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달에는 어떤 힘이 있을까. 야근하고 귀가하는 길에 저절로 고개가 들려서, 하늘을 보게 되었다. 하늘에는 별도, 구름도 있었는데 그 무엇보다 달이 압도적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치 달이 내 정수리의 머리카락을 잡고 사뿐히 들어 올린 것처럼 달만 보게 되었다. 달무리가 껴서 달은 노랑의 영역이라기보다는 하양의 영역에 더 근접해 있었다. 내일은 비가 오겠구나. 초여름에 찾아온 더위 때문에 얇은 옷을 꺼내 입고 에어컨을 켜던 요사이가 떠올라 서둘러 속이 다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달무리나 햇무리(햇빛이 대기 속의 수증기에 비치어 해의 둘레에 둥글게 나타나는 빛깔이 있는 테두리)가 끼면 비가 온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 관찰자는 누구였을까. 물의 순환을 누구보다 먼저 터득한 땅의 사람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 사람은 여성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몸속에 물이 그득함을 최초로 인지한 자는 여성이 아닐까. 햇무리를 줄여 부르는 말은 ‘햇물’이고 달무리를 줄여 부르는 말은‘달물’이다. 햇물은 표준어지만, 달물은 강원, 경북, 충청의 방언이다. 표준어와 방언. 달은 늘 해의 뒷전에 있다. 달은 해에 비해 덜 열정적이며 덜 성마르다. 그런 이유로 달은 해보다 더 성숙하다.
나는 강원도에서 나고 자랐으나 한 번도 달물이라는 말을 써 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의 나는 잠이 쉬이 들고 도량이 좁고 느긋한 데가 없는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달을 좋아했던 사람과 어릴 때부터 해를 좋아했던 사람은 어떻게 다를까. 일찍이 찾아온 불면 때문에 달을 보며 소원을 빌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어린이 시절은 달라도 크게 다를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어본 사람만이 몽상가라고 불릴 자격을 얻는다. 몽상가의 심상 지리는 얼마나 무한한지. 어린 시절부터 검고 드넓은 꿈의 숲을 날아 더 멀리 떠나갔다 좁은 이불 속에서 자주 잠 깬 사람이 결국은 제 삶 속에서 최초의 방랑자가 된다. 자신의 삶이라고 해도 방랑의 재미를 알고 가는 이는 많지 않다. 나는 성마른 시절을 다 보낸 후에 우울을 겪으며 드디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달님,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라고 속삭였다. 달은 귀에 가깝다.
철새를 타고 먼 나라들을 여행하고 싶다 //…// 네가 아름다운 수염을 가진 소년이었다면 / 나는 너의 관을 열어 옆에 누웠을지도 모른다 / 나와 결혼해주겠니 / 자장가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청혼했을지도 모른다 / 이미 죽은 너의 귓속에 속삭였을지도 모른다 // 달빛이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때 나는 / 우아하고 창백한 새의 부리를 쓰다듬는다 / 수염처럼 깃털처럼 / 우리는 밤하늘에서 잠든다
- 「펼쳐라, 달빛」 중
집 앞 테니스장 펜스를 따라서 올라 핀 붉은 장미 넝쿨을 보았다. 계속해서 위를 향해 피어나는 저 맹목적인 발산을 장미가 꾸는 아름다운 꿈이라고 부른 이도 있으리.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꽃잎이 더 낮은 곳까지 아름답다. 추락을 위한 비상은 그 자체로 식물 고유의 일이다. 고유한 것이 아름답다. 달빛을 받은 장미는 과연 사람 넋을 빼놓을 만한 것이었다. 초록이 짙다. 달밤 장미는 붉음의 영역이 아니라 초록의 영역에 더 근접해 있었다. 달빛은 꽃잎이 아니라 잎을 더 애호한다. 햇빛을 받는 식물과 달빛을 받는 식물은 분위기가 다르다. 다른 시절 속에서 아름다운 쌍둥이 형제처럼. 햇빛 속의 식물은 숨 가쁘고 달빛 속의 식물은 가만히 숨을 고른다.
호흡이라는 말은 낮의 언어가 아니라 밤의 언어다. 그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밤에 혼자 떠들고 혼자 쓴다. 밤에 쓰인 글과 낮에 쓰인 글은 어떻게 다른가. 밤의 글은 달물, 방언, 방랑자, 잎사귀에 가깝고 낮의 글은 햇물, 표준어, 거주자, 꽃잎에 가깝다. ‘낮 동안 햇물이 꼈으니 내일은 비가 오겠구나.’라고 읊조리며 잠의 문을 두드리는 자와 ‘밤사이 달물이 져 내일은 산책할 수 없겠구나.’하고 꿈의 문을 두드리는 자는 분명 다른 시공간에서 눈을 감았다 뜬다.
테니스장 한쪽에서 휙휙 줄넘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밤에 체조하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저이는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사람이리라. 달에는 어떤 힘이 있다.
김현(시인)
봄봄봄
2018.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