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정 작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걸(Girl)’입니다. 『하이킹 걸즈』 , 『텐텐 영화단』 , 『판타스틱 걸』 … 김혜정 작가의 ‘걸’들은 세상과 어른들이 ‘평범한 10대 소녀’라고 정의하는 존재들이 제각각 얼마나 다양한 개성과 힘을 가졌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한국 청소년의 현실을 다룬 작품도 유쾌할 수 있고, ‘소녀’의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성별을 불문하고 10대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1년에 100회 이상 10대 독자들을 만나며 ‘10대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꼽히는 김혜정 작가가 새로운 ‘걸(Girl)’작으로 돌아왔습니다.
판타지 시리즈 ‘헌터걸’에는 ‘운명’보다 강한 ‘용기’를 가진 헌터걸 이강지를 비롯해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10대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다양해진 인물, 판타지 마니아들을 사로잡을 독특한 세계관만큼이나 흥미로운 사실은 헌터걸과 헌터보이가 ‘나쁜 어른들로부터 아이들을 지킨다’는 점입니다. 10대들이 지키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김혜정 작가와 함께 새 책 『거울 여신과 헌터걸의 탄생』 을 파고들어 보았습니다.
김혜정 작가는 중학교 2학년 때 첫 책 『가출일기』 를 출간했고, 2008년 『하이킹 걸즈』 로 블루픽션 상을 받았습니다. 세상 이야기를 듣고, 온오프라인으로 독자들을 만나고, 아기를 키우며 동시에 ‘진짜 웃기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열망으로 동화와 청소년소설,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때로 어른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아이들이 해낼 수 있다
‘헌터걸’은 어떤 작품인가요?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 아시죠?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직까지 살아남아서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하고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어요, 헌터걸과 헌터보이가 있으니까요! 헌터걸과 헌터보이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나쁜 어른을 응징하고, 최종 목표인 피리 부는 사나이를 응징할 10대들이에요. ‘헌터걸’ 시리즈는 헌터걸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에요.
‘김혜정 작가’라고 하면 독자들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단어가 아마 ‘걸’일 거예요. 이번 작품도 그렇고요.
‘여자아이들만을 위한 이야기’를 쓰려던 것이 아니라, 그냥 제가 걸이기 때문에 자연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고요. 주로 여자 캐릭터는 저를 닮은 인물로, 남자 캐릭터는 제가 바라는 인물을 등장시켜요. 제 아들이 이런 남자가 되면 좋겠다, 아니면 현실에 이런 남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요.
어떻게 구상하시게 되었나요?
저는 사람이 태어날 때 고유한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해요. 그 능력이 어른이 될수록 사라지는 거죠. 그래서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이들이 가진 고유한 힘을 빼앗은 덕분에 아직도 살아남아, 계속해서 아이들을 노린다.’고 설정했어요. 그럼 그 피리 부는 사나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처음에는 남자아이 세 명을 주인공으로 설정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까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거예요. 누군가 더 강력한 인물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지금의 주인공, 강지가 탄생했어요.
강지는 어떤 아이인가요?
저를 닮은 여자아이요.(웃음) 강지는 의협심이 있고, 정의로워요. 그런데 저는 말이나 글로는 표현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움직이는 걸 싫어해요. 반면 강지는 양궁 선수라서 운동 능력도 뛰어나고,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아이예요. ‘헌터걸’은 다른 아이들을 대변하는 영웅이니까, 독자들에게 강한 주인공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무언가를 시키면 그게 잘못된 것이라도 지적하지 못하고 넘어가잖아요. 강지는 잘못된 점은 지적해서 바로잡아요. 『거울 여신과 헌터걸의 탄생』 에도 나오듯이 바바리맨도 신고해서 잡는 아이예요.
보통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는데, ‘헌터걸’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지키는 이야기예요.
저는 지금 어른들이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현실에는 나쁜 어른들이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맞아. 어른 말을 듣지 않으면 나는 나쁜 아이야.’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이 스스로를 보호하면 좋지 않을까? ‘헌터걸’은 그냥 재미있는 판타지일 수도 있지만, 실현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물론 아이들이 정말로 어른들을 정말 잡으러 다닐 수는 없지만 ‘헌터걸’을 읽은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아무리 어른이라도 나쁜 짓을 저지르면 나쁘다고 말해야 하고, 때로 어른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아이들이 해낼 수 있다고.
『거울 여신과 헌터걸의 탄생』 에는 어떤 나쁜 어른이 등장하나요?
‘거울 여신’요. 아이들에게 ‘예뻐지는 법’을 알려 준다며 병원이나 쇼핑몰에서 뒷돈을 받아 챙기는 사기꾼이에요. 저는 어릴 때 통통하다는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 늘 살 때문에 고민이어서 『다이어트 학교』 를 썼어요. 초중고등학생 할 것 없이 여자아이들은 그 책을 참 좋아해요.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자기도 다이어트를 해야 하기 때문이래요. 제 눈에는 그냥 보통 체중인 것 같은 아이들도 살 빼야 한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요. 그럴 때마다 생각했죠. 대체 이 아이들이 왜 살을 빼야 하나? 누가 만들어 놓은 기준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게 됐지?
아이들의 콤플렉스를 만들고, 아이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면서 이익을 얻는 어른들 때문이에요. 그런 어른들을 당장 혼내 주고 싶어서 거울 여신을 제일 먼저 등장시켰어요.
‘헌터걸’은 뿌리가 되는 이야기부터 세부 설정까지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가장 심혈을 기울이신 부분이 있다면요?
헌터걸, 헌터보이의 캐릭터요! ‘헌터걸’에는 다양한 헌터들이 등장해요. 헌터는 미션 수행에 따라 하수, 중수, 고수로 나뉘고, 자기 자질과 잠재력에 맞는 무기를 사용하죠. 강지는 ‘활’을 사용하는 헌터걸이에요. ‘활’ 유형의 헌터들은 좋은 신체 조건을 타고나며, 인내심이 강하죠. 고수 등급 헌터들이 팀을 이뤄야 피리 부는 사나이에 대적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다양한 무기를 쓰는 개성 있는 헌터들이 떼(!)로 나올 예정입니다!
내 작품의 주인공, 세상에 불만이 많은 투덜이들
선생님은 어떤 헌터이신가요?
아직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저는 ‘그물’ 유형이에요! 몸을 움직이는 걸 싫어하거든요. 그물을 사용하는 헌터들은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머리가 좋은 지략가들이에요.(웃음) 저는 ‘작가’란 ‘이야기 사냥꾼’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작가가 되셨나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글을 썼어요. 처음에는 동화를 썼죠. 도입부까지 쓴 다음, 출판사에 보냈어요. ‘출간해 준다고 하면 이 이야기를 완성하겠다!’는 조건을 담은 편지랑 함께요. 당연히 출판사에선 출간하기 어렵다고 원고를 돌려주셨죠. 그래서 그 작품은 아직도 완성하지 않았어요.(웃음) 중학생이 되니까 너무 학교에 가기 싫었어요. 그 당시 ‘가출’이 너무 유행이었는데, 가출을 할 수는 없으니까 소설로 썼어요. 그때 쓴 『가출 일기』 가 열다섯 살 여름에 책으로 출간되었어요.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요즘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작가가 되어야 하는 시대예요.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작가’는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나눌 이야기를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시선’이 있어야 해요. 장정일 작가가 ‘작가는 세상을 너무 사랑하거나, 너무 미워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셨더라고요. 세상을 너무 사랑하면 세상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세상이 증오스럽다면 그 또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작가죠.
선생님은 어느 쪽이세요?
반반이에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도 크지만 불만이 많아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제 주인공들은 건강하고 밝으면서도 세상에 불만이 많은 투덜이들이에요. 정말 세상을 싫어한다면 무관심할 텐데, 제 주인공들은 세상을 사랑하지만 더 즐겁게 살고 싶어서 불만을 이야기해요.
1년에 100회 이상 10대 독자 강연을 하시는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독자들을 만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강연은 제가 작품을 통해 10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수 있는 기회예요. 10대를 어떻게 보냈으면 좋겠다, 나중에 어떤 어른이 되면 좋겠다……. 10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아이들을 만나요. 제 강연을 들은 아이들은 ‘이렇게 말해 주는 어른은 처음 만났어요.’라고 해요. 저는 아이들에게 ‘어른 말이라고 다 들을 필요는 없다’고 하거든요. “어른들이 하는 말이라고 다 맞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어른도 많은데 너희는 왜 어른들 말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듣니? 잘못된 것이 있으면 가만있지 마, 너희가 사는 세상은 너희가 만들어야 하니까. 어른이 잘못 만들어온 것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건 너희들이 사는 세계가 아니야.”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해요. 그래야 저도 제대로 된 세상에서 살 수 있으니까요.
강연에서 소재도 얻으시겠어요. 요즘 아이들이 생각하는 나쁜 어른은 어떤 어른일까요?
아이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어른’이 없는 것 같아요. 어른에 대해 크게 관심도 없고.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어른이 있어야 하는데, 아이들은 “닮고 싶은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오히려 그게 더 충격적이었던 것 같아요. 제 작품을 통해서 ‘닮고 싶은 어른’을 발견하면 좋겠어요.
헌터걸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나요?
헌터걸 한 명이 세상을 바꾸기는 힘들어요. 더 많은 헌터걸과 헌터보이들이 나타나서 나쁜 어른들을 응징하고, 결국 피리 부는 사나이와 대결하게 될 거예요. 벌써 3권까지 집필을 마쳤답니다.
헌터걸을 만나게 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헌터걸’은 아직 진행 중인 이야기예요. 저 혼자 쓰는 게 아니라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갈 거예요. 그러니까 주변에 혼내 주고 싶은 어른, 가만둬서는 안 되겠다 싶은 어른이 있으면 저에게 알려 주세요. 제가 헌터걸, 헌터보이와 함께 나쁜 어른들을 혼내러 가겠습니다. Wir sch?tzen uns! 우리가 우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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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걸김혜정 글/윤정주 그림 | 사계절
하굣길의 바바리맨부터 아이들의 마음을 악용하는 사기꾼, 피리 부는 사나이까지 현실과 판타지를 누비며 세상의 모든 나쁜 어른들을 응징하는 헌터걸의 활약을 담았다.
장슬기(사계절 편집자)
최고령 편집자 할머니가 되기를 꿈꾸며 책을 만들고 있다.