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 드라마 「중판출래(重版出來)」. 일본 드라마를 좋아하는 남편이 먼저 본 후, 내 취향에 맞을 것 같다면서 추천했다. 평생 유도밖에 모르던 국가대표 유도 선수가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유도를 그만두게 된다. 절망에 빠져 있던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어린 시절 자신을 매료시켰던 만화다. 만화를 그릴 실력은 없지만 좋아하는 만화를 세상에 내놓는 편집자가 되기로 결심한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업계 2위인 만화 잡지 편집부에 입사한다. 독자와 만화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때론 안주하려는 만화가를 몰아세워야 하는 편집자 역할에 대해 주인공이 곤혹스러워하자, 선배 편집자는 이런 말을 들려준다.
“그리는 사람의 괴로움은, 작품의 완성도와 비례하는 법이야.”
“아!” 하는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방송 글을 쓰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는 정말 글 쓰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새 아이템을 야심차게 내밀었지만 ‘다른 것 없냐’는 소리를 들을 때, 구성안이 심심하다거나 대본이 평이하다는 평가를 받을 때, 나에겐 왜 일필휘지(一筆揮之)할 수 있는 능력을 주지 않았는지 하늘을 원망하곤 했다.
그럴 땐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실랑이를 벌였다. ‘이만하면 됐어. 그냥 마무리하자’란 목소리와 ‘나아질 거야. 조금만 더 해보자’라는 두 개의 목소리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더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물론 후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더 이상 책상 앞에 앉아 있을 기력조차 없는 순간에는 내면의 소리 따위에 귀를 막고 그냥 노트북을 덮어 버린 적도 여러 번이다.
작가가 만족하는 글쓰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상을 너무 들여다봐서 눈이 충혈되고,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해 손목이 시큰거릴 정도로 글을 붙잡고 있어도 정작 방송이 전파를 타고 나면 어김없이 불만족스러워 후회가 찾아온다. 그래도 그 괴로움의 시간이 지나면 분명 어제보다 나은 작품이었다는 안도감에 한숨을 돌린다.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고치고 또 고치는 퇴고의 과정은 안주하려는 나와 싸우는 시간이며, 스스로를 설득시키는 과정이다. 완성도 높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퇴고의 횟수와 시간을 늘리는 것이 좋다. 하지만 무턱대고 고치려 들면 오히려 헤매기 쉽고, 쉬이 지칠 수 있다. 퇴고에도 길잡이 역할을 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체득한 나름의 방법은 이렇다.
첫째, 알맞은 어휘를 찾는다. 지금도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단어를 발견하거나 낯선 단어가 눈에 띄면 기록해 두는 버릇이 있다. 뜻이나 발음, 생김새가 닮아 보여도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말맛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어휘 수집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오로지’와 ‘오롯이’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뜻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쉽게 이해하려면 오로지의 자리에는 ‘오직’, ‘오롯이’의 자리에는 ‘온전하게’로 바꿔서 문장을 읽어보면 된다. 가령, ‘오직 한 곬으로’란 뜻으로 사용하여 ‘난 오로지 나 자신만 믿는다’로 쓸 수 있다. 반면, ‘모자람 없이 온전하게’란 뜻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이 집에는 그와의 추억이 오롯이 담겨 있다’로 써야 한다. 글을 쓰다가 여러 유의어가 떠올라 무엇을 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면, 문장에 차례로 단어를 바꾸어 넣어보자. 내가 전하려는 뜻에 보다 알맞은 어휘를 선택할 수 있다.
둘째, 문장과 문단의 위치를 바꿔 본다. 글의 형식이나 내용의 특징에 따라 문단 구성 방법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 두괄식은 첫 문장부터 이목을 사로잡아야 할 때 효과적이고, 미괄식은 읽는 이들의 사소한 궁금증을 자극해 점점 호기심을 키워가다가 마지막에 주제를 제시하는 구성에 유용하다. 한 프로그램에서 무조건 두괄식이나 무조건 미괄식 구성으로 각 항목들을 이어간다면 시청자들은 지루하게 느낄지 모른다. 퇴고 과정에서 문장이나 문단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보면서 보는 사람이 더 이해하기 쉬운 방향을 찾아 고민해보기를 권한다.
셋째,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리듬감 있고 재미있게 느껴진다면, 내 글을 읽어 보는 사람도 그만큼 쉽게 읽을 것이다. 작가가 직접 소리 내어 읽어 봐야 발음이 더 쉬운 단어로 고칠 수 있고, 읽는 이의 호흡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 모니터로 자신의 글을 훑어보기보다는 프린트해서 종이 위의 활자를 읽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글자가 새겨진 공간이 달라지면서, 내가 쓴 글이지만 왠지 생소해 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더 객관적으로 글을 대면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퇴고까지 무사히 마쳤다면 안심하고 작품을 공개해도 될까? 방송을 완성한 후에 실수를 발견하거나 실패를 맛봤던 횟수는 그동안 내가 제작한 방송편수만큼이나 많다. 한 휴먼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였다. 이 프로그램을 2년 넘게 맡아 진행했고, 시청률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기에 출연자 선정부터 대본 작성까지 자신감이 붙어 ‘이쯤이야’ 하는 타성에 젖어 있었다. 그러던 중 신문의 단신 코너에서 눈에 띄는 인물을 찾아냈다. 부산의 한 시장에서 밥집을 열어 노인들과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나눠주는 스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사람이다!’라는 촉이 왔다. 평소 밥집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내 지하상가에서 탁발을 한다는 기사를 읽고 막연히 스님을 만나러 나섰다. 운이 좋게도 방문한 첫날, 지하도 한쪽에 앉아 탁발 중인 스님을 만났다. 선한 눈매에 중후한 목소리, 몇 마디 나눠보며 나의 예감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얼마 후, 스님을 주인공으로 하여 밥집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과 밥집을 찾는 사람들의 사연까지 엮어 무난히 촬영을 마쳤고, 편집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인물도 매력적이었지만 촬영 현장의 분위기도 정겹고 따뜻해서 방송이 나가면 밥집을 응원하는 도움의 손길도 이어지겠지 하는 기대감도 가졌다.
작가로서 보람을 느끼게 해줄 작품이 될 줄 알았던 이날 방송은 내 방송 인생 최악의 작품이 되었다. 다큐멘터리가 나간 직후, 방송국으로 여러 항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방송에 나온 스님의 사연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란 증언과 함께. 제보 내용은 이랬다. 충청도 어딘가에 살다가 사기범 전과자가 된 그는 교도소에서 나온 후 가족들이 받아주지 않자 시골 암자를 돌며 생활했고, 스님이 되기로 결심하여 불교에 입문했다. 그러나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해 타지에서도 각종 봉사를 한다며 신자들을 모아 돈을 빌린 다음, 갚지 않고 소식이 끊겼는데 부산에서 밥집을 운영한다는 방송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의 빚 때문에 아내와 자녀들이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온 사람도 있었고, 스님에게 돈을 줬다가 받지 못했다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그때 나를 비롯한 제작진들의 당혹감과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끝내 우리는 사과 자막을 내보내야 했고, 불교연합회에 관련 사실들을 알렸다. 밥집은 불교연합회에서 운영을 계속하게 됐지만 기금운용 등에서도 이미 문제가 생기고 있던 터라 결국 문을 닫았다.
이 쓰라린 경험 이후, 나는 원고를 완성한 후에도 한 번 더 점검하는 이른바 ‘팩트 체크’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방송이든, 책이든 혹은 온라인 공간을 통해서든 내가 쓴 글을 세상에 공개하는 순간, 거기에 담긴 데이터나 정보, 지식은 더 이상 나만의 기록이 아니다. 글을 쓰면서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해 나는 내 자신을 다그치며 몇 가지 지침을 세웠다. 방송도 그러하듯 신문이나 잡지도 어느 한 단면만을 부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양한 관점과 방향에서 주제에 접근하고자 했다. 평소에 믿고 보는 언론이나 기자의 글이라도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과정에서 기자나 언론사의 편견 또는 사심이 개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방송 제작진 역시, 색안경을 끼고 촬영 대상자나 관련 이슈를 바라볼 여지가 충분히 있으므로 편파적인 시각은 아닌지, 공정성을 추구하고 있는지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눈빛만 보면, 얼굴만 보면 어떤 사람인지 읽힌다고 자부하던 나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버리게 되었다. 아무리 인자한 표정을 가진 출연자라도 꼭 필요한 질문이라면 실례를 무릅쓰고 망설이지 않고 묻게 되었다. 평소 친분이 있는 출연자나 유명 인사를 인터뷰할 때 그의 이력이나 주장의 오류를 따져보지 않고 그대로 글로 옮겨 쓰는 경우가 있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라며 가벼이 넘긴 정보가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안다.
독자에게 보탬이 될 더 나은 방향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돌아가더라도 망설이지 말고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지침을 만들었지만 나의 실패와 실수는 계속되었다. 실패한 경험이 늘수록 방송작가로서 실패에 대처하는 기술들도 하나씩 늘어갔다. 내가 실력이 좋은 방송작가였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작가였다고 얘기할 수는 있다. 나에게 쓰라린 상처를 준 수많은 실패의 상황과 사람들 덕분이다.
「중판출래(重版出來)」에서 창작자의 마음가짐에 대해 조언해 주는 장면이 있다. 단행본 만화 출간을 앞두고 표지 디자인을 맡은 베테랑 디자이너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맡은 작품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거리로 나와 사람들을 관찰하며 만화 속 메시지를 전달할 방법을 찾아 나선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초보 편집자의 질문에 베테랑 디자이너는 말한다.
“내가 한 일이라며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작업물을 세상으로 내놓기 위해!”
방송 프로그램 마지막에는 스태프 스크롤이 흐르며 끝난다.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는 그 순간이 ‘방송쟁이’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찰나가 된다. 작품의 완성도에 따라 자막으로 새겨진 나의 이름이 당당히 빛나기도, 수치심에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나를 몰아붙이는 편집자 역할을 하는 ‘또 다른 나’를 외면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태프 스크롤에 흐르는 나의 이름을 숨기지 않고 “내 작품이야”라며 마음껏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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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글 심폐소생술김주미 저 | 영진미디어
짧은 문장부터 한 편의 글까지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팁을 비롯해,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지 등 글쓰기 기법과 ‘작가’로서의 태도를 모두 엮었다.
김주미(작가)
방송국에서 라디오작가와 TV 구성작가로 20년 일했다. 이후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을 비롯해 공공도서관, 문화원에서 글쓰기와 드라마 인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방송작가 시절부터 겪어온 글쓰기의 시행착오를 기록, 공유하고자 카카오 브런치 매거진 『방송 스토리텔링의 비밀』을 연재했고 브런치북 프로젝트 금상을 받았다. 현재 미디어 비평가이자 작가로 살며, 읽고 쓰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