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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를 때 위로는 슬픔에 걸려 넘어진다

김현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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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렇게 감정없이 조곤조곤한 말투가 싫을까.” “저의 로망인데요. 노력해도 안돼요.” (2019.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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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서 더 슬프고 얕아서 덜 슬픔 슬픔은 없다. 슬픔은 슬픔이다. 우리는 다만 슬픔의 범위를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슬픔의 범위를 짐작하는 일은 경험의 내공이 있어야 하는 어려운 일이다. 섣부를 때 위로는 슬픔에 걸려 넘어진다. 나는 타인의 슬픔에 관해선 아직 앎이 짧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런 사연들 주변에서 발길을 쉬이 돌리지 못해 서성인다. 한순간이라도 타인에게 연루된 사람의 도리란 그런 것이다.
(김현 저,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109쪽)

 

트위터를 안 하려고 노력했는데, 슬슬 시작했다. <책읽아웃> 청취자들의 리뷰를 찾아보다가 하트를 누르다가, 리트윗을 하다가, 불쑥불쑥 글을 남기고 싶은 마음을 참고 참다가, 아주 가끔 130자를 남긴다. <책읽아웃> 청취자 몇 명과도 트친이 됐다. 나는 주로 하트만 살짝 누르지만 간혹 GIF로 답글을 달기도 한다.

 

2018년 가을, <책읽아웃> 1주년 부산 공개방송 때, 제작진에게 커피를 선물해주신 청취자 분이 있다. 행사장을 정리하고 있는 우리에게 방긋 웃으며 당시 서울에 상륙하지 않은 블루보틀 커피를 주셨는데 그때는 우리의 인기가 현재처럼 엄청나지(?) 않았던 터라, 몹시 놀랐다. 대개의 사람이 스타, 또는 작가, 진행자를 좋아하지 않나? 우리의 존재를 생각해 주다니! 나와 스태프들은 뜨끈한 마음으로 서울행 KTX를 탔다.

 

요 며칠 “우아한 척하는 사람, 정말 별로”라는 생각을 자주했다. 스스로 특별한 자아인 척하는 꾸밈새가 눈꼴 사나워서 내게 접촉하려는 느낌이 들면 슬슬 피하고 있었다. 다행히 업무를 같이 하는 사람은 아닌데, 내 눈앞에 자꾸 왔다갔다하면 괜스레 불쾌했다.

 

트위터를 하던 중 재밌는 글을 발견했다. <책읽아웃> 청취자의 트윗이다.

 

“나는 왜 이렇게 감정없이 조곤조곤한 말투가 싫을까.”

RE : “저의 로망인데요. 노력해도 안돼요.”

 

“아 되지 마세요. 제가 싫어해요.”

RE : “네 그럼 안되죠. 실은 20대 초엔 또 아주 샤프하고 쌩~ 한 사람이고 싶었던 적이 있죠. 당연히 실패했어요.”

 

두 분의 대화에 하트를 꾹 누르고, 말을 보탰다. “OO님, 안 그런 분이라서 좋거든요.” (OO님은 내게 부산에서 블루보틀 커피를 줬던 분이다) 몇 번의 대화가 이어졌고 나는 답했다. “전 뭐든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게 평정심을 유지하면 맘이 안 가요. 부족한 모습도 보이고 좀 그러는 거지. 너무 딴딴한 사람이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트위터란 대개 그렇지 않나? 짧은 대화 몇 번 나누고, GIF 몇 개 달면서 끝! 그런데 몇 시간 뒤 모르는 분께서 댓글을 달았다.

 

“어쩌면 그 조곤조곤한 평정심을 위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참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많이 힘들고 가슴 아픈 일들을 견뎌 냈을지도 몰라요. 무례한 듯하지만 한번 남겨봅니다. ^^”

 

너무나 정중하고 따뜻한 문장. 우리 셋은 이 글에 ‘하트’를 꾸욱 눌렀지만 댓글은 달지 않았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내 눈에는 여전히 몹시 우아한 척하고 일 잘하는 척하는 사람이 보인다. ‘왜 저렇게 일하지? 왜 저렇게 말하지? 왜 저렇게 오버 액션하지?’ 생각하면서 동시에 질문해본다. (‘어쩌면 강해 보여야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몰라. 약한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아야 할 사연이 있을지 몰라’)

 

“무례한 듯하지만 한번 남겨봅니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살짝 언짢았다. ‘~한 듯이란, 대개 ‘듯’이 아니고 팩트일 때가 많은데, 굳이 저런 말을 하실 건 뭐람’이라고. ‘우리가 그걸 모르는 사람인가? 우리 역시, 조곤조곤한 말투를 싫어하게 된 사연이 있지 않겠나? 우리에겐 상처가 없을까? 왜 항상 타인의 상처와 서사를 먼저 생각해야 하지?’

 

사소한 트윗에서 시작된 여러 단상을 정리하던 찰나, 시인 김현의 산문집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을 읽었다. 109쪽에 나온 문장이 눈에 밟혔다. “섣부를 때 위로는 슬픔에 걸려 넘어진다. 나는 타인의 슬픔에 관해선 아직 앎이 짧은 사람이다.”

 

트위터를 많이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섣부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다. 나의 정당성을 증명 받고 싶은 엄청난 욕망을 자제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우고, 또 지운다. 가끔은 억울하다. 이렇게까지 조심해야 하나? 실수 좀 하면 어때? 나도 상처 받았는데 왜 타인의 상처만 먼저 고려해야 해? 끙!

 

갈팡질팡한 마음을 툭툭 건드리다가 책장에 꽂힌 책을 봤다. 고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 제목이 너무 좋아 끌리듯 읽은 트윗 모음집. 순간 머리카락이 바짝 섰다. Don't even think you know! Don't think you know everything! 내가 그렇게 자주 되뇐 말이 아니었던가.

 

입술이 간질간질할 때마다, 손이 근질근질할 때마다 꾹 참아 보련다. 섣부른 말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지 모르니, 그것은 꽤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일이 될 수 있으니. 오늘도 내게 상처 준 사람을 맞닥뜨리며 ‘그 사람의 의도와 마음을 다 안다고 여기지 말아야지’ 생각해야겠다.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김현 저 | 봄날의책
여행지 짝꿍 옆, 사무실 동료 옆, 베트남의 친구 옆 등, 어쩌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묘사해 새롭고 소중한 것으로 단번에 바꾸어놓는다. 여기 그 기록들이 촘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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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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