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울음은 여전히 아프다
새 어린이집에서 지안이는 열 명 남짓의 아이들과 생활하는데, 그 중 두 친구는 아는 친구다. 폐원한 어린이집에서 함께 이 곳으로 넘어왔다.
글ㆍ사진 김성광
201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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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운다고 마냥 마음 아프진 않다. 언제부턴가 그렇다. 부모라는 자리가 조금 익숙해진 것일까. ‘익숙’이라는 단계는 자주 ‘둔감’이라는 상태로 자각된다. 슬픈 일이지만 슬픔에도 곧 익숙해지고 만다. 아이를 낳고 한없이 말랑해졌던 마음에 어느새 굳은살이 조금 생겼다.

 

어떤 울음은 그래도 여전히 아프다. 마음을 눌러오다 끝내 터뜨리는 울음이 그렇다. 참고 견디는 자의 마음은 어른이라고 둔감할 수 없어서, 부모 마음의 가장 연한 부위에서 어떤 감정이 꿈틀거린다.

 

지안이는 3월부터 새 어린이집에 다닌다. 다니던 곳이 폐원했다. 어린이집을 1년 다녀봤기 때문일까. 새 어린이집에 가는 첫 날에도 가기 싫다는 말이 없었다. 다녀 와서는 새 어린이집엔 얼마나 멋진 장난감이 있는지 내게 자랑했다. 어린이집의 적응 프로그램에 따라 첫 주엔 하루 한 시간, 둘째 주엔 하루 두 시간을 있다 왔다. 셋째 주를 앞둔 주말. 이제부터는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고 올 예정이라, 어린이집에 가져다 둘 아이 이불을 챙겼다. 지안이가 좋아하는 깡총깡총 토끼이불. 이불을 살피면서 “지안이 이제 어린이집에서 낮잠도 자고 오겠네” 했더니 지안이가 “맞아 맞아”하며 “아빠 우리 어린이집 놀이해요” 한다.

 

어린이집 놀이는 누워서 시작한다. 둘이 눈을 감고 나란히 누워 있으면 지안이가 ‘아침!’ 외친다. 그러면 같이 ‘아 잘잤다’하며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양치하고 옷 입는 시늉을 한 뒤 손잡고 어린이집(안방)으로 간다. “늦잠 잤어. 서둘러야 해”, “가방 매는 거 좀 도와줄래” 같은 말을 그때 그때 섞으며 약간의 변주를 주기도 한다.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는 선생님(엄마)에게 “안녕하세요!” 큰 소리로 인사한다. 선생님께 인사할 때 지안이는 정말 집이 쩌렁쩌렁 울리듯 큰 소리로 인사하고, 허리를 거의 90도 접는다. 사적인 공간에서의 지안이와 공적인 공간에서의 지안이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선생님께 인사한 후엔 가방을 제 자리에 두고, 가방에서 수건을 꺼내서 건다. 이번 어린이집에서는 들어가자마자 수건을 걸어둔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수건을 거는 자리에 지안이 얼굴과 이름이 붙어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선 한참 춤도 추고 책을 보다가 점심 먹는 시늉을 한 뒤 토끼 이불을 깔고 낮잠을 자자고 말한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집으로 돌아오고, 다시 잠을 잔 뒤 ‘아침’ 소리와 함께 무한 반복하는 게 어린이집 놀이다. 지안이의 하루 스케쥴을 그대로 알 수 있어서 재밌고, 부모 입장에선 유용하기도 하다. 다만 정말 무한 반복이라 몸이 꽤 힘들다. 지안이는 거의 다섯 번에서 열 번을 반복한다.

 

어린이집 놀이를 여전히 좋아하고, 꼬박꼬박 새 어린이집의 모습을 설명해주어서 마음을 놓았다. 옮기는 게 쉽지 않다고 해서 약간 긴장을 했었는데 이렇게 잘 적응해주니 고마웠다. 그렇게 온종일 어린이집 놀이를 하며 깔깔거리다가 밤을 맞았다. 토끼 이불을 개고 이를 닦이고 잘 준비를 하는데, 하루 종일 웃던 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자기 싫어, 자기 싫다고” 하며 엉엉 시작된 울음이 꺼이꺼이로 넘어갔다. 처음엔 더 놀고 싶어서 보채는 것 같았는데, 점점 사정이 있는듯한 울음으로 느껴진다.

 

“지안아, 얼른 자야 내일 어린이집 가서 재미있게 놀지. 내일부터는 토끼이불에서 잠도 자고 오잖아.” 하고, 내 딴에는 내일의 즐거움으로 관심을 돌려보려 말했는데 “싫어. 싫어. 어린이집 가기 싫어” 하며 더 크게 운다. 그렇게 신나게 어린이집 이야기를 하던 아이가. 속을 알고 싶어서 캐물어보니 그제서야 아이가 이런 얘기를 한다. “OO이 옆에서 자고 싶은데 엉엉, 모르는 친구 옆에서 자게 될까 봐 엉엉”

 

새 어린이집에서 지안이는 열 명 남짓의 아이들과 생활하는데, 그 중 두 친구는 아는 친구다. 폐원한 어린이집에서 함께 이 곳으로 넘어왔다. 지안이는 이 친구들과 아닌 낯선 친구들과 나란히 눕게 될까 봐 걱정을 했었나 보다. 그런 걱정을 안고 있으면서도 내내 내색하지 않다가,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맞아야 하는 순간이 되자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안이는 새 어린이집 이야기는 계속 했지만 새 친구들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새 친구들 이름을 내게 알려주지도 않았다. 익숙한 친구들에 의지하며 불안을 눌러왔던 것일까. 아직 세 돌도 안 된 아이에게 이 불안은 어느 정도의 무게일까.

 

어린 시절 나도 낯선 친구들을 만나는 게 두려웠다. 부모님은 나를 미술학원에도, 피아노학원에도, 태권도 학원에도 보내주셨지만 3개월을 버티기 어려웠다. 미술이, 음악이, 운동이 재미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있는 3개월의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특별히 배척을 받은 것도 아닌데, 내가 마음의 문을 열기 힘들었다. 타인과 친밀감을 느끼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타입이었다. 초등학교(국민학교) 저학년을 지나고 나서야 좀 나아지긴 했지만, 사실 지금도 처음 만나는 사람을 편하게 대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다. 지안이는 그런 나를 닮은 것일까. 지안이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져서 내 마음도 흐물흐물 해졌다. 지안이를 꼬옥 안아 주었다.

 

그보다 한 주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서울역의 한식뷔페에서 점심을 먹고 같은 건물의 마트로 장을 보러 간 주말이었다. 미세먼지가 심하면 실내공간을 찾아 스케줄을 세우게 된다. 밥을 배불리 먹고 이제 장을 좀 볼까 했는데 하필 마트가 휴무였다. 장은 동네에서 봐도 되지만, 마트 방문은 생필품 구매와 지안이 사람구경 물건구경도 겸하는 것이라, 바로 옆 아울렛으로 들어갔다. 4층에 장난감 코너가 있었다.

 

레고 블럭과 동물 인형들 사이를 통과한 후 지안이는 큰 박스 형태로 구성된 장난감들 앞에 섰다. 아이들 코너에는 뽀로로, 콩순이 캐릭터를 활용한 장난감들이 무척 많다. 시선이 한참을 머무르는 것으로 봐서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는 것 같았는데, 조금 보더니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개의 인형과 몇 개의 장난감을 살펴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지안이는 조용히 잠들었다. 지안이가 자는 두어 시간 동안 드라이브를 하고 지안이가 깬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청소를 하고 저녁을 먹고 아이 목욕을 시키고 나니 다시 밤이 내렸다. 셋이 누운 채 얘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 하는 시간.

 

“지안아 오늘 어땠어? 엄마 아빠는 지안이랑 오늘 같이 보내서 너무 행복했어” 했더니


“나도 행복했는데 가슴이 좀 콕콕했어” 대답한다.

 

콕콕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콕콕이 뭔지 물어보니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가슴이 왜 콕콕했어?” 물으니


장난감 구경할 때 갖고 싶었는데, 사지 못해서 콕콕 했어” 라고 또박또박 답하는 듯 하더니


“크롱 치카치카 장난감 사줘요” 하며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바라보던 눈이, 또박또박하던 대답이 일순 허물어졌다.

 

생각해보니 평소엔 엄마 아빠가 애초에 사 줄 목적으로 “지안아 어떤 게 갖고 싶어?” 물었던 것 같다. 오늘은 사 줄 생각이 아니어서 아예 물어보지 않았더니 지안이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 마음을 이렇게 누르고 있었을 줄이야. 아이는 이제 아쉬운 기색을 감출 줄도 알게 되었고, 이는 성장의 징표지만, 이 성장이 꼭 흡족한 것만은 아니다.

 

“지안이 마음이 그랬구나. 장난감을 맨날 사는 건 안되지만 가끔은 사도 되니까, 우리 다음에 장난감 구경할 때는 한 번 살까” 했더니


“응응” 하며 더 목놓아 울며 “안아주세요” 하고 안긴다.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길 망설이는 지안이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할머니가 김밥을 싸주실 때 “시금치는 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누르고, 시금치가 잔뜩 들어간 김밥을 꾸역꾸역 먹었던 어린 시절의 내 마음을 생각해본다. 엄마가 아프셔서 방학마다 큰 집에서 보내던 내가, 큰 집에 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그 말을 미처 꺼내지 못했던 일을 생각한다.

 

너는 자라겠지. 너는 이렇게 자라고, 누르는 것을 배우고, 그러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아이가 되겠지. 살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꼭 거쳐야 하는 일이겠지. 하지만 울고 싶을 땐 울고 말하고 싶으면 말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누르는 일 뿐 아니라 잘 꺼내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아무리 어른이 되어도 마음은 아프기 마련이고, 모든 감정을 누를 수는 없단다. 아빠도 지금 마음이 아프다. 너의 울음이 여전히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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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 #아프다 #아이 #낯선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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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