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아이를 키우다 보면 궁금한 것이 참 많아진다. TV나 인터넷에는 전문가 투성이에 별의별 이야기가 다 있다. 정보가 너무 많다보니 친구나 주변의 다른 엄마들을 만나서 듣는 말이 더 신뢰가 갈 때도 솔직히 더 많다. 전문가가 워낙 많고 말이 다 조금씩 다르거나, “아이가 행복해야 엄마가 행복하죠” 류의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는 뜬구름 잡는 전문가도 많다. 알쏭달쏭한 궁금증만 늘어나는데 답이 너무 많아 문제다.
자, 문제부터 풀어보자.
다음 퀴즈에 맞으면 0, 아니면 X로 체크해보자.
아이가 말을 너무 안 듣는다. 엉덩이 정도는 때려도 된다. ( )
갈수록 미세먼지가 심해져서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는게 걱정이 된다. 아토피가 아니라고 해도 미세먼지는 아이들의 우울증상을 심하게 한다. ( )
아이가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이다. 약물치료는 걱정이 된다. 인지치료, 사회기술훈련등 비약물치료만으로 아이를 고칠 수 있다. ( )
ADHD치료제는 정신흥분제 계열로 화학성분이 마약과 유사하다. 의존성이 생길 위험이 높다. ( )
시험 전에 고카페인함유 음료를 마시는 것이 시험 성적을 올리는데 도움이 된다. ( )
자해는 자살과 다르고 십대 청소년이 부정적 감정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의 하나다. ( )
예방접종이 자폐를 증가시키므로 굳이 예방접종을 시킬 필요는 없다. ( )
항우울제 치료는 도리어 자살 위험도를 높일 수 있다. ( )
평소 정신건강 관련 뉴스나 정보를 잘 챙겨보는 사람이라 해도 조금은 알쏭달쏭할 것이다. (정답은 이 칼럼의 말미에 공개할 것이다. 성격이 급한 분은 스크롤해서 먼저 확인하시길)
믿을만한 연구 결과들을 정리한 책
이와 같은 궁금한 내용에 대해 정확한 팩트 체크를 해주는 책이 등장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청소년특임위원회에서 공동으로 쓴 『팩트체크, 아이 정신건강』 이다. 이 책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단체인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자체 출판부를 만들어 출간한 첫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9명의 저자들은 모두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고 난 후 수년간 전임의 수련을 받은 소아청소년정신과 분과전문의들로 현재 서울대학교, 단국대학교, 부산대학교, 대구카톨릭대학교 등 대학병원에서 소아정신과 진료를 하고 있는 현직 정신과 교수들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책 소개가 책의 장점을 잘 드러낸다. 서점에서 찾을 수 있는 아이 정신건강과 관련한 책들을 펼쳐보면 내 입장에서 선정적이고 단정적인 주장을 하는 내용이 많았다.
“ADHD는 병이 아니라 의사들이 만들어낸 문화적 현상일 뿐이다”가 가장 대표적인 주장이다. 아무래도 뉴스나 미디어는 이런 주장에 솔깃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우리 사회에서 걱정이 되는 것 중 하나도, 평소 진보적이고 지적이라고 자인하는 사람일수록 “의학적 진단과 치료는 자연주의적이지 못한 일이다”(음식 동원을 좋아하는 환경주의자적 사고), “학교나 사회 등 학교가 아이를 인정해주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 우리 아이는 지극히 정상이다.”(아이의 병을 부정하고 회피하려는 방어기제적 사고)와 같은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위와 같은 정보에 솔깃하고 심정적으로 동의하기 쉽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와서 심리, 교육, 육아 관련 전문가나 정신과 의사들이라 해도 일부 학파의 이론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이를 중심으로 책을 쓰거나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어떨 때에는 이미 의미가 없다고 입증된 된 예전 연구 결과를 개인적 주장의 배경으로 확대해석하는 것도 발견하게 된다. 책을 내는 출판사 입장에서도 결국 잘 팔리는 것이 중요하니, 인기가 있을 만한 스토리텔링을 책으로 내고 싶은 마음 이해가 간다.
그러니 어느 장단이 맞는 것인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성인의 우울증, 조현병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 혼란은 커진다. 이럴 때 일수록 확실한 교통정리가 필요한데, 이 타이밍에 한국의 공신력이 있는 학회가 출판부를 차려서 대학교수들이 지금까지 나온 가장 믿을만한 연구결과들을 정리해서 펴낸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저자 개인의 경험이나, 소신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직,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말한다. 화끈한 주장이나 대담한 제시가 없고, 살짝 답답하고 재미는 없는 책이다. 그렇지만 그래서 한편으로 신뢰가 간다.
앞부분에 제시한 문제를 몇 개 풀어보자. 훈육을 위한 체벌, 궁금한 일이다. 2016년에 나온 메타분석 연구에서 16만명의 자료를 분석해보니 체벌은 아이의 행동 수정에 효과가 없고 체벌을 받은 아이는 이후에 반사회적 행동과 공격성을 보일 위험만 높았다. 혹 떼려다 혹 붙인 셈이다. 여러 연구를 종합할 때 결론은 “체벌의 해로운 영향은 학대의 영향과 다를 바 없다”였다. 사랑의 이름으로 선한 목적으로 하는 체벌도 결국 아이에게는 학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기오염이 증가하고 미세먼지가 높은 환경에서 사는 것은 호흡기, 심혈관에 확실히 좋지 않다. 정신건강에는? 역시 좋지 않다. 실외 활동이 줄어들고, 이웃과 상호작용이 줄고, 일조량이 줄어들어 우울증상이 증가할 수 있는데 2019년의 런던 출생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아동기 미세먼지 노출은 청소년기에 우울증 발생과 상관관계가 있었다. 그 외에 아이의 뇌신경발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미세먼지에 노출된 양이 많을수록 저체중 출산이 늘어났다. 저체중 출산은 자폐증, ADHD등 태아의 신경발달장애와 연관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간접적이나 연관이 있다고 할 만하다.
10대 청소년이 커피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에너지 드링크를 많이 마신다. 가뜩이나 부족한 수면으로 멍한 뇌를 깨우기 위해서다. 그러나 카페인을 섭취해버리면 도리어 낮에 더 졸리기 쉽다. 카페인의 금단으로 인해 뇌가 카페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즉, 수면부족이 졸리움으로 이어지고, 카페인이 없으면 더 졸리게 되며,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게 하고, 이로 인해 수면은 더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낮 시간 졸림과 집중력 저하가 카페인 금단일 수 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카페인을 끊고 인지기능 검사를 해보면 평소 카페인을 많이 섭취한 군이 적게 섭취한 군에 비해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즉, 카페인이 단기적으로, 장기적으로 썩 좋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ADHD를 치료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약은 메틸페니데이트 계통의 약으로 정신흥분제 성분이다. 암페타민과 유사한 구조다. 그러나 다양한 연구를 해 본 결과 코카인에 비해서 약물 반감기가 길어서 몸에 서서히 들어왔다가 서서히 빠져나가서 코카인만큼 쾌락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더욱이 주사가 아닌 경구로 복용하기 때문에 중독의 위험은 매우 낮다. 더욱이 최근 연구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속효성약과 현재 많이 사용하는 지속형 약을 비교하니, 이 역시 더욱 서서히 분비되고 흡수되어 약물 남용이나 중독의 가능성이 낮았다. 그러니, ADHD치료제의 복용이 또다른 중독을 가져올 위험은 매우 낮다는 것이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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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연구까지 빠짐없이 출처 소개
이런 식으로 저자들은 여러 가지 궁금증에 대해서 고지식하고 담백하게 현재까지 규명된 연구결과들에 기반해서 설명을 한다. 앞으로 새로운 연구에 의해서 이 설명은 뒤바뀔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밝혀진 바를 기반으로 한다면 이것들을 지금까지는 ‘팩트’라고 인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장점을 하나 더 하자면, 책 말미에 본문에서 인용된 여러 연구의 출처를 밝혀놓은 것이다. 고전이 된 연구들부터, 최신연구까지 빠짐없이 출처를 소개하고 있어서, 팩트 체크가 필요한 부모뿐 아니라, 평소 아이들을 여러 루트로 만나고 있는 교사, 심리, 육아 관련 전문가나 학자들에게도 좋은 정보를 얻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여러모로 한 권 정도 비치해두고 꺼내볼 만한 책이다.
아이가 말을 너무 안 듣는다. 엉덩이 정도는 때려도 된다. ( x )
갈수록 미세먼지가 심해져서 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는게 걱정이 된다. 아토피가 아니라 해도 미세먼지는 아이들의 우울증상을 심하게 한다. ( o )
아이가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이다. 약물치료는 걱정이 된다. 인지치료, 사회기술훈련등 비약물치료만으로 아이를 고칠 수 있다. ( X )
ADHD치료제는 정신흥분제 계열로 화학성분이 마약과 유사하다. 의존성이 생길 위험이 높다. ( X )
시험 전에 고카페인함유 음료를 마시는 것이 시험 성적을 올리는데 도움이 된다. ( X )
자해는 자살과 다르고 십대 청소년이 부정적 감정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의 하나다. ( 0)
예방접종이 자폐를 증가시키므로 굳이 예방접종을 시킬 필요는 없다. ( X )
항우울제 치료는 도리어 자살 위험도를 높일 수 있다. (X )
# 퀴즈의 정답 풀이가 본문에 소개되지 않은 내용은 책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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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아이 정신건강대한신경정신의학회 청소년특임위원회 저 | 대한정신건강재단
의학 연구에서 근거 수준이 최상위인 메타 분석(META-ANALYSIS)과 체계적 문헌 고찰(SYSTEMATIC REVIEW) 연구를 우선적으로 선택했다. 소아정신과에 온 부모에게 설문 조사를 해서 대표적인 궁금증을 선별했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