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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2화: 거기 뭐 하는 거요?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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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이 나온다. 낮은 지붕에 노랗고 흐린 전등 불빛이 나무판자의 격자 창문에 새어 나오는 상점과 주점을 지나자 철도 양편에 비좁은 골목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철길을 따라 걸어갔다. (2019. 0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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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거기 뭐 하는 거요?”


그는 그냥 침묵한다.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어서다. 한 칸씩 위로 이동하면서 뽑고 오르고를 되풀이하는데 의경이 정문의 경장을 데리고 왔다.


“위험한 행동 중지하시오.”         

   
이진오는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씩 웃고 다시 침묵한다. 그들은 나선형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얼마 후에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 구간인 진오의 발치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가 삼 미터쯤 위로 오른 뒤여서 그들은 멀거니 올려다볼 뿐 말릴 수가 없어 보인다.


“당신 지금 시설물 훼손을 하고 있는 거요.”

경장은 선임답게 한마디 했고 의경도 물었다.


“근데 거 위험하게 사다리 나사는 왜 뽑고 있는 겁니까?”


그제야 이진오는 작업을 멈추고 말해 주었다.


“이거? 당신네들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가 농성을 진압할 수 없어서 지켜보고만 있는 게 아니오.”


그는 나사를 뽑아 바지의 작업 포켓에 떨구어 넣고는 말했다.


“여보쇼 내가 뛰어내리는 것보다는 이게 낫지 않소?”


“에이 증말 짜증나네. 이게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이냐구?”


경장은 돌아서서 조심스럽게 무릎을 굽히고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면서 중얼거렸다.


“백날 해보라지. 높은 놈들은 이런 데 관심도 없다구.”


이진오는 한 시간 반쯤 걸려서 십여 미터짜리 사다리 양쪽의 나사를 모두 뽑아버릴 수 있었다. 마지막 세 칸은 위에 올라가서 느긋하게 편한 자세로 작업했다. 사다리를 잡고 바깥쪽으로 힘껏 밀어내자 통로의 둥근 아크릴 방벽에 붙어버린다. 이렇게 해두면 아무도 출입을 할 수가 없겠다. 덕분에 그의 퇴로도 없어졌다. 내려갈 수 있는 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진오는 나사를 아래쪽 동료들에게 전해서 그들이 다시 박으며 올라오게 될 날을 고대해 본다.


그는 여느 날처럼 점심 먹고 나서 셋동작과 걷기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다시 저녁 먹고 셋동작 하고 몸 풀기 운동까지 끝냈다. 세상 사람들은 퇴근해서 동료들과 술 한 잔 마시거나 귀가하여 저녁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시각이었다. 이진오는 휴대전화로 아내와 통화했고 노조 동료들과도 문자를 주고받았다. 별다른 변동이 없는 평온한 하루였다. 도시에 어둠이 내리고 밤이 깊어갔다. 소음이 차츰 잦아들고 멀리서 가끔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텐트의 침낭 속에 들어가 누워서 잠을 청했다. 여기서 잠은 실컷 잘 수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 할 일이 없으니 밤 아홉시만 넘으면 침낭 속으로 들어가 누웠고 어느 결에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그는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깨어났다. 실눈을 뜨고도 침낭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서 한참을 뒤척거린다. 침낭의 지퍼를 내리고 고치의 애벌레처럼 빠져나온다. 주위에 부연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진오는 텐트에서 몇 발작이라도 먼 곳으로 걸어 나가 난간 앞에 섰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난간 밖으로 오줌을 내갈겼다. 흠칫 몸서리를 치고 돌아서다가 구름바다처럼 둘러싼 안개를 보고는 난간 바깥쪽으로 오른발을 내밀어 휘저어 보았다. 어쩐지 발밑이 허전하지 않다. 그는 난간 주위를 왕래하며 걷기운동을 하던 때에 문득 허공으로 걸어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었다. 이진오는 난간의 쇠창살 사이로 몸을 굽히고 다시 한쪽 다리를 내딛어 보았다. 이불이나 부드러운 요를 밟은 것 같다. 그는 두 손으로 난간을 잡은 채 두 발을 바깥쪽에 딛고 섰다. 뭐야, 걸을 만하잖아. 놀라서 중얼거리며 진오는 허청허청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것은 눈이 쌓인 벌판을 걷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무릎까지 빠진 채로 걷는 듯하더니 이윽고 발걸음이 경쾌해지며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구름 속에 있는 것처럼 짙은 안개가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제 이진오는 단단하고 메마른 흙길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철길이 나온다. 낮은 지붕에 노랗고 흐린 전등 불빛이 나무판자의 격자 창문에 새어 나오는 상점과 주점을 지나자 철도 양편에 비좁은 골목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철길을 따라 걸어갔다. 불 꺼진 상이용사회관이 보인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몇 번 서부영화를 보러 들어갔고 초등학교 삼학년 때인가 쌔벼 들어가는 길을 발견했던 생각이 났다. 간판 그리는 미술 작업장을 통해서 영화관의 창을 넘어가는 길을 이발소 집 아이가 먼저 발견했다. 상이용사회관은 전쟁 뒤에 군의 후생사업으로 군수 창고를 영화관으로 개조해서 부상병들의 복지를 돕던 영화관이었다. 목재와 함석으로 지은 창고였는데 가건물 옆에 덧댄 간판 작업장은 늘상 열려 있었다. 밤에는 작업실 문이 닫혀 있었지만 슬쩍 밀고 들어가면 되었다. 각목과 상자더미가 쌓인 곳으로 올라가면 나무 칸살이 달린 창고 영화관의 창문이 있었다. 창문 안으로 검은 암막 커튼이 있고 아래로 뛰어내리면 좌석이 늘어선 통로였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기도 아저씨에게 걸려서 호되게 경을 친 뒤부터는 미술실 문에도 밤에는 자물쇠가 달리고 창문에도 닭장 같은 철망을 달았다. 상이용사 회관의 기도는 세 명이었는데 모두가 부상병들이었다. 목발 짚은 찐따 아저씨는 매표소에 있었고 화상 입은 깨비 아저씨는 표를 받는 입구에 서있고 외팔이 아저씨는 전체 극장 구역을 돌아다니는 경비였다. 그들은 서로 돌아가며 입구를 지키고 청소도 하고 경비도 돌았지만 세 사람 중에 외팔이가 제일 무서웠다. 그는 한쪽 팔에 의수를 끼우고 담배꽁초를 두 갈래의 뾰족한 갈고리에 끼워 멋지게 피우며 표를 성한 손으로 받고는 했다. 그가 성이 나면 커다란 낚싯바늘 같은 갈고리를 앞으로 들이대며 한번 해볼 테냐고 으르딱딱거렸다.   


이발소 집 아이는 키득거리며 다시 새로운 통로를 개척했다고 진오에게 말했다. 진오는 그가 이끄는 대로 이른 아침에 회관 건물 뒤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건물 뒤의 판자 벽 아래 함석뚜껑을 위로 당겨 열자 오물 냄새가 확 올라왔다. 진오는 그걸 보자마자 후회했다. 그 녀석에게 딱지 한 통을 대가로 지불했던 터였다. 딱지를 통째로 달라고 해서 아끼던 보물상자를 주고 말았다. 양키시장에서 파는 양철로 만든 쿠키 상자였다. 아무리 구경이 좋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변소로 기어들어간단 말인가. 녀석은 그래서 발 딛을 데를 만들며 들어갔고 벌써 두 번이나 공짜 영화구경을 했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에 두 아이는 종이상자 뚜껑을 뜯어 두 개씩 지니고 회관으로 갔다. 영화관 변소의 변기구멍으로 새어든 불빛 때문에 바닥이 보였다.


변소는 깊고 넓었다. 미리 날라다 넣은 돌을 딛고 변기구멍 바로 아래 똥무더기를 피하여 구멍 밖으로 나갔다. 상반신을 내밀기 전에 종이상자 조각을 먼저 발 딛는 곳에 깔아야 했다. 간신히 빠져 나오니 화장실 안이었고 영화관 안에 무사히 안착했다. 몇 번 드나들었는데 어떤 때에는 손이나 윗도리에 오줌이 묻기도 하고 신발에 똥이 묻기도 했다. 볼일 보는 이들 중에 칠칠맞은 어른들이 겨냥을 잘못하고 디딤대에 오물을 흘리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어둠 속을 더듬어 자리를 잡고 앉으면 사람들은 갑작스런 오물냄새에 코를 킁킁거리거나 이게 무슨 냄새냐고 서로 묻곤 했다. 그야말로 쪽팔려서 더는 못할 짓이었다. 이발소 집 아이는 이발사인 형네 집에서 살았다. 녀석의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얹혀사는 셈이었고 형수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우리는 그애 별명을 작은 깍새라고 불렀으니 그의 형이 큰 깍새인 셈이었다. 하여튼 깍새는 집에서 뛰쳐나가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는데 고물을 주우러 다니는 양아치 시라이 막에서도 살았고 땅꾼 선배한테서 뱀 잡는 법도 배웠다. 뱀이 보약이라 구렁이 몇 마리 고아 먹으면 겨울에도 땀이 날 정도로 몸이 뜨거워진다고 그랬다. 그는 뱀과 이야기를 나눌 줄 알았다. 잡기 전에 풀숲에서 기어 나와 그를 노려보는 뱀에게 말을 건다. 너 어디 놀러 가냐? 형이 맛있는 것 줄게 이리 좀 와 봐라. 그러고는 서슴없이 꼬리를 잡아 올린다. 뱀이 물려고 상체를 꼬며 꿈틀거린다. 너 날 잡아 먹을라구 그러는 거지? 아냐, 그게 아니라 느이 엄마 아부지 놔두고 너만 데려가는 건 다 생각이 있어서다. 어떻게 할 건데? 쥐가 많아서 못살겠다. 너에게 쥐 많이 잡도록 해주께. 자꾸 말썽 부리면 이 자리에서 패대기를 쳐서 보내버린다. 그러고는 자루에 슬쩍 담고, 또 다른 녀석을 말 시켜 보고 또 자루에 넣고. 이게 다 깍새의 구라였지만 진오는 그에게 자꾸만 이야기를 시키곤 했다.


깍새는 나중에 소년원에 들어가 나팔수가 되었다. 대가리가 좀 커져서 깍새가 동네로 돌아왔는데 그 녀석은 트럼펫 꼭지를 가지고 다녔다. 그는 꼭지를 입술에 대고 두 손바닥을 모으고는 기가 막히게 구슬픈 곡조로 취침나팔을 불었다. 깍새는 이담에 크면 뭐가 되고 싶으냐고 어른들이 물으면 군인이나 경찰이 되겠다고 그랬고, 또래의 친구들이 물으면 사실 자기는 도둑놈이 되는 게 제일 좋겠다고 그랬다. 왜 그러냐니까 기술만 좋으면 세상의 어떤 물건도 차지할 수가 있고 째지게 가난한 녀석들에게 짜장면도 사줄 수 있지 않냐고 대답했다. 그런데 깍새는 어이없이 죽었다. 철도공작창 부근의 빈터는 언제나 녹슨 교각 몇 개가 쌓여있기 마련이었는데 거기서 밤에 철교 구조물 사이로 건너뛰는 재주를 부리다가 떨어졌다.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지만 그의 작은 몸이 발을 헛딛고 구조물 사이로 떨어지며 엇갈린 철근에 이리저리 부딪쳐서 바닥에 처박히는 꼴을 상상할 수가 있었다. 그의 시신은 며칠이나 지나서 발견되었다. 아이들 말로는 바로 그 즈음에 서커스단이 지나갔는데 우리 동네에서 큰 천막을 칠 장소는 거기 밖에 없었고, 구경꺼리 좋아하는 깍새가 아마도 날마다 천막 사이로 쌔벼 들어가 공중 곡예를 구경했을 거라는 얘기였다. 녀석은 그 흉내를 내보려던 게 아니었을까. 큰 도둑이 되려면 평소에 그런 재간 연습을 많이 했어야 할테니까. 근데 이제야 그가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진오는 깨닫게 된다. 세상의 어떤 물건도 차지할 수가 있다니. 


 이제 샛말의 큰 길에 들어섰다. 길가에는 주로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구역마다 골목이 시작되고 있었다. 덩치 큰 방울나무가 버티고 선 세 갈래 길이 진오네 동네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선생님들은 그걸 플라타너스라고 부르고 아이들은 방울나무라고 불렀더니 한약방 할아버지가 저건 양버즘나무라고, 대홍수 나기 전에 일본 것들이 철도 놓을 무렵에 수십 그루를 심었다고 가르쳐주었다. 아버지에게 물었더니 자기네 동무들도 어릴 적부터 모두 방울나무라고 불렀으니 너희도 그렇게 불러도 괜찮다고 그랬다. 예전에 상두도가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장의사가 된 모퉁이집 지나서 깍새네 이발소 지나고 자동차가 드나들만한 사거리 건너편에는 두부집 육고집 이쪽에는 만물상 예전에 정미소였다가 목재소가 된 자리 지나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작은 한옥들이 줄지어 있는 쌀집 골목 안에 이진오가 태어난 그 집이 보인다. 진오는 서슴치않고 대문을 밀어 보았다. 오늘따라 문은 소리도 없이 안으로 열렸다. 보통 때에는 어딘가 아귀가 맞질 않는지 나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간 옆에 변소가 있고 대문으로 들어서면 곧 길줌한 마당이다. 원래는 네모반듯했다는데 큰할아버지가 할아버지 떠난 뒤에 공방을 만든다고 대문간 옆에 네 평짜리 별채를 지었다. 진오네는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을 큰할아버지라거나 대할아버지라고 일컬어 할아버지 이일철과 구분했다. 할머니 신금이는 안방을 누구에게 내준 적이 없었다. 일제 때 지은 작은 집장사 집이건만 아직도 대들보와 석가래는 짱짱했다. 이백만의 퇴직금에 이일철의 월급을 모아 장만했던 집이었다. 큰할아버지 이백만은 아들 이일철 덕분에 철도관사에 들어가 살 수 있었지만 아들은 관사생활이 답답하다고 샛말의 새집으로 이사했다. 전쟁이 휴전이 되고 철도관사에 살던 이들 중에 북을 편들거나 월북한 이가 있던 가족들은 호된 경을 치르고 쫓겨나거나 미리 알아서 고향으로 내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두 사내가 북으로 떠난 뒤에 그나마 남은 가족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도 제 힘으로 일가를 이루어 관사 사람들과는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살았던 덕택이었다. 진오가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부엌 아래편 수돗가에서 푸성귀를 씻고 있던 할머니 신금이가 고개를 들더니 그를 반겨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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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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