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하고 싶은 욕망
저자들은 “표현 양식이 일상적이고 습관적일 경우” 말하기와 글쓰기가 기존의 통념을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요약하자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ㆍ사진 홍민기(엑스북스 편집자)
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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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문장을 내가 썼다면 좋았을 텐데.” 뛰어난 문장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질투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나에게서 너무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질투를 느껴서 문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모두 내가 질투하는 작가들이다. 솔직히 말하면 ‘좋아한다’는 마음보다 ‘질투난다’라는 마음이 더 앞서는 것 같기도 하다. 질투를 주체하지 못하고 일기장에 표절을 해버린다. 어떤 작가의 문장을 가져와 나의 감정을 표현할 때면 어찌나 짜릿한지. 끊임없이 손안에서 미끄러지던 감정 덩어리를 드디어 포획한 기분이다. 오랫동안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감정에도 다 적절한 이름이 있었다. 진부한 표현만 떠올리는 습관 때문에 점점 더 주체할 수 없게 느껴졌을 뿐이다. 

 

 뛰어난 문장을 표절하고 싶은 욕망은 누군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더 적절한 표현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상쾌하게 딱 들어맞는 말을 찾아서 다행이라고 안심하다가 곧 또 다른 열패감이 밀려온다. 아무리 명료하고 아름다운 문장이라 해도 그것은 다른 사람의 글이다. 그 문장이 나를 잘 표현한다고 느끼는 것도 착각 아닐까.

 

 그런데 다른 이의 글을 따라하는 것이 오히려 새로운 나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번에 편집한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 는 (이런 표현에 양해를 구하자면) 적극적으로 베껴 쓰기를 권하는 책이다. 저자들은 “표현 양식이 일상적이고 습관적일 경우” 말하기와 글쓰기가 기존의 통념을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요약하자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 는 문학상담을 통해 그런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기존에 있던 사랑 시를 오려서 새로운 시를 만들고, 타인이 고른 시어들로 나를 표현하고, 특정 시의 문장구조를 베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정리하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언어들이 튀어나온다. 타인의 언어는 나와 별개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낯선 나’를 끄집어내는 마중물이 된다. 
 
 완벽한 나만의 언어라는 것이 존재할까? 나를 정의하는 수많은 언어들은 다 어딘가에서 나에게로 흘러들어온 것들이다. 표절하고 싶은 마음은 그 문장을 나의 일부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지난 경험을 새롭게 정의하고 싶은 마음, 그렇게 해서 지금의 나를 다른 나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었다. “저 문장을 내가 썼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질투는 “그때도 저 문장처럼 생각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의미부여’라는 만능열쇠가 있다. 기억과 경험은 주관적인만큼 유동적이다. 영화 <라쇼몽>은 주관적이고 유동적인 기억을 인간의 어두운 면으로 봤지만, 한편으로 그런 의미부여의 힘 때문에 우리는 치유될 수 있고 나아질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문장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지금이라도 저 문장처럼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진은영, 김경희 공저 | xbooks
안전하게 자기를 숨길 수도 있고, 자신이 쓴 내용을 바라보며 상처와 거리를 두는 것도 가능하다. 문학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비로소 ‘저게 나구나’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에 한발 더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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