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욱한 안개 속 멈블 래퍼 중 21 새비지는 군계일학이다. 허장성세가 일반적인 힙합 씬에서 차가운 로우 톤을 기조로 놀랍도록 냉정한 그는 진지한 태도와 유연하고 감각적인 플로우로 대세의 지위에 올랐다. 미고스, 카디 비, 포스트 말론 같은 랩 스타들의 훌륭한 조력자로 눈도장을 찍었음은 물론, 'Bank account'를 위시한 데뷔작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대단하다'로 소포모어 앨범 제목을 정한 것 역시 든든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곡의 테마와 게스트에 맞춰 최적화된 랩을 선보이는 재능이 앨범 모든 트랙에서 빛난다. 입에 감기는 훅으로 중독을 확보함과 동시에 차분해서 더 묵직한 스토리텔링으로 진정성의 영역까지 만족시킨다. 발매일을 착각하는 바람에 2주 정도 발매가 늦춰진 점만 빼면 모든 면에서 올바른 제목 선정이다.
1970년대 밴드 더 퍼즈(The Fuzz)의 차분한 보컬 샘플 위 '숱한' 인생 굴곡을 노래하는 'a lot'부터 금세 빠져드는 훅과 명료한 스토리텔링을 들려준다. 이방인의 시각을 견지하는 제이콜(J.Cole)의 일갈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과정이 매끄럽다. 또 다른 샘플 트랙 'Out for the night'는 카를로스 산타나의 'Samba pa ti'의 연속적인 기타 리프 위 규칙적인 호흡으로 변칙의 재미를 안긴다.
21 새비지의 차가운 매력을 선호한다면 가라앉은 피아노 선율 위 이국의 멜로디를 더한 'can't leave without it'의 트랩이 익숙할 것이다. 영혼의 파트너 메트로 부민과 함께한 미니멀리즘의 정수 'asmr', 잔향 가득한 신스 위 나른한 템포의 드럼 비트와 톤을 맞춘 'pad lock' 역시 칠(chill)한 감각을 유지하는 트랙이다.
'엉덩이와 가슴'의 준말 'a&t'는 여러모로 앨범의 킬링 트랙이다. 여성 랩 듀오 시티 걸즈의 일원 영 마이애미의 앙칼진 랩과 능숙한 완급 조절을 선보이는 새비지의 궁합이 절묘한 중독을 만들어낸다. 미고스 오프셋과의 콜라보로 과거 'BBO(Bad bitches only)'를 연상케 하는 '1.5' 역시 트렌드 최전선에 있는 새비지의 현주소를 증명한다.
동시에 그는 진중한 자세 역시 놓치지 않는다. 차일디시 감비노와 함께한 'monster'로 부와 명예의 부작용을 경고하고, 'rockstar' 콤비 포스트 말론과 다시 뭉친 'all my friends'에선 믿을 수 없는 성공이 불러오는 소원한 친구 관계를 쓸쓸히 노래하기도 한다. 허무주의와 맹목적 부의 찬양을 노래하며 방탕하게 스러지는 래퍼들과 분명히 선을 긋는다.
i was>는 2019년의 첫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실물 판매량으로 차트 의미가 평가절하되는 현실이지만 이 앨범을 그렇게 넘기는 일은 없어야겠다. 캐치하면서도 무게감을 지녔기에 인기 이유가 명확한 작품이다. 롱런하는 아티스트의 조건이 보인다.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