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있었던 일본 내 한류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한국 시스템에서 탄생한 아티스트에 현지 콘텐츠를 이식한 '제이팝으로서의 케이팝'과 본국에서의 방향성을 그대로 가져가는 '팝으로서의 케이팝'. 에이벡스와의 제휴를 통해 금자탑을 쌓은 보아와 동방신기가 전자라면, '소원을 말해봐'나 '미스터'로 열도를 공략했던 소녀시대와 카라 이후의 일본 진출 팀은 대부분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여전히 현지 스탭에 대부분을 일임하는 최근의 SM 소속팀들과 밴드 포맷인 FNC 정도가 예외랄까. 이처럼 콧대 높은 시장을 뚫기 위한 파훼법을 고심하던 것이 이전의 사정이었다면, 지금은 판도가 바뀌었다. 케이팝의 위상확대와 함께 그 수요가 별도 영역을 생성하였으며, 특별한 현지화 없이도 진출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과연 황금기라 할만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작품이 최근의 주요 경향과는 달리, 여느 일본 그룹들의 결과물들을 떠올리게 하는 '제이팝으로서의 케이팝'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케이팝이 케이팝 그 자체로 어필 가능한 지금 시점에선 예상 외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트와이스의 데뷔 싱글은 현지 스탭에 의한 오리지널 콘텐츠였고, 한국활동 곡들을 일본 데뷔 싱글로 번안해 기존의 화제성을 활용하고자 한 타 팀들과는 선을 그어왔다. '일본인 멤버 소속 그룹'이라는 장점을 기반으로, 붐에 의한 일시적 신드롬보다는 대중 전반을 타깃으로 롱런을 노리겠다는 이야기다.
현지화에 얼마나 공들였는지는, 국내 작곡진들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 보다 전형적인 제이팝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드곡인 'BDZ'부터가 트렌디함 보다는 케이팝에 관심없는 이들에게도 어필할만한 대중가요로서의 기능성에 보다 충실하고 있어 인트로의 'JYP'라는 구호가 참으로 어색하다. 특히 Min Lee "Collapsedone"과 와키사카 마유가 공작한 'Candy pop'은 한국의 트와이스와 일본의 트와이스를 구분하는 결정적 트랙. 두터운 베이스라인과 캐치한 키보드 터치, 정석적인 팝 선율이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뮤직비디오와 맞물리며 또 다른 자아, 일명 '트와이스의 트와이스'를 생성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다른 수록곡들도 최신 팝 트렌드를 이식해 재해석하는 최근 케이팝 사운드와는 거리감이 느껴지며, 그렇다고 한국에서의 건강함이나 발랄함과도 완전히는 부합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기존 색깔에 일본 주류 댄스뮤직, 특히 리듬 존 소속 아티스트들의 스타일을 교배했기 때문이라 결론내린 상태다. 업템포 리듬위로 유니즌 가창을 중간중간 삽입한 'Wake me up', 시원스런 기타리프와 타격감 있는 비트로 리퀘스트 수를 늘려가는 중인 'Brand new girl'은 이걸스(E-Girls)의 최근 트랙들과 방향을 같이 한다. 그러면 슬로우 넘버 'Wishing'은 어떤가. '屆けたい言葉が~'로 시작되는 후렴은 엑자일(Exile)의 아츠시나 타카히로가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에 가까이는 니시노 카나, 멀리는 이토 유나가 떠오르는 발라드 'Be as one'까지. 러닝타임을 마치고 나면 케이팝 그룹의 앨범이라는 인식은 상당부분 사라지게 된다. 아티스트를 모르고 들으면 일본의 한 댄스뮤직 작품으로 느껴질 듯도 싶다.
처음 들었을 땐 이런 진출방식이 약간 의아했지만, 충분히 일리 있는 방향이다. 일본에서도 '금의환향한 미사모'라는 시선으로 팀을 바라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접근성에 있어 다른 그룹과는 비교도 안 되는 스타트라인에서 출발한 그들이다. 이에 맞춰 전형성과 트렌드를 겸비한 음악으로 승부했으며, 결과적으로 보다 넓은 층에게 회자될 전략적 데뷔작이 탄생했다. 그렇게 오리콘 기준으로 첫주에 18만 장이 팔려나갔고, 싱글/앨범차트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한 통산 5번째 해외 아티스트가 되었다. 허나 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한국에선 '일본인, 대만인 멤버가 있는 걸그룹'이라면, 일본에선 '한국인, 대만인 멤버가 있는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 그것이 중요하다. 각 잡은 로컬라이징, 트와이스는 이렇게 일본활동 롱런의 단초를 성공적으로 마련해냈다.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