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주제도 안 되면서 잘 살고 싶은 욕망만 가득한 인간이라는 이야긴가? 그렇다면 지금보다 번역을 더 맹렬히 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면서 내실을 키우리라 다짐도 했다.
thrive(스라이브)는 최근에 번역한 다양한 책에서 ‘성공하다,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치다, 다양한 영역으로 뻗어 나가다’의 의미로 쓰이고 있어 눈여겨보는 단어다. ‘번성하다, 번창하다’의 뜻인데 최근에 이 단어가 유독 성공과 연결되는 이유는 성공의 의미가 변해 가고 있기 때문인 건 아닌가 짐작해 본다. 부나 명예를 넘어 폭넓은 의미에서 자신의 완성이라든가 내적인 만족까지를 설명할 때 매우 적절한 단어다.
현재 번역하고 있는 의료 인류학자의 자서전에서도 시애틀에서 의사로서 지냈던 기간이 직업적인 면에서나 개인적으로나 전성기였다고 말하며 thrive를 사용하는데 그의 잠재력과 노력이 환경과 맞아떨어져 상승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일이 주변 사람과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쳤다는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다. flourish(만발하다)와 bloom(피어나다)도 비슷한 맥락에서 성공하다의 의미로 쓰이는데 번역할 때는 성공이란 단어는 되도록 지양하고 ‘성장하다, 진화하다, 활짝 피었다’ 등으로 옮기고 있다.
내가 올해 초에 알게 되어 깊이 빠져든 동네의 한 작은 책방이 탄생 3주년을 맞았다. 그저 책방을 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던 다섯 명의 조합원이 모였고, 임대료를 줄이기 위해 별주막이라는 지하 주막의 한쪽에 서고를 만들어 에코 페미니즘 서점, 여우책방을 시작했다. 낮에는 서점, 밤에는 주막이 되는 이 지하 공간에서 3년간 셀 수 없이 많은 책 읽기 모임과 글쓰기 모임이 열렸고 연극을 기획해 공연했고 ‘자기만의 방’을 주제로 한 북 토크와 행사가 열렸다. 옹기종기 모여 손바느질을 배우고 테이블을 밀어 놓고 아프리카 댄스를 추기도 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애니메이션 감독과 영화감독이 힘을 모아 4주 동안 단편 영화제를 열고 감독을 초청해 GV를 했는데 나는 일요일 오전, 집에서 5분 거리에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품격 있는 문화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달려가곤 했다.
여우책방은 그간 열린 행사를 정리해 비정기 간행물을 펴내고 작년에는 조합원과 단골 고객들이 다 같이 쓴 『여우책방, 들키고 싶은 비밀』이라는 책도 출판했다. 이 책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는 “우리의 원이 커졌다” “풍요로워졌다” “상생하다” “자랐다” 등이다. 매출이 늘었다거나 공간을 확장하겠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지만 이 서점이 어떻게 지역 사회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책방은 나처럼 문화생활에 갈급하고 인연에 목말랐던 사람들의 아지트이자 무대가 되었다. “여우책방은 지역의 여성들과 긴밀히 관계를 맺다 보니 이들이 갖고 있는 역량이 자꾸 보였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어 감춰져 잘 드러나지 않을 뿐, 이 보석 같은 사람들이 자기를 활짝 피워 내는 데 함께하고 싶었다.”
『여우책방, 들키고 싶은 비밀』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thrive나 flourish가 몇 번은 나와야 할 것이다.
나는 이 thrive라는 단어를 소개하면서 언제나 그랬듯이 나의 근황을 보탤 수도 있었고, 굳이 하자고 마음먹는다면 소재가 없지도 않았다. 최근에 갔던 행사나 번역 수업과 나의 깨달음과 심경의 변화에 대해 자랑스레 떠들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여우책방에서 사귄 친구들 덕분에 내 일상이 전보다 반짝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성장을 이야기하면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작게 시작했지만 서로 협력하면서 함께 잘 사는 법을 모색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들과 모임을 소개하고 싶고 돕고 싶었다.
몇 년 전 내가 그린 나무 둥치가 가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였는지 다시 곰곰이 생각한다. 단지 내 실력이나 재능 부족이 문제였다기보다는 나에게만 집착하고 더 잘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던 심리, 오로지 내 발끝만 바라보느라 옆 사람과 나를 둘러싼 사회를 품지 못하는 상태가 더 나를 지연시킨 건 아니었을까. 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타인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야말로 몇 년 전 그림 치료를 할 때 내게 있지 않았던 굵고 탄탄한 나무 기둥일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노지양(번역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KBS와 EBS에서 라디오 방송 작가로 일했다.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나쁜 페미니스트》, 《위험한 공주들》, 《마음에게 말 걸기》, 《스틸 미싱》, 《베를린을 그리다》, 《나는 그럭저럭 살지 않기로 했다》 등 6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