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6.25로, 미국에서는 '한국전쟁'으로 불리는 비극이 일어난 지 반세기가 흘렀습니다. 2019년인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많은 책이 나왔는데요. 100주년이라는 상징성이 없어서인지 6.25에 관련된 책은 그리 많이 출간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올해에도 6월 25일 전후로 한국전쟁을 다룬 저서가 몇 권 나오긴 했죠. 이중 주목할 책이 바로 페렌바크가 쓴 『이런 전쟁』 입니다.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Theodore Reed Fehrenbach)는 미국 텍사스 출신 역사 저술가로, 한국전쟁에 육군으로 참전했습니다. 전역한 뒤 15년 동안 보험 판매업에 종사하며 부업으로 여러 매체에 기고하면서 저술 활동을 펼칩니다. 『이런 전쟁』 은 그의 두 번째 저서로, 6.25의 기원에서부터 전개, 휴전까지를 다룬 책입니다. 미 육군사관학교와 미 육군지휘참모대학의 필독서라고 할 만큼 미국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졌고, 한국에는 다소 뒤늦게 소개되는 셈이죠. 흥미로운 사실은, 이 책에서 저자가 자신의 참전한 사실을 어디에도 밝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쟁을 기술하겠다는 저자의 의도겠죠.
생명체 중에서 자기 동족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존재는 오직 인간밖에 없습니다. 전쟁이란 본질적으로 부조리고, 기묘한 사건이죠. 6.25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책 뒤의 표지에 적힌 문구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6.25전쟁은 '전쟁에 대한 미비와 오판, 제3차 세계대전으로의 확전에 대한 두려움이 만든 기묘한 전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전쟁은 힘을 시험한 전쟁이 아니라 의지를 시험한 전쟁이었다. 쌍방 중 누구도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서방이 공산권 지도부의 야망과 의도를 오판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공산권 지도부가 서방에 대해 가진 적대감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자신들의 침략이 불러올 반응을 평가하는 데서 공산권이 크게 실수했음 또한 이 전쟁으로 증명되었다. (8쪽)
1950년 두 개로 나눠진 아시아 (23쪽)
1950년,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각 진영을 대표하는 군사 강대국이었고 두 세력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기습적으로 대한민국을 공격합니다. 대한민국 뒤에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버티고 있는데 왜 북한은 전쟁을 감행했을까요? 전면전이 벌어져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거라고 오판했기 때문입니다.
공산 진영이 상황을 낙관적으로 판단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호전적인 성향 때문에 전차나 전투기와 같은 고급 무기를 한반도에 두길 꺼려했습니다. 고급 무기를 배치하면 양 진영 간 긴장을 고조해 전쟁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으니, 이를 차단하려는 의도였죠. 반대편에서는 다른 상황이 벌어집니다. 인민군은 소련 전차로 무장을 강화했습니다. 대한민국 국군 사이 힘의 비대칭성이 계속 벌어집니다. 게다가 1950년 1월 12일,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이 말한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는 한반도가 제외되죠. 이에 공산진영은 전쟁이 벌어져도 미국은 개입하지 않을 거라 판단하고 전쟁을 감행합니다.
공산진영의 예상과 달리 전쟁이 벌어지자 미군은 빠르게 개입했습니다. 전쟁 초반, 적군의 침투를 예측하지 못한 미군은 군인의 훈련 상태나 무장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인민군의 진군 속도를 다소 지연시켰을 뿐 고전하며 밀립니다. UN군의 참전으로 대의적 명분을 갖추고, 낙동강 전선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뒤, 인천 상륙 작전으로 반격에 성공합니다.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합니다. 전의를 상실한 인민군은 북으로 계속 밀립니다. 자유 진영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여기서 자유 진영은 또 한 번 오판합니다. 중국이 UN군의 38선 진출 시 개입하겠다고 수차례 이야기했음에도 무시한 거죠. 그 결과 청천강과 장진호에서 매복하고 있던 중공군에 당하고 후퇴하게 됩니다.
1950년 여름, 한 미군 병사를 동료 병사가 위로해주고 있다. (267쪽)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피를 흘렸지만 어느 쪽도 승기를 잡지 못한 채 38도선 근처에서 전선이 고착됩니다. UN군을 구성한 여러 나라가 휴전을 원했고, 국제 사회 여론을 의식한 미국 역시 전쟁이 확산되는 데 부담을 느꼈습니다. 휴전 논의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당장이라도 전쟁이 끝날 분위기였지만,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하며 휴전 논의는 장장 2년 동안 이어집니다. 이 기간에도 전투는 계속 벌어졌고 희생자는 늘어만 갑니다.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양측은 정전 협정에 조인합니다.
결국, 전쟁에서 그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명백하게 패자는 있었습니다.
1950년 폭격과 포격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의 작은 마을 (279쪽)
미국인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들만이 계속해서 전쟁에서 지고 있었다. (『이런 전쟁』 546쪽)
800쪽에 걸쳐 6.25를 서술한 『이런 전쟁』 을 저술한 사람은 참전 미군이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을 향한 애정을 곳곳에서 드러냅니다. 해방 이후 한반도의 혼란스러운 정세를 묘사하면서 일제의 잔혹한 식민지 통치를 강도 높게 비판합니다. 비중 있게 서술하진 않지만, 전쟁 중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관해서도 잊지 않고 썼습니다. 무엇보다 전쟁에서 최대 피해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책 곳곳에서 강조하죠.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과 함께 이 책이 탁월한 점은 바로 가독성입니다. 두꺼운 분량 때문에 책을 펼치기가 다소 부담스러우나 일단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 전쟁에 직접 참여한 경험을 살려서 저자는 전투를 마치 영상으로 보듯 생생하게 묘사해냈습니다. 소설가답게 장과 장 사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능력도 탁월합니다. 독자를 궁금하게 하는 능력이 발군인데요.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UN군 참여를 서술하며, 전쟁 초 힘이 됐던 UN군이 나중에 미군을 압박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쓰면서 왜 UN군이 아군인 미군을 압박하는지에 대한 답을 미리 공개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책을 계속 읽어가며 답을 찾을 수밖에 없죠.
『이런 전쟁』 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인물은 이승만이나 김일성, 트루먼이 아니라 미군 야전 사령관과 그들을 따랐던 군인들입니다. 6.25에 벌어졌던 주요 전투를 생생하게 읽어낼 수 있죠. 다만, 행위의 주체가 미군이다 보니 한국군이 수행했던 전투나 전쟁 중에 일어난 정치, 외교 사건에 관한 정보는 꼭 필요한 내용만 서술하고 비중 있게 다루지는 않습니다. 이런 공백은 6.25를 다룬 다른 책에서 찾아 읽으면 좋겠습니다.
* 더 읽는다면
김동춘, 『전쟁과 사회』 , 돌베개 : 국가폭력으로써의 전쟁을 분석했습니다. 전쟁 도중 벌어진 폭력과,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어진 사회 전반의 폭력을 한국전쟁과 연관 지어 설명합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 , 『콜디스트 윈터』 , 살림 : 아이젠하워, 트루먼, 애치슨, 김일성, 마오쩌둥, 맥아더, 리지웨이 등 전쟁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주요 정치인과 군인과 함께 일반 병사들의 개인사를 수록하며 6.25 전쟁을 다양한 시각에서 기술합니다.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 , 인물과사상사 : 강준만 교수 특유의 자료 수집 능력과 정리 덕분에 6.25를 압축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연선, 『잊혀진 전쟁의 기억』 , 문예출판사 : 부제인 ‘미국소설로 읽는 한국전쟁’에서 보듯, 문학 작품에서 재현되는 6.25를 읽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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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전쟁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 저/최필영, 윤상용 공역 | 플래닛미디어
6?25전쟁이 끝나고 10년 뒤에 차분하게 전쟁을 뒤돌아보며 다각도에서 예리하게 내렸던 평가가 6?25전쟁 70주년을 1년여 앞둔 현재도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을 이해하고 도전에 대응하는 데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