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은 나와 주변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 『열두 발자국』 , 등을 펴내며 독자들을 만나온 뇌과학자 정재승 박사가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한 뇌과학 동화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를 출간했다. 외계인의 낯선 시선으로 인간을 탐구하는 과정을 그린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는 외계인들로 구성된 ‘아우레 탐사대’가 지구에 도착해 인간을 관찰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우레 탐사대는 매일 밤 지구인 관찰 보고서를 아우레 행성으로 전송하고, 보고서에는 아우레 탐사대의 시선으로 해석된 지구인의 모습이 기록된다. 독자들은 아우레 탐사대의 보고서를 통해 인간의 생각,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다른 나라 언어나 복잡한 수학 공식을 가르쳐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마음의 과학을 가르쳐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 인간 사회는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실들을 아이들에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에게 진짜 유익한 지식이니까요.“ (7쪽)
10월 6일 오후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출간 기념 강연회가 열렸다. ‘뇌과학에서 어린이/청소년 교육의 통찰을 얻다’라는 주제로 열린 본 강연에는 독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출간 배경을 설명한 정재승 박사는 “아이들을 위한 책을 딱 하나 출간한다면 당연히 뇌과학에 관한 책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초등학교 때 관계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뇌과학에는 못 미치더라도 심리학 수준에서 관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는 정재승 박사와 출판사 아울북이 3년여에 걸쳐 제작한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의 첫 번째 책이다. 강연에 앞서 출간 소감을 밝힌 정재승 박사는 “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는 시즌 1부터 시즌 5까지 총 50권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출간 계획을 밝히는 한편, “인간이 외모에 집착하는 이유를 다룬 1권에 이어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2권과 3권에서는 기억과 감정 등을 다룰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가 알려주는 교육 힌트
『슬픈 열대』 의 저자이자 사회학자, 인류학자인 레비스트로스는 프랑스에서 일류 교육을 받았지만 주류 학문과 완전히 다른 길을 제시하고 새로운 담론을 정립했다. 정재승 박사는 ‘동떨어진 시선’을 강조한 구조주의 인류학의 창시자 레비스트로스를 소개하면서 “아이들에게도 동떨어진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떨어진 시선을 가지고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자신과 친구, 가족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털 없는 원숭이』 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자가 인간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면서 인간을 관찰한 내용을 기술한 책인데요. 중학교 때 이 책을 읽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인간도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때의 기억을 떠올려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가 『털 없는 원숭이』 의 어린이 버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지구에 온 외계인의 시선으로 인간을 본다’는 시놉시스를 구성했습니다.”
이른바 ‘창의 게임’으로 잘 알려진 마시멜로 게임은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18분간 서로 협력하여 마시멜로와 스파게티 면으로 탑을 쌓고 가장 높은 탑을 쌓은 그룹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정재승 박사는 마시멜로 게임을 소개한 뒤 “높고 다양한 모양의 탑을 쌓은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은 낮고 비슷한 모양의 탑을 만들었다”며 “계획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어른들이 쌓은 탑은 대개 비슷합니다. 전형적인 탑의 모습이죠. 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거든요. 그렇지만 탑의 모양은 알아도 스파게티로 탑을 세워 본 경험은 없어서 계획을 세우지 못합니다. 계획을 세우다 시간만 보내죠. 아이들은 어떨까요? 아이들이 쌓은 탑의 모양은 다양합니다. 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일단 쌓기 시작하고 쌓으면서 수정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들이 생기죠.”
마시멜로 게임에 상금이 걸리면 결과는 얼마나 달라질까. “우승하는 팀에게 1,200만 원을 지급한다는 조건을 걸자 모든 그룹이 탑을 쌓지 못했다”고 정재승 박사는 설명했다. 이어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해 즉각적인 보상을 할 때 오히려 퍼포먼스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며 “외부의 보상에 민감한 어린이들이 보상에 민감한 어른으로 자란다”고 말했다.
“부모가 보여줘야 합니다”
많은 부모가 아이를 공평하게 대한다고 말하는 반면, 아이들은 부모가 차별한다고 느낀다. 정재승 박사는 한 실험 사례를 소개하면서 부모와 아이가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뇌섬’에 있다고 설명했다. 뇌섬은 차별을 인식하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영역으로 뇌섬을 통해 우리는 공정함, 형평성을 인지할 수 있다. “뇌섬은 생존을 위한 기능 중 하나”라고 소개한 정재승 박사는 “뇌섬을 가진 동물들의 생존 확률이 높게 나타난 연구 결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차별받았다는 아이, 차별하지 않았다는 부모 중 누가 맞을까요? 아이들이 맞습니다. (웃음) 우리 뇌에 그걸 모니터링하는 영역이 있어요. 그러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간단하지만 어려운 해결책이 있습니다. 부모가 인정하고 사과하는 거예요. 아이들은 인정과 사과 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과하기가 어렵죠. 무의식적으로 부모와 아이를 권력 관계에 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권위가 필요할 때가 있지만, 많은 부모가 ‘내가 심했다’고 생각해도 사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명확하게 사과해야 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부모가 사과하기 시작하면 아이가 커도 사과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보여줘야 나중에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적절하게 사과할 수 있고요.”
이어 놀이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연구 자료를 소개한 정재승 박사는 “놀이의 시간이 줄어들면 수업에 집중하는 능력도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간은 놀이를 준비 기간으로 생각하지만, 정해진 방법이나 절차가 있을 때 인간의 창의성을 자라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하면 “놀이를 통해 쌓이는 우정은 뇌과학자들이 설명하지 못하는 행위 중 하나로 다른 종에서 찾을 수 없는 인간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창의적인 아이로 키우는가’는 인공지능 시대에 중요한 화두다. 창의력의 중요성을 설명한 정재승 박사는 “교과 과정에 충실한 교육을 받은 아이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남다른 생각을 하라는 것은 부당한 요구”라면서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는 교육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제일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돌리는 게 이득인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훨씬 더 높은 성과를 내죠. 인공지능과 함께할 다음 세대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메타인지가 필요합니다. 인공지능이 낸 결과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해요. 내가 배운 것을 비판하는 능력이 중요하죠. 내 생각을 잘 짜인 논리로 정리하여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순간 오른쪽 귀에서 6cm 떨어진 곳에 있는 뇌의 특정 영역이 반응한다. 이에 대해 정재승 박사는 “인간이 창의성을 발휘할 때는 뇌를 골고루 사용한다”고 하면서 “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서로 멀리 떨어진 영역이 연결되면서 신호를 주고받을 때, 즉 상관없는 개념이 서로 연결될 때 창의적인 생각이 많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하면 남과 같이할까’가 아니라 ‘내 아이의 머리, 언어를 어떻게 하면 다른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세요. 한 줄 더 앞에 있는 것보다 충분히 행복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내 관점과 내 경험을 찾은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질의 응답
학업과 정서 발달 중 무엇이 우선인가요?
우선은 없습니다. 둘 다 중요합니다.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이유가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기 때문이죠. (웃음) 둘 다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잘하느냐는 아이의 몫이죠. 다만 초등학교 때까지는 아이들의 전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지만, 공감 능력은 발달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화를 잘 풀고, 관계 맺는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8살 아이의 질문입니다. 뇌는 왜 꾸불꾸불한가요?
뇌를 잘라서 피면 넓은 종이처럼 펴집니다. 2m 정도 되고 두께는 굉장히 얇죠. A4 용지같이 얇고 넓은 구겨서 좁은 곳에 넣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넓을수록 꾸불꾸불해지겠죠? ‘뇌에 주름이 많으면 머리가 좋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온 겁니다. 2차원인 뇌가 3차원이 된 거죠.
2권은 언제 나오나요?
2권은 오는 12월 3일, 3권은 내년 4월에 나옵니다.
배가 부른데 먹으라고 신호를 잘못 주는 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삶이 묻어나는 질문이네요. (웃음) 신호를 잘못 주는 건 아니고 늦게 주는 겁니다. 배가 부르면 우리 몸에 있는 두 개의 호르몬이 균형을 이루면서 신호를 보내는데요. 이 과정에서 지연되는 현상이 생깁니다. 배가 부르다는 신호를 늦게 보내는 거죠.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데 뇌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나요?
아이가 현명해서 그렇습니다. (웃음) 이런 말이 있죠. ‘말로 하는 조언은 싸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조언은 비싸다’. 아이들에게 책 읽으라고 하면서 부모들이 TV를 보면 어떨까요? 아이들은 다 알죠.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TV가 더 재미있구나’ 하고요. 말을 아끼고 몸으로 보여 주세요. 많은 부모가 ‘말’이라는 가장 쉬운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그러면 아이들은 듣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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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 1정재은, 이고은 글/김현민 그림/정재승 기획 | 아울북
내가 누구이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은 왜 저렇게 행동하고 우리가 함께 사는 주변의 이웃들,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돌아가는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뇌과학은 굉장히 중요한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최진영
'이야기하면 견딜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